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백만 분의 1은 로또 1등 당첨 확률이다. 그렇다면 자산 1조 재벌 회장이 망할 확률은?
로또로 망한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3세 최회장.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때 복권집에서 로또를 사서 직원들에게 주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작년에 환갑이 지난 최회장은 모든 게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창업주의 셋째 손자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도련님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할아버지는 6.25 전부터 맨주먹으로 동동구리무 화장품과 치약 사업을 기반으로 굴지의 글로벌 화학 회사를 키워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일본에서 들여온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개조하여(그대로 베껴서) 전자 회사 초석을 다졌다.
돈이 돈을 버는 이런 기막힌 구조 속에 회사는 날로 번창했고, 지금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회장도 탄탄한 몇 개의 계열사를 물려받았고, 지금은 자산 1조의 준재벌 소리를 듣고 있다.
아침 9시에 일어나서 사우나를 가거나 골프 한 판 여유롭게 치고, 한 끼에 20만 원짜리 초밥을 먹으면 늦은 오후이다. 이때 최회장은 회사로 출근한다. 전문경영인이 알아서 경영을 하지만 형식적으로 몇 가지 보고를 받고 서명을 한다. 그리고 몇몇 직원을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간다. 사람 좋은 척 직원과의 저녁이 끝나면 친한 이회장을 불러 정마담 가게로 가는게 일과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최회장은 현실에 만족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재벌가의 핏줄이었다. 귀찮은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철학만은 확고했다. '공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하기보다는 탄탄하게 사업을 유지한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최회장이 전문 경영인에게 몇 번 잔소리만 하면 회사는 알아서 굴러갔고, 통장에는 매년 배당금으로 300억 이상이 쌓여갔다. 그리고 개인 생활비와 자동차, 하물며 최회장의 대저택 경비원까지 회사 비용으로 처리했다. 회사는 세금을 적게 내고 최회장은 주머니에서 돈 나갈 일 없으니 창조 경제의 전형이었다.
그러던 최회장이 환갑을 기점으로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정마담에게 연락이 왔겠는가. "회장님, 요즘 너무 가게에 뜸하신 거 아니에요? 요즘 뉴페이스 채용했는데 한 번 놀러 오세요."
"어, 그래. 내가 요즘 해외 출장이 바빠서, 조만간 이회장이랑 놀러 갈게."
사실 최회장은 해외 출장을 싫어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비행기의 소음 소리가 싫었던 탓이다. 일등석이라도 소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최회장이 그렇게 환갑 사춘기를 맞을 무렵, 계열사 직원 4명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당으로 가는 도중, 복권가게가 최회장의 눈에 띄었다. 최회장은 호기심으로 한 직원에게 물었다.
"김대리, 요즘 로또가 얼마야?"
"네. 회장님. 천 원입니다."
"당첨금은 어느 정도야?"
"네. 매주 다르긴 한데 10억에서 20억 정도입니다."
"그러면, 내가 로또 한 장씩 사줄게."
그러고는 비서에게 최회장의 지갑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최회장의 지갑에는 4천원이 없었다. 5만 원짜리만 두둑했다.
최회장은 신중하게 숫자 6개를 마킹했고, 복권가게 직원에게 4장을 뽑아달라고 했다.
5만 원을 받은 복권가게 직원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지만 최회장이 뽑은 숫자 6개를 똑같이 4장 출력했고 최회장에게 거스름돈 4만 6천원을 함께 건냈다.
최회장은 예의 그 사람 좋은 미소로 직원들에게 1등 대박 나라며 로또 1장씩을 건넸다.
그때 최회장이 왜 그랬을까? 털털한 재벌 회장 이미지로 남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고, 다음날 어떤 기사가 떴다.
"서울 광화문의 어느 복권가게에서 로또 1등 당첨이 4명 나왔습니다. 특이하게도 4명다 동 시간대에 수동으로 번호를 찍었습니다. 당첨금은 일인당 15억 원으로 세금을 제외하면 약 10억 조금 넘는 돈을 1인당 수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블라인드 게시판에 어느 글이 떴다. '회장님이 사주신 로또로 1등 돼서 퇴사한 썰.'
그렇다. 최회장이 신중하게 뽑은 로또가 당첨된 것이다. 직원 4명은 당황했지만 광대 승천은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진과장을 제외한 3명은 퇴사를 결심했다.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제법 큰돈도 손에 쥐었기 때문에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했다. 진과장은 수령액 중에서 5만 원권 2백 장을 뽑아 최회장께 갔다.
"회장님, 고맙습니다. 회장님 덕분에 이렇게 큰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5만 원 2백 장이 담긴 하얀 봉투를 최회장께 내밀었다.
최회장은 끝끝내 그 돈을 받지 않았다. 대신 매너리즘에 빠진 본인의 인생에 구원의 빛이 비치는 느낌이었다. 로또의 1등 확률은 5백만 분의 1이다. 자신은 5백만 분의 1을 직접 맞췄다.
'이보다 짜릿한 경험이 어디 있겠나!'
최회장은 경험한 그 어떤 도박보다도 이보다 짜릿한 경험은 없었고 생각했다. 도무지 말도 안 되는 확률을 자신이 예측한 숫자로 정복하는 그 느낌을 최회장은 잊지 못했다.
최회장은 이후 매주 로또를 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만원으로 시작해 다음에는 십만 원, 오백만 원, 삼천만 원.. 급기야 차 트렁크 사과 박스에 현금을 잔뜩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로또를 사기 시작했다. 많이 썼을 땐 한주에 10억 가까이 로또만 사기도 했다.
이론상으론 로또 당첨 확률이 5백만 분의 1이다. 즉, 50억 치의 로또를 사면 무조건 당첨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회장은 그 1등이 다시 당첨되지 않았다. 로또로만 가진 자산의 절반인 오천억을 투자했다. 그러는 사이 글로벌 경제 위기가 닥쳤고, 회사는 망했으며 1조 재산가인 최회장은 그렇게 빈털터리가 되었다.
상상이나 하겠는가? 로또가 무너뜨린 1조 재산가. 하지만 최회장에게는 냉혹한 현실이었고, 당장 밀린 월세가 걱정되었다. 그때 진과장이 생각났다. 최 회장이 사준 로또로 1등 당첨되고 천만 원을 사례금으로 내밀었던 친구. 그 정도 싹수면 지금이라도 최회장이 고사한 그 천만원을 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사리 진과장에게 전화했다.
"진과장, 나 최회장이네."
"야XXX, 당신 때문에 죽으려고 마포대교 왔어. 그때 당신이 준 로또 당첨돼서 내 인생 좆됐어. 그 돈으로 여기저기 투자했는데 결국 다 망하고 마누라도 떠나버렸다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 창업주 셋째 손자이자 한 때는 재산 1조의 준재벌이었던 최회장은 그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