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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유 Jan 29. 2024

그대로 멈춰서는 것도 괜찮다

지금까지 새해맞이 해돋이를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해는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아랑곳 하지 않고 매일매일 뜨겁고 강렬하게 떠오르고 구슬프게 저물었다. 1월 1일에 떠오르는 해를 직접 본다고 갑자기 엄청난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절대로 잊지 않을 다짐을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1월 1일은 분위기에 휩쓸려 설레는 마음에 약간의 이벤트가 있길 기대하는 날 정도다. 진짜는 매일을 1월 1일과 같은 마음으로 여기는 것이다. 매일같이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려 노력하고, 깨달음에 대해서 고민하고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다.


신년 해맞이와 관계없이 가끔 새벽 등산으로 정상에 올라 저 멀리서 떠오르는 해를 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렌턴으로 비춰가며 오르고 또 오른다. 낮과 밤의 산길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분명 이 길이 맞는데 걷다 보면 처음 보는 갈림길이 나온다. 걸어본 적이 없는 언덕을 마주치는가 하면 길이 끊겨있기도 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어디서부터 잘못 들었는지 한참을 헤매야 한다. 온전히 감각에 의지하고 목적지를 향해 걸어야 한다. 처음엔 식은땀도 나고 큰 일이라도 생길까 두려움이 생긴다. 해가 뜨기 전에 정상에 도착하지 못할까 봐 조바심이 난다. 하지만 이렇게 헤매는 것도 괜찮다고, 가보지 않았던 길을 잠시 걸어보는 것도 괜찮다며 나를 다독이고 나면 마음이 편하다.


텔레비전 없이 생활한 지 20년 가까이 되어간다. 그래서 홍수처럼 밀려드는 시끄러운 세상 이야기와는 멀어졌고 읽기와 쓰기, 등산, 사진 찍기, 자전거 타기, 여행, 축구로 나를 채워간다. 스트레스가 적고 예민하지 않다. 건강도 그럭저럭 괜찮다. 지난 두 달 동안에는 발목이 좋지 않아 운동을 전혀 못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가는 시점에 곧 새해가 밝는다는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다. 크리스마스 역시 아이들과 그럭저럭 요란하지 않게 보냈는데 다시 새해 이야기로 마음이 들뜬다. 아직 발목이 성치 않으니 축구는 무리고 등산이라도 가보자는 심산으로 오랜만산에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약간의 간단한 간식과 날씨만 확인하고 짐을 챙겨 두었다. 지하철 첫차를 타고 출발하는데 다른 때와 달리 등산객 차림을 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지하철을 내려 산을 오르는데 사람이 많다.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많은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차, 오늘이 1월 1일이다. 집에서 텔레비전이라도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더라면 어느 순간 새해 해돋이 이야기라도 들리지 않았을까. 당연히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에겐 여느 날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일출 전에 정상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넉넉지 않았다. 얼마 전에 내린 눈은 다 녹았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혹시 하는 마음으로 아이젠을 챙겨 오긴 했다. 예상대로 등산로에는 눈이 녹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빠르게 계곡을 타고 오른다. 각기 다른 길에서 출발한 등산객들이 길이 합쳐지며 하나가 될 때마다 앞사람과의 간격이 좁아진다. 젊은 학생들이 정말 많다. 두꺼운 패딩에 핸드폰으로 불을 밝히며 운동화를 신고 위태롭게 걸어간다. 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앞사람만 따라가고 있다는 말소리가 많이 들린다. 나 역시 앞사람만 따라가다 보니, 순식간에 길이 아닌 곳으로 잘못 들었음을 알고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얼핏 보아도 40~50명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다 보니 뒤에서 올라오던 다른 그룹의 등산객들과 만난다. 자주 오는 길이기에 자신만만했거늘 무심코 서두르기만 하다 보니 엉뚱한 곳으로 왔다. 어둠 속에서 모두가 당황하여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데 어르신 한분이 길을 잡아주셔서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절반 정도 오르니 앞사람과의 간격이 코앞이다. 길이 좁아져서 한 줄로 걸어야 하는데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아직 해가 올라올 시간은 아니지만 정상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정말 빠듯하다. 쉬지 않고 빠르게 걸어야만 겨우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급기야 제자리에 멈춰 섰다. 저 앞 어딘가에서부터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한걸음을 옮겨가는데 갑자기 빙판길이 나온다. 산 중턱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도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이 많아서 아이젠을 꺼내 착용할 공간도 없다. 그렇다고 돌아가자니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일출은 가까워지는데 제자리에 서 있으니 초조함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앞에서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밀려오더니 긴 줄을 이은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내려오는 사람을 붙잡고 앞에 상황을 물어보니 빙판길이 길게 이어져있어 도저히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말에 아이젠과 스틱을 착용하신 어르신들은 사람들을 뚫고 앞으로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고, 두꺼운 패딩에 운동화를 신고 핸드폰으로 길을 비추던 학생들은 발걸음을 돌린다. 미끄러운 빙판길 위에서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엉켜 미끄러져 넘어질뻔한 사람들이 많다. 다행히도 그때마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아주며 도와준다.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 모두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은데 조심하라는 걱정과 도움으로 얼었던 마음들이 조금은 녹아내린 듯하다.


고민을 하다 일단은 부랴부랴 잠시 계곡으로 들어가 아이젠을 착용하려는데, 정상에 가더라도 사람이 굉장히 많을 것만 같다. 발 디딜 틈은 있을지, 사고라도 안 나면 다행일 것만 같다. 길게 늘어선 줄은 여전히 앞으로 쉬이 나아가질 못하니 일출시간에 맞춰 정상에 도착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결국 해돋이는 다음 주로 미루고 가방에서 낚시용 의자를 꺼내 그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산을 오르다 말았기에 체력이 한참 남아있다. 그래서 준비해 온 간식도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해가 뜨려면 1시간 정도 남았다. 시린 손 불어가며 여기서 떠오르는 해를 보련다. 떨어져 내리는 물소리가 들린다. 떨어진 물은 웅덩이를 만들고 다시금 어디론가 흘러간다. 웅덩이는 발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이 있다. 쉬지 않고 들리는 물소리에 등산객들의 소리는 어느 센가 사라졌다. 물 흐르는 소리는 산을 울리고 나도 울린다. 나도 산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저 산 꼭대기 너머에 빛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정상이 아닌 곳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산의 기운에 스며든 적이 없다. 꼭대기가 아니어도 좋다. 오늘은 여기가 정상이다. 경사가 급한 곳에 작은 폭포가 있다. 작은 폭포는 매 순간 스스로 빛을 담아내며 신비로움을 보인다. 매일 아침 깨어나는 생명이다. 누가 묻지 않아도, 누가 관심 갖지 않아도 하루도 쉬지 않고 깨어났으리라. 작지만 멈추는 법이 없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강함에 빠져든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푸른빛을 내보이며 점점 드러나는 자태는 고운 두 손을 모아놓은 것만 같다.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이 광경 또한 장관이다. 앙상한 가지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나무들은 흔들림 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왔음을 말하는 듯하다.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무심하게 지나치기만 했던 이곳이, 꼭대기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것처럼 느꼈던 이곳이 잔잔하지만 진득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새벽의 기운을 머금기 시작하며 산 꼭대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울림을 준다. 나는 멈춰 섰고 비로소 보고 있다. 더 가까울 수 없을 만큼 가까이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나를 감싸 받아들여준다. 정상에서 나는 아주 잠깐 머물다 가는 객일 뿐이지만 산 중턱에서는 기꺼이 산의 일부가 되길 허락받았다.


멈춰 서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럴 리가 없다. 수많은 변수를 모두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차라리 처음부터 어느 정도 계획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마음을 먹는 편이 낫다. 중간에 멈춰 서더라도 괜찮다. 조금 어긋나면 어떠한가? 조금 빗나가면 어떠한가? 멈춰 선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끝나는 것은 나뿐이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세상은 결코 끝이 없다. 또 다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법이다. 익숙함에서 한발 멀어져야만 발견할 때가 있는 거다. 그러니 때로는 멈춰서도 괜찮다. 멈춰 섰다고 끝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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