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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규상의유머학교 Feb 12. 2020

#06.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김수환 추기경의 매력위트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유머를 남긴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셨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말입니다. 왜냐하면 추기경님은 정말 품격 있는 유머를 많이 남긴 유머 고수였거든요. 그때 추기경님께서 얼마나 많은 유머와 위트를 남겨놓으셨는지 추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오랜만에 다시 그분의 유머 세상을 탐험해 봤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오랫동안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로 국민들에게 큰 위로를 주신 분입니다. 그분은 스스로를 바보라고 불렀습니다. 자신의 모교 자화상에 “바보야”라고 이름을 붙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니가 잘났으면 뭐 그리 잘났고 크면 얼마나 크며 알면 얼마나 아느냐?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니가 정말 바보같이 산 것 같다.”


스스로 바보였음을 고백하는 솔직함과 정직함은 오히려 그분의 천재성과 유머감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늘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한 삶을 추구했던  김수환 추기경님은 진정한 유머의 고수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유머를 추적하면서 나온 유머 하나하나가 꽤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머릿속에 넣고 오물조물 씹으면 씹을수록 신앙인으로서의 품격과 한 인간으로서의 향기가 동시에 솔솔 풍겨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분의 유머 세 개를 나누면서 그분의 유머 속에 숨긴 철학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유머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입니다. 

2002년 초 추기경님이 '대선'과 관련해 신문기자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가 다 끝나가는데 뜬금없이  추기경님이 슬쩍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저도 올해 출마합니다. 기호 1번입니다.”


마침 그 해 선거가 있었기에 이 말을 들은 기자들이 깜짝 놀랐자 추기경이 말을 이었습니다. 

“하하하 제 지역구는 천국입니다.”

얼마나 따뜻한 위트인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이렇게 고급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평상시 마음의 여유와 평안에서 나오는 살아있는 위트입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면서 아직도 부족하지만 천국을 갈망한다는 소박한 소망을 드러냅니다. 


두 번째 유머는 자신을 살짝 내려놓으면서 사람들에게 경계하게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평소에 수많은 외국 손님들과 면담 했습니다. 그때마다 다른 언어로 대화를 하기 때문에 한 신부님이 추기경님께 몇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자 추기경님께서 ‘나는 두 개의 언어를 잘하는데, 그 말이 무엇인지 맞추어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그 신부님은 ‘추기경님께서 독일에서 유학을 하셨으니 독일어를 잘하실 것이고, 일제강점기를 사셨으니 일본어를 잘하실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추기경님께서는 ‘아니다.’라고 대답하셨지요. 


다른 신부님이 ‘추기경님이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자주 뵈었으니 영어와 독일어가 아니겠느냐’고 추론하였지만 추기경님은 ‘아니다’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마치 스무고개를 하듯이 ‘영어와 일어’, ‘한국어과 영어’, ‘독어와 한국어’, 급기야는 ‘라틴어와 한국어’까지 언급되었지요. 그러자 추기경님은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두 가지 말을 아주 잘합니다. 하나는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참말입니다." 


사람들이 이 위트 있는 대답에 미소 지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자신도 거짓말을 하는 성직자임을 내치면서 인간적인 한계가 있음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세 번째 유머는 듣는 사람에게 신앙적인 믿음을 자극합니다.

1998년 외환 위기를 맞아 전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이 한창일 때 김 추기경은 추기경 취임식 때 받은 금 십자가를 내놓았습니다. 그 귀한 것을 어떻게 내놓으시냐고 주위에서 아까워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 예수님은 몸을 버리셨는데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아는 힘, 자신의 소유물까지 겸허하게 나눌 수 있는 추기경님은 늘 사람의 속엣말을 읽어내라고 말합니다. 속엣말을 읽어야만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서요. 

"사람의 마음속에서 웅얼대고 있는 속엣말을 읽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모든 사람은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대단합니다. 나 좀 알아봐 주세요. 나 좀 격려해주세요. 그러니 그 속엣말을 듣고 사람을 바라보면 됩니다. "

평소 추기경님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을 입에 올렸지만 감히 끝까지 읊조려볼 생각을 하기가 두려웠다고 고백합니다."


그 이유가 너무나도 인간적이어서 추기경님이 좋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너무 부끄러운 게 많아서...”


하나님을 종교와 교리로만 믿으면서 스스로를 큰 틀에 가두는 사람들을 종종 만납니다. 그분들의 입술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으로 화려하게 무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입에서 몸으로 내려와 손과 발의 수고로움으로 예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을 보기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23)"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그분의 지상명령인 사랑을 작지만 실천하면서 사는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엄마와 웃음 통화를 하고, 아내에게 유머를 하고, 동네분들에게 먼저 인사하려 노력합니다. 매일 감사하고, 기뻐하는 감사 약을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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