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마트에서 산 바게트, 방울토마토, 치즈, 커피로 배를 채우고 호텔을 나섰다. 주말에만 열리는 중고 시장에 가 볼 계획이었다. 지갑을 꺼내 가진 현금을 세고, 물건을 담아야 할지도 몰라 시장 가방도 챙겼다. '방브 마켓(Marché aux puces de la Porte de Vanves)'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장소였다. 운이 좋다면 예쁘고, 흔치 않은 중고 물건들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고, 무엇보다 '현지인 분위기'가 내 마음을 울렁이게 할 거라는 친구의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
9시 반쯤 도착했을 때, 이미 거리는 테이블로 꽉 차 있었다. 길 하나를 두고 왼쪽, 오른쪽에는 보물들이 펼쳐져 있었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보통의 나는 물건을 들이는 데 인색한 편이지만, 방브 마켓에서는 무엇이든 다 사고 싶고, 또 살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압박감이 들었다. 파리에 머문 사흘 동안, 내 눈이 가장 환하게 빛나던 순간이었으리라. 빛바랜 열쇠고리, 은식기, 유리컵과 접시, 스툴과 책꽃이, 빈티지 장난감, 절판된 잡지와 책, 옷핀과 악세사리 틈에서 나는 몇 번이나 환하게 피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이는 모형 비행기를 수집하는데, 지금은 팔지 않는 오래된 비행기 모형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비행기들을 만났다. 나는 1유로짜리 컵 세 개, 거실에 걸어둘 그림 한 점, 그리고 엄마와 이모에게 줄 접시를 샀다. 마음 같아서는 천천히 돌며, 마음에 두었던 식기들을 다시 살피고, 아직 발견되지 못한 보물들도 찾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이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오전 10시 반이 지나자, 현지인은 물론, 나처럼 소문을 듣고 방브 마켓을 찾은 관광객들로 시장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은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와 파리 여행을 떠나기 전,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말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랑스를 소개하는 책을 읽은 아이는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몽마르트르 언덕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모나리자를 꼭 봐야 한다며 힘주어 말했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읽은 기사들이 머릿속에 멤돌았기 때문이었다. 몽마르트르 지역에서는 정육점, 빵집, 마트 같은 일상 공간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기념품 가게, 카페, 아이스크림 노점 같은 관광객을 위한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어 정작 주민들은 필요한 것을 모두 배달에 의존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모나리자를 볼 수 있는 루브르 박물관은 예약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 예약을 했더라도 긴 대기줄은 모나리자를 보기 위한 통과 의례 같은 것이다. 루브르에 들어갔다고 해도 모나리자를 제대로 감상하리라는 기대는 진작에 접어 두어야 한다. 아이를 어깨 위에 올려 간신히 시야에 닿는다 해도, 모나리자를 향해 뻗은 수많은 휴대폰들과 싸워야한다. 우리가 파리에 방문하기 두 달 전, 루브르 박물관의 직원들은 4시간 동안 파업을 벌였다. 하루 평균 3만 명이 찾는 이곳에서, 직원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에 오랫동안 시달렸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4년 기준,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여행자는 4800만 명에 달한다. 일드프랑스(파리 근교)를 포함하면 파리에는 1400만 사람들이 사는데, 관광객 수가 주민의 3.5배가 넘는 셈이다. 파리는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다. 파리 길거리에서 오줌 지린내가 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파리의 공공 화장실은 고작 435개로, 계산해 보면 화장실 하나를 14만 2,528명이 함께 써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길거리에 오줌을 싸는 사람들에게만 손가락질을 할 것이 아니라, 느긋하게 대처하는 파리 시 정부를 향해 손가락질해야 하는 이유다. 아이가 오줌이 마렵다고 할 때마다, 나는 애간장이 탔다.
결국, 나와 아이는 덜 붐비는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으로 합의했다. 지나치게 거대한 미술관을 전부 보겠다는 건 욕심이니, 우리는 인상주의 작품들이 모여 있는 5층만 보기로 했다.
책, 달력, 포스터처럼 평면에서만 보아 오던 작품들을 내 눈으로 마주하는 경험은 마음을 울린다. 물감을 두껍게 올려 입체감이 느껴지는 작품들은 마치 생명체 같다. 마네, 모네, 세잔, 고갱, 르누아르, 고흐의 작품을 만난 기쁨은 아끼던 벗을 오랜만에 만난 듯한 순수한 기쁨이기도 하다. 거대한 신화나 무거운 역사의 장면 대신, 일상과 풍경을 담아낸 화가들의 시선도 더없이 반갑다. 에드가 드가의 작품《다림질하는 여인》은 19세기 파리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았다. 한 명은 다림질을 하고, 다른 한 명은 하품을 하며 한 손에 와인병을 들고 있다. 사회의 최하층에 있는 사람들이 그림 한가운데 놓였다는 것이, 그것도 여성의 일상을 그려 놓은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반 고흐의 그림도 여럿 있었는데《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은 열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도 뜨거운 존재감이 느껴졌다. 캔버스 앞은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는 그림을 찍고 떠나는 사람들을 기다렸다. 마침내 아이와 나는 그림을 마주했다. 오른쪽에 작고 어둡게 그려진 커플과는 달리, 하늘에는 노랗게 물들은 별들이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적힌 글처럼 '밤하늘은 나를 꿈꾸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꿈 같은 시간은 30초도 넘기지 못했다. 우리 뒤에는 휴대폰을 든 수많은 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도 가지 않고, 몽마르트르 언덕도 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느긋하게 다닐 수는 없었다. 낭만을 천천히 즐기기에 파리는 너무 비싼 도시였다. 짧은 일정에 모든 것을 다 구겨 넣어야 하는 곳이다. 특히 파리를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봐야 한다는 압박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종아리가 단단해지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우리도 에펠탑까지는 포기할 수 없었다.
토요일 밤 10시, 에펠탑 앞은 조명 쇼를 보러 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 사이사이에는 보자기를 깔고 에펠탑 열쇠고리, 불빛이 반짝이는 에펠탑 미니어쳐, 얼음물, 프랑스 국기 같은 기념품을 늘어놓은 상인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상인들은 때때로 자리를 옮기며 관광객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에펠탑이 잘 보이는 명당에는 360도 비디오 부스가 있었다. 가운데에 동그라미 모양의 작은 무대가 있고, 사람이 올라서면 카메라가 원을 그리며 영상을 찍어주고 있었다. 우리를 데리고 온 사촌 동생은 요리조리 사람들을 피해, 덜 붐비는 곳으로 안내했다. 파리지앵인 동생이 아니었다면, 아마 사람 숫자에 지레 겁먹고 발길을 돌렸을지도 모른다.
별처럼 반짝이는 에펠탑을 보며 오줌이 마렵다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호텔까지는 참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 시간에 화장실을 찾을 자신이 없었다. 간신히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침대에 누워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긴 하루였다.
"엄마는 이제 파리에 아쉬울 것이 없는 거 같아. 벌써 세 번째잖아. 모네의 그림들이 그리워지면 또 모르겠지만, 다시 프랑스에 오더라도 파리는 빼고 다른 곳으로 가볼거야. 너는?"
"나는 18년쯤 후에 다시 와 볼게. 그때는 변했을지도 모르잖아."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도망치듯 파리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