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앗! 오줌 냄새!"
파리시 동쪽 끝에 있는 20구를 지나, 외곽에 있는 바뇰레(Bagnolet)에 도착했다. 휴가철의 한 가운데를 지나는 파리에서, 중심지에 숙소를 잡는 건 우리의 예산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숙소로 가려면, 마지막 관문인 터널 옆을 지나야 했다. 축축하고 칙칙한 터널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앞만보고 걷고 있었다. 그때,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오줌 냄새가 공격을 해왔다. 아이는 코를 틀어쥐고는 사정없이 달려 나갔다.
숙소는 아주 좁고, 아주 낡았다. 꿈꿈한 냄새가 밴 카페트가 못미더워 당장 창문을 열어제치고 싶었지만, 창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욕실에서는 비위를 건들이는 하수구 냄새가 올라왔다. 정체 모를 얼룩으로 가득한 카페트 위를 맨발로 걷는 아이에게 당장 신발을 신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폭이 좁은 침대는 아이가 반 바퀴를 구르면 떨어지기 딱 좋은 크기였다. 그 순간, 파리에 살고 있는 사촌 동생의 말이 떠올랐다.
"누나, 밤 10시 넘어서는 돌아다니지 마. 손바닥보다 더 큰 쥐가 나오기도 하거든."
정수리에 쏟아지는 따가운 햇볕을 맞으며 지하철역으로 출발했다. 파리 중심으로 들어가 밥을 먹을 계획이었다. 역으로 이어진 거리의 공기는 이질적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북아프리카 출신의 이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슬람 사원 앞에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젤라바를 입은 남성 무슬림들이 분주히 오갔고, 히잡을 쓴 여성들도 곁을 지나갔다. 건조 하게 솟은 콘크리트 건물마다 거친 그래피티가 가득했고, 간판에는 프랑스어와 함께 아랍어, 터키어가 섞여 있었다. 프랑스 내 이주민의 존재를 이토록 가깝게 느낀 건 처음이었다. 이곳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파리와는 전혀 달랐다. 물과 기름처럼 뚜렷한 결을 가진 두 층이 경쟁하듯 팽팽하게 놓여 있었다.
역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는 교통 카드를 살 수 없었다. 다른 출구를 찾아 들어가야 했는데, 이상하게 구글맵에서도 지하철 출구는 적혀있지 않았다. 거리를 아무리 둘어보아도 다른 출구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여러 번의 뺑뺑이 끝에 간신히 입구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유는 일관성 없는 디자인 때문이었다. 주민들에게는 익숙할지 몰라도, 처음 도착한 이방인에게는 꽤 가혹하고 피곤한 일이었다.
지하철은 더 처참했다. 눅눅한 지하철 플랫폼으로 들어서자, 노숙자가 몸을 웅크린 채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얼마나 누워있던건지 알 길은 없지만, 관광객들 말고는 그에게 시선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하철이 도착했다. 지하철 의자는 놀라우리만큼 때가 묻어 있었고, 바닥은 씹고 버린 껌이 바짝 늘러붙어 검게 변해 있었다. 아이를 안고, 다리를 쉬게할 이유가 아니었다면, 여행이 끝나도록 앉지 않았을 것이다. 번듯하게 타일이 붙어 있던 플랫폼을 지나, 터널로 들어가자, 페인트 칠을 하지 않아 물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날것의 시멘트 벽이 드러났다.
파리에 머문 사흘 동안 지하철에 대해 새삼 깨달은 것이 있었다. 철저하게 배제된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유독 그것이 더 집요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주요 관광지가 있는 일부 역들을 빼고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칮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몸이 불편한 장애인과 노인, 유아차를 끄는 가족들은 어떻게 이동을 하는 걸까? 휠체어를 탄 채 계단을 오르내리는 건 불가능했고, 어쩌다 플랫폼에 내려왔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지하철은 플랫폼보다 계단 하나만큼 높았다. 유아차를 번쩍 들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는 엄마가, 유아차가 좁은 개찰구를 통과할 수 없어, 교통 요금을 내고도 우왕좌왕하는 아빠가 보였다.
동굴 같은 지하철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을 때, 나와 아이의 입에서는 "와!"하며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풍 뇌프 다리에 올라 바라본 도시의 풍경에 압도돼 버린 것이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아래로는 센 강이 흐르고, 첼로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루브르 박물관과 커다란 대관람차는 물론, 저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강렬한 오렌지 빛을 뿜어내는 노을이 한창 도시를 덮는 중이었다. ‘파리는 역시 파리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파리는 누군가가 집요하게 빚어낸 작품처럼 보였다. 문득 이 도시에 다시 마음을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길거리 똥을 간신히 피하고 나니, 그만 정이 똑 하고 떨어졌다.
금빛 장막처럼 드리워졌던 노을이 걷히고 나자, 파리의 또다른 얼굴이 드러났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레퓌블리크(République)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둑한 거리에 움직임이 느껴졌다. 가만히 보니, 거리 한쪽에 텐트 수십 개가 줄지어 있었다. 텐트 앞에 있던 그림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텐트 옆 화단에 앉아 있었다. 파리에 정착하지 못한 이주민과 난민들이었다. 레퓌블리크 광장에 한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공화국 여신 동상의 존재감은 여전히 뚜렷했지만, 자유, 평등, 박애는 저 멀리 달아나 버린 듯했다. 나는 아이의 팔을 꼭 붙잡고,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파리는 '거대한 아름다움과 거대한 소외가 공존하는 도시'였다.
파리에 오기 전, 비행기에 빠져있는 아이를 위해 '프랑스 항공우주 박물관'에 들렀었다. 이곳에는 파리에서 뉴욕까지 단 3시간 만에 날아갈 수 있었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가 전시되어 있었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비행기였다. 길고 뾰족한 창처럼 날렵한 몸체에 세모 모양의 넓은 날개를 단 콩코드는 마치 미래에서 온 듯했다. 콩코드는 사라졌지만, 프랑스가 항공 강국이라는 점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에어버스 본사가 자리하고 있고, 전투기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우주 산업을 이끌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수많은 화가들이 영감을 얻었던 도시, 자유와 혁명의 정신을 품은 도시, 철학과 문학이 꽃피운 도시, 모두가 ‘낭만의 도시’라 치켜세우는 곳이지만, 길거리의 똥과 오줌 냄새와 쥐와 낡고 열악한 시설들은 낭만 뒤를 졸졸 따라 다니는 파리의 그림자였다.
파리 여행을 마친 아이는 그림 일기장을 꺼내 쓱쓱 그리기 시작했다. 파리 지하철과 한국 지하철을 비교한 그림이었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아이는 책에서 본 파리와 눈으로 직접 본 파리의 간극을 꺼내놓곤 했다. 그 불편함과 불일치 속에서 오히려 파리의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났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첫 프랑스 여행에서 '파리=낭만의 도시'라는 익숙한 공식은 뿌리채 뽑혀 버렸지만, '파리=낭만과 소외가 함께 있는 도시'라는 새로운 공식이 자리잡았다. 아이와 나는 산책을 하며, '좋은 도시는 어떤 곳일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룬아! 살기 좋은 도시는 어떤 곳일까?"
"엄마,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지. 프랑스 지하철은 몸이 아프면 탈 수도 없어. 그건 정말 불공평해. 박물관이나 미술관만 깨끗하고 길거리가 지저분한 것도 좀 이상하게 보여."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도시는 눈에 보이는 것도 좋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좋아야 될 것 같아. 그런 점에서 파리는 실망 스러웠어지. 그래도 바게트 맛은 정말 좋았어."
"근데 무엇보다 개똥은 좀 치워야 할 것 같아. 안 그래?"
파리 여행이 끝난 뒤에도 '지속가능한 도시'의 조건을 생각한다. 화려한 건축물이나 유구한 역사도 좋지만,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도시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길이 아닐까, 라고 답을 내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