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엄마, 나도 저거 해볼래!"
네덜란드 로테르담 역 출구를 막 빠져나왔을 때, 역 안에서 이벤트가 한창이었다. 헤이그에 있는 미니어쳐 공원 '마두로담(Madurodam)'이 새로운 놀이기구 '바람 사냥꾼(De Windjager)'을 홍보하고 있었다. 길고 좁은 통 안에서 25초 안에 날아다니는 공 세 개를 잡으면 입장권 두 장을 공짜로 받을 수 있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이가 공 세 개를 잡아낼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뭐든 열심을 다하는 아이가 대견해 잘 하고 오라며 엉덩이를 토닥였다. 아이는 큰 눈을 반짝이며 "잘 하고 올게!"라며 외치고는 전쟁을 앞둔 장군처럼 부스 안으로 들어 갔다. 밑에서 바람이 불자 공들은 이리저리 튀어 올랐다.
"어? 어?? 어?????? 진짜????? 와!!!!!!!!!"
다람쥐처럼 폴짝 폴짝 뛰어오르던 아이는 단숨에 공 세 개를 잡아 단단히 쥐었다. 부스를 나오는 아이의 양볼은 잘 익은 복숭아처럼 붉게 번져서는 내 품으로 달려왔다. 다음 날, 우리는 그 티켓을 들고 마두로담에 일등으로 들어 갔다.
마두로담 전망대에 서니 미니 네덜란드가 한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로테르담 항구로 곧장 달려갔다. 아이는 미니 크레인을 움직여 컨테이너를 옮기고 쌓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옆은 네덜란드가 어떻게 물을 관리하는지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손잡이를 당기자 미니 댐에 물을 차오르기 시작했고, 수문을 열자 배가 미끄러져 나갔다. 아이는 배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산업과 건물들이 모여 있었다. 손톱만한 튤립들이 가득찬 튤립밭 옆에는 노란 치즈 바퀴가 쌓인 '알크마르 치즈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하얀 옷을 입고 밀집 모자를 쓴 피규어들이 치즈를 열심히 옮기거나 치즈 무게를 달고 있었다. 그 옆에는 스키폴 공항 활주로에 작은 비행기들이 이륙을 준비하느라 움직이고 있었다. 안네프랑크의 집, 암스테르담 운하 지구와 돔 성당, 평화궁까지 작은 세상이 줄줄이 이어졌다.
"엄마 '바람 사냥꾼(De Windjager)'이 열릴 시간이야! 바람 잡으로 가자!"
우리는 기울어진 풍차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삐걱삐걱 소리가 울렸고, 천장이 흔들리는데 진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바닥에는 밀가루 포대와 나무 상자가 쌓여 있었고, 톱니바퀴도 벽 한 쪽에 기대어 있었다. 오래된 풍차 창고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놀이기구에 올랐다.
놀이기구는 뱅글뱅글 돌며 방에서 방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벽에는 풍차의 이야기가 차례로 펼쳐졌다. 바람이 불어오자 풍차 날개가 돌면서, 맞물린 톱니바퀴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꺼운 나무가 쓱쓱 잘려 나갔다. 이어서 돌을 곱게 갈아 물감을 만들고, 커다란 망치가 펄프를 두드려 종이를 만들어냈다. 아이는 바람이 만들어내는 힘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곧 거센 폭풍이 몰아쳤다. 풍차는 불길에 휩싸였고 날개가 뚝뚝 떨어져 나갔다. 자연의 어마어마한 힘 앞에 우수수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이 장면이 새로운 기계가 등장하며 영원할 것만 같던 풍차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푸른 바닷가에 늘어선 풍력 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한때 네덜란드의 농사와 산업을 지탱하던 풍차가 오늘날에는 깨끗한 에너지를 책임지는 발전기로 태어나 있었다. 바람과 함께 살아온 네덜란드의 지혜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엄마, 나는 풍차가 물을 퍼내는 줄만 알았거든. 그런데 풍차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거네. 이제야 이해했어. 정말 똑똑하다."
마두로담에 오기 이틀 전, 우리는 18세기에 지어진 풍차 마을 '킨더다이크(Kinderdijk)'를 찾았다. 열 아홉 개의 풍차가 강가를 따라 줄지어 있는 아주 오래된 마을이었다. 사람들은 풍차를 세워 바닷물과 강물을 퍼내 땅을 지켜냈다. 유네스코가 이 마을을 "인류가 물과 싸워 살아남은 독창적인 증거"라고 부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풍차가 물을 막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힘으로 사람들의 삶을 더 넉넉하게 만들었다니. 그 지혜와 경험이 오늘날의 풍력 발전기로 이어졌다는 깨달음이 마치 구슬이 꿰어지듯 머릿속에 또렷이 그려졌다.
마두로담은 단순히 아기자기한 미니어처 공원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 하나의 국가 홍보관이나 다름 없었다. 이렇게 재미있으면서도 완성도가 높고, 뚜렷한 목적을 가진 공간은 처음이었다. 이곳을 둘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네덜란드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마두로담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네덜란드의 역사와 건축물은 물론, 이 나라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까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네덜란드의 구석구석을 모두 둘러본 것 같았다.
마두로담을 나와 도로를 달리다 보니, 더 자주 풍력 발전기가 보였다. 풍차의 가치를 알고 난 뒤여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거대한 날개들이 더 웅장했다. 네덜란드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1/4은 바람으로 만든다. 몇 년 뒤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더 많은 풍력 발전기들이 네덜란드의 바다와 들판에서 돌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네덜란드처럼 풍력 발전소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그러면 기후변화도 막을 수 있잖아. 오염도 덜 시키고."
"응, 그럼 좋지. 그렇데 쉬운 일은 아니야. 사람들은 석탄이나 석유로 전기를 만들면 공기가 더러워지고, 이산화탄소가 많아진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가격이 싸서 포기할 수가 없는 거야. 우리나라에는 화력 발전소가 61개나 있어. 풍력 발전소를 만들려면 처음에는 돈이 많이 들어서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하지만 석탄이나 석유는 언젠가 사라지게 될 거야. 그러니까 우리도 미래를 준비해야지. 너무 늦기 전에."
우리는 독일로 떠나기 전 '스헤베닝헨(Scheveningen)' 해변으로 갔다. 영화에서만 보던 북해는 정말로 어둡고 차가운 느낌이었다. 햇살을 삼켜버린 것 같은 잿빛 바다였다. 아이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도 속을 뛰어다녔다. 젖은 머리칼은 바람에 펄럭였다. 바람이 부는 곳에 우리의 내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