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속에 극치가 숨어있어요.
입안에 밥알을 넣고 오물거리던 아내가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면서 말을 건넵니다.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던지기 전에 늘 하는 아내의 몸짓입니다.
"여보, 그런데 생각해보니깐 대관령 양떼목장말고
우리나라에서 양을 기르는 데가 없는 것 같아.. 자기 그 이유를 알아?"
마침 전날 밤에 다가올 강원도 여행을 이야기하면서 대관령 양떼목장을 잠깐 들르자고 이야기했던 터였습니다.
"아무래도 땅이 좁아 양을 기를 만한 환경이 안되는 거 아냐?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양고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는 모르겠네"
내 대답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아내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건... 양도...소득세를 내기 때문이래! 양도소득세!"
처음 들어본 이 위트인데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일단 놀라움의 눈빛과 재미있는 표정, 감동의 몸짓으로 최대한 오버해줍니다. 당연히 입으로도 경탄을 품어냅니다.
"양도소득세?..하하하.. 너무 재밌다. 당신 완전 유머리스트야! 하하 정말 기발한 유머야!"
아내는 내 반응에 대단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재미있는 유머에 그 정도로 웃어야지 맛이지 하는 표정입니다. ㅎ
과도한 빚에 찌들어 있을 때 주고받았던 유머 하나는 달콤한 보약이었습니다. 그 달짝지근한 맛에 빠져 습관처럼 인터넷에서 유머를 뒤졌습니다. 어떻게든 한번 웃고 하루를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 때문이었죠.
당시를 돌이켜보면 하루 종일 돈에 영혼이 털린 채 살아가는 완벽한 돈의 노예였습니다. 눈뜨자마자 이번 달 빚을 어떻게 준비할까? 빚 갚고 남은 돈으로 생활비를 할 수 있을까? 이번 달도 또 적자인데 어떻게 돈을 더 벌까? 내 생각은 온통 그놈의 돈, 돈에 묶여서 한치의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때 나눈 유머는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게 내 인생의 숨통을 뜨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읽었던 신영복 선생의 책에서 발견한 문구 하나는 우스개에 힘을 더해줬습니다.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웃음 하나가 삶의 두려움을 줄여주고, 내 근심을 따뜻하게 품어줬습니다. 늘 고양이 그림자만 봐도 두려움에 떠는 쥐 한 마리가 어느 날 도망가지도 않고 짝다리를 짚고 웃을 때가 있지요. 그러면서 고양이의 두 눈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째려볼 때가 있습니다. 쥐는 언제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간뎅이가 부었을 때? 쥐약 처먹었을 때? 아닙니다. 그건 바로 등 뒤에 쥐구멍이 있을 때입니다.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쥐구멍 하나만으로도 쥐는 결코 고양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마치 쥐를 위협하는 고양이 같습니다. 끊임없이 두려움의 고양이, 근심의 고양이, 걱정의 고양이는 우리를 잡아먹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위협합니다. 고양이만 보면 늘 도망치기에 바빴던 쥐가 드디어 쥐구멍을 발견한 순간 기분이 어땠을까요? 아마 천국을 발견한 기분이었을 겁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고양이의 가찮은 위협에 숨죽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겁니다. 그리고 오히려 고양이와 맞짱뜰 수 있는 대담함까지 갖게 되었을 겁니다.
어느 순간 유머는 내 인생의 쥐구멍이 되었습니다. 사소하지만 점차 웃을 일이 많아지면서 더 즐겁게 살아가는 하루가 늘었습니다. 스스로 내 감정을 좋게 만드는 능력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대단한 것에서 기쁨을 찾는 게 아니라 사소한 유머와 웃음 하나에서 기쁨의 에너지를 찾는 노하우를 얻게 된 거지요.
과도한 빚과 근심에 찌든 내 삶이 유머 하나로 위로되었던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그까짓 유머 하나 나눈다고 인생이, 부부관계가 바뀌냐고 콧방귀를 뀌어댑니다. 그까짓 거 웃는다고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고요. 공감이 가지만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하는 은밀한 비밀이 이 유머안에 숨어져 있었습니다. 바로 부부가 서로 웃으면서 나누게 되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자신감과 자존감의 선물을 덤으로 얻게 된다는 것을!
자신감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자존감은 무엇인가 원하는 것이 잘 되지 않더라도 끝까지 자기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일으켜 세우는 마음입니다. 유치한 유머 하나에 스스로 웃고, 함께 웃다 보면 어느 순간 묘한 자신감과 자존감에 넘치는 나를 느끼게 됩니다. 아내도 웃겼는데(?) 세상 뭐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불끈 솟아납니다. 당연히 신용불량과 좌절감에서 헤매는 내 자신을 일으켜 세워 다시 한번 힘을 내자고 격려하는 자존감도 생겼습니다. 사소함의 위대함을 강조한 신영복 선생님의 말이 진실이었습니다.
하루 하나! 아니라면 일주일에 하나라도 우스개 하나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가정의 생명수와 같습니다. 지금 참담할 정도로 힘들다면 한번 웃고, 웃기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사소함 속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나아가 자신감까지 얻을 수 있다면 점차 좋은 인생이 펼쳐질 것입니다. 당연히 좋은 남편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삶은 만만치 않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부부관계는 그러한 삶보다 백만 배 만만치 않다는 것에도 뼈저리게 동감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난관과 어려움을 이겨내면 그 속에 꿀 떨어지는 달달한 기쁨이 있습니다. 유머 하나라고 무시하지 마세요. 그것이 모든 것의 문을 여는 비밀이 있습니다. 오늘 밤에도 비밀을 문을 열기 위해 침대 머리에서 아내와 나눌 유머 하나 준비합니다.
여보! 가장 열정적인 닭은 어떤 닭인지 알아?.... 팔닥팔닭!
그럼 가슴이 늘 가슴이 설레는 닭은?.... 콩닥콩닭!
여보... 난 당신만 보면 가슴이 왜 콩닥콩닥이지? ㅋ 잘 자. 개꿈 꿔! 아니 내 꿈 꿔!
아십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은 유치함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의 모든 유치는 극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내 콩닥콩닥 우스개에 짜고친 것처럼 웃어줄 아내의 미소가 오늘 밤에도 침대를 스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