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유머속에 행복과 힐링이 함께 합니다.
"여보, 우리가 신용불량은 됐지만 아직 소화불량도 양심불량도 아니잖아!
그러니깐 파산 신청하지 말고 끝까지 갚아보자!"
신용불량과 소화불량, 양심불량. 라임이 섞인 아내의 말장난에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하하 그래, 맞아! 신용불량은 됐지만, 양심불량은 아니니깐 한번 갚아보자!"
16년 전 그렇게 시작된 빚 갚기는 결국 13년 만에야 수 억의 빚을 전부 다 변제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양심불량자는 되지 말자고 웃으면서 했던 말이 씨앗이 되어 이후 힘들 때마다 유쾌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사실 아내와 유머를 즐기면서 잠깐 웃고 헤헤거렸지만, 돌아서면 다시 만만치 않은 일상이었습니다. 잠깐 성냥불같은 아재개그로 서로의 희미한 미소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팍팍한 환경이 힘들어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정한 유머의 가치를 깨닫게 하고 제 인생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한 분을 접하게 됩니다. 바로 캐나다의 장 크레티앵 전 총리였습니다. 아마 장 크레티앵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으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장 크래티앵은 전 캐나다 총리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유명한 정치인입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고, 안면 근육 마비로 입이 비뚤어진 탓에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1993년 그가 총리 후보가 되어 선거운동을 합니다. 총리의 정견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 기자가 장 크레티앵에게 비꼬듯이 물었습니다.
“캐나다 총리가 된다면 언어장애 때문에 업무수행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자 장 크레티앵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 저는 선천적인 장애로 말을 잘 못합니다. 인정합니다. 그래서 저는 거짓말도 못합니다.”
이 말 한마디에 국민들은 장 크레티앵의 인간적인 매력과 위트에 끌리게 됩니다. 결코 거짓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킵니다. 이후 3번이나 연임을 하면서 임기 내내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습니다.
그의 스토리는 평소 혀가 짧다고 생각해서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두려운 저에게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말할 때 긴장하면 혀가 꼬였습니다. 잘해야지 하면서 신경을 쓰면 쓸수록 입 안은 더욱 바짝 말라갔지요. 점점 말하는 것이 고통스러워지고 급기야 짧은 혀를 가진 제 자신이 바보처럼 보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짧은 혀는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를 넘어 열등감의 뿌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신용불량으로 찌그러진 제 열등감에 불을 질렀습니다. 열등감은 일상생활 속에서 종종 아내와 큰 갈등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장 크레티앵의 한마디는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아하! 장애로 말을 못 하는 것을 저렇게 웃음으로 표현하는구나! 치명적인 단점을 인간적인 매력으로 반전시키는구나! 이것이 바로 자신을 살리고, 듣는 사람까지 살릴 수 있는 유머구나를 배우게 됩니다. 이후 저는 그의 멘트를 응용해서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혀가 좀 짧습니다. 짧으니깐 좋은 게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한 번도 제 혀를 씹지 않았습니다. 하하.."
그리고 아예 장 크레티앙의 멘트를 빌려와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혀가 짧으니까 말을 잘 못합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제일 못하는 말이 바로 거짓말입니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을 웃기는 유머도 존재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아픔과 상처, 괴로움 등에 햇빛을 쪼이는 유머도 있었던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해석하면서 웃음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유머가 존재했다니!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유머란 재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제는 아름답다라는 생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신체적인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부터 서서히 유머를 들이대면서 웃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아내도 점차 이런 유머에 익숙해지면서 자신의 불만족스러운 것들을 유머로 바꿔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놀란 눈으로 호들갑을 떱니다.
"여보, 여보! 너무 신기해!"
"뭐가 그렇게 신기해?"
낚싯바늘에 월척이 걸린 듯한 표정으로 아내가 말합니다.
"내 키가 153cm잖아.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이런 것까지 다 아시고
내 키와 아이큐를 똑같이 해주셨는지 정말 신기해!"ㅋㅋ
아내의 멋진 위트에 웃었습니다. 아내는 제일 먼저 자신의 키를 가지고 웃음을 만들어 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152cm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고작 1cm 밖에 크지 않고 아예 성장이 멈춘 것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남아있었지요. 본능적으로 자신의 키가 약간 작다는 생각에 내내 서운함(?)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그 부정적인 생각에 유머를 들이대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후 아내는 자신의 키와 관련해 수많은 긍정의 유머를 생산해내면서 작은 키를 최고의 유머소재로 만들어버립니다.
"여보, 생각해보니 나는 키가 작은 것이 아냐! 남들이 키가 큰 것일 뿐이야!"
그러더니 언젠가는 이렇게 말하면서 저를 웃깁니다.
"여보! 내 키나 당신 키나 똑같은 것 같아!"
헐~~~어떻게 177cm인 내 키와 153cm인 아내 키가 같단 말인가!
어떻게 말할까 궁금해 두 귀를 쫑긋 세웠다.
"잘 생각해 봐! 2m가 안 되는 건 당신이나 나나 똑같잖아!"
부정적인 생각은 쇠붙이에 슨 녹과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녹은 쇠를 먹어치우죠.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은 모닥불의 온기와도 같습니다. 옆에 있기만 해도 온 몸으로 열기가 퍼지며 행복해집니다. 유머는 긍정을 넘어 따뜻함뿐 아니라 세상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면서 아픔을 오히려 웃음의 소재로 만들며 가지고 놀게 했습니다. 프로이트는 유머야말로 인간이 갖는 최고의 자기 보호 도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단점과 아픔을 풍자하면서 가지고 노는 것이야말로 유머의 진수였습니다.
몇 년 전 아내와 제주 성산일출봉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신나게 오르던 아내가 발이 삐끗하더니 넘어졌습니다. 일어나던 아내가 새끼손가락을 들면서 말합니다.
"여보, 나 새끼손가락 부러진 것 같아! 호호호"
오! 이런 정말 아내의 새끼손가락이 90도가 꺾어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면서 말합니다.
"그래도, 다행이다. 다른 손가락들은 멀쩡해서.. 호호"
아내를 병원으로 후송(?)하면서 아내와 불쌍한 손가락을 보면서 감사의 튀밥을 튀겨냈습니다.
"그래도, 다리몽둥이가 부러지지 않아서 다행이야! 하하"
"맞아..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이라 다행이야!"
"우와.. 이 정도면 보험금도 많이 나오겠다.. 호호"
"정말.. 천만다행이다 그렇지?"
병원까지 가는 30분 동안 통증이 만만치 않을 텐데 아내와 감사를 찾고 함께 웃었습니다. 이후에 우리 부부는 일상의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와 긍정과 유머를 적용해서 우리만의 유쾌한 해석을 만들었습니다.
"행복(幸福)"이라는 단어에서 "행(幸)"은 다행하다는 뜻입니다. 행복은 한마디로 "다행인 복"을 말합니다. 천만 가지 안 좋은 것 속에서도 좋은 것 몇 개를 찾아서 웃고 즐길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행복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을 원하면서도 만 가지 복이 가득 찬 만복을 원하는 욕심쟁이입니다. 돈도, 건강도, 인맥도, 실력도, 사회성도, 부부관계도, 인간관계도 완벽하고,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갖는 만복을 우린 행복이라고 착각합니다. 한가지라도 빠져 있다면 더 이상 행복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해지는 것이 점점 더 어렵게 되었습니다. 유머는 가득 찬 만복에서는 탄생되지 않습니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몇 개를 주워 들고 웃을 수 있을 때 진정한 행복이 옵니다. 당연히 그 부족함속에서 유머가 뭉게뭉게 피어나지요.
부부관계속에서도 우리는 완벽한 상대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의 단점이나 아픔을 이해해주기 보다는 부끄럽게 바라봅니다.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니 결혼생활은 내내 다행인 복에 맞춰진게 아니라 못내 아쉬워하는 만복에 맞춰져 힘들기만 합니다. 유머는 이런 생각을 뒤집어 버리고, 감사와 긍정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습니다. 어때요? 이런 유머의 매력이 멋지지 않나요? 이런 유머를 접하려면 일단 남편개그부터 해보세요. 어느새 이런 고급유머까지 구사하게 되면서 부부놀이뿐 아니라 세상을 가지고 놀아버리는 진정한 인생놀이의 고수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