고향에 가면 친구들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혼자 가는 것이 아닌 아내와 아이가 함께 가기 때문에 나만 덜렁 밖에 나가기도 어려울뿐더러, 고향에 있는 식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점점 그 무게감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친구들 역시 가정을 꾸렸고 서로가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마냥 신나기만 했던,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주량은 가볍게 무시하고 밤새도록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던 때로는 돌아가기가 어렵다. 이제는 카페에서 시간이 되는 친구들이라도 하나 둘 모이거나, 식사 시간에 맞춰 모이는 수다쟁이 아저씨들이 되어간다. 우리 아버지들이 그러셨던 것처럼 말이다.
얼미 전 추석에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 수년만에 오랜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는 몇 번의 시험에 낙방하고 결국 가업을 물려받기로 했다고 한다.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방해가 될까 싶어 연락도 자제하고 합격 소식을 기다렸었지만 합격 소식 대신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수년 동안 연락도 하지 못하고 지냈었기에 어떤 위로를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런데 시골집 앞으로 데리러 온 친구 차에 올라타자마자 앞서했던 고민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서로의 겉모습에 조금 어색함을 느꼈지만 '야이~'라는 인사말과 동시에 우리는 20대 초반으로 돌아갔다. 외모는 조금 변했을지언정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우리가 각자가 기억하는 서로임을 확인하게 했다. 친구의 얼굴은 생각보다 좋아 보여서 안심이 됐다. 시험에 대한 미련을 떨쳐낸 듯했다. 이윽고 우리는 갑자기 젊어졌고, 없던 힘이 솟아났다. 그런데 친구가 인사 다음에 한 말은 놀랍게도 '이 바지는 없어지질 않냐?'였다. 이 바지라 함은 대략 생각해도 15년 전에 샀던 운동복 바지다. 더운 날씨에 아직도 즐겨 입는 이 바지는 정말로 15살 정도 나이가 든 것이었다. 이 바지를 아직도 알아보는 것에 감동했고, 이렇게나 빠르게 지나간 시간이 서글펐다. 친구는 그동안 많이 변한 고향의 곳곳을 데려가 주었고 우리는 묵었던 얘기와 앞으로의 걱정에 대해서 실컷 떠들었다. 정말로 20대 초반으로 돌아가서 젊었을 때의 그 느낌 그대로를 느끼며 시간제한이 있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즐겼다.
비록 연식이 오래되었더라도, 해지고 구멍이 뚫린 바지일지라도, 나이가 들어 겉모습이 예전과 다를지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나에게 가장 편하고 잘 맞는 바지, 그리고 언제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젊은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친구. 조금 해지고 구멍이 뚫리면 어떠한가, 나이가 들고 얼굴에 탄력이 줄면 어떠한가, 변하지 않는 그것은 훨씬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단지 우리가 잠시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