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느 회사의 80년대 생 팀장과 60년대 생 임원의 대화가 있다. (우리 회사는 절대 아니다. 진짜 아니다)
A회의,
- 60년대 생 임원 J: 요즘 고객사 동향은 어떻노?
- 80년대 생 팀장 K: 고객들의 요구가 다양해져서 세부 실행 방안을 수립해야 할 것 같습니다.
- 60년대 생 임원 J: 단디하소. ('알아서 잘 깔끔하게 처리해라'를 경상도 방언으로 줄인 버젼)
- 80년대 생 팀장 K: 넵!! (고개도 약간 숙이며)
A회의 후 점심시간,
- 60년대 생 임원 J: 모묵지?
- 80년대 생 팀장 K: 상무님께서 어제 막걸리 많이 드셨으니, 멀리는 가지 못하고,걸어서 3분 내에 도착하고, 막걸리 해장에 좋은 짬뽕이나 순두부집이나을 것 같은데, 어제 제가 상무님이 좋아하는 짬뽕집에 갔었는데 요새 짬뽕 가게 사장님이 매너리즘에 빠져서 그런지 국물맛이 예전과 같지 않은 거 같아서… 얼큰XX순두부집으로 가시죠!
- 60년대 생 임원 J: 그래! 가보자!
그리고 여기 어느 회사의 80년대 생 팀장과 99년 생 팀원의 대화가 있다. (우리 회사는 정말 아니다. 맹세한다)
- 80년대 생 팀장 K: 너네들 잘 쓰는 말 있잖아. 알. 잘. 딱. 깔. 센! 알아서 쫌 깔끔하게 쫌 쎈스 있게 쫌쫌쫌!!
- 99년생 팀원 Y:
????????????????????
B회의 후 점심시간,
- 80년대 생 팀장 K: 머 먹지?
- 99년생 팀원 Y: 마라탕 어때요?
- 80년대 생 팀장 K: 난 마라랑 상극이야. 마라 먹으면 두드러기 일어나.
- 99년생 팀원 Y: 샐러드 어때요?
- 80년대 생 팀장 Y: 풀떼기 먹으면 오후에 계속 배고파. 그냥 요 앞에 짬뽕 먹으러 가자.
- 99년생 팀원Y:
???????????????????????????????????????
나는 80년대 중반생의 40대 팀장이다. 내 또래가 회사에서 겪을 법한 일을 조금 과장되게 극적으로 구성해 보았다. 우리 또래의 고충을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보다 나이 든 윗사람들을 위해 그분들의 현재 심기와 사정과 기분을 미리 알아내서 상황에 맞게 잘 대응하라고 배웠다. (아니, 강요받았다)
예컨대, 아침 회의에서 상사의 숨결을 느끼고어제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어떤 술을 마셨는지도 알아내,그날 점심 메뉴에 반영하기도 했다. 나는 궁예왕에서 '왕의 지위'만빼고그저 관심법만을 갈고닦아 나의 늙은 상사의 마음을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쎈스있게 알아채고 알아야만 했다. 이렇게 글로 적고 보니 참 피곤한 삶이었고, 지금도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사회에서 궁예의 관심법을 익히고 있다.
요즘 친구들(90년대 후반 생)을 대할 때는 많이 다름을 느낀다. 여기가 아주 중요한다. 꼰대와 비꼰대를 가르는 지점. 일명, '꼰대를 가르는 스팟' 줄여서 '꼰팟'
꼰대의 생각 회로는 그냥 단순하다. 라떼는... 요즘 것들은... 그러면 참 쉽다. 그래도 된다. 대신 발전은 없고 뒷방 늙은이, 뒷방에서 어쩔 수 없이 방망이 깎아야 한다. (혼자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결국 나만 손해다. 나만 시대와 세대에 뒤쳐진다. 젊은 세대의 버림을 받는다면 시대의 버림도 받을 것이 자명하다. 그러면 자연스레 경쟁력을 잃을 것이고 나의 설자리와 내 급여는 쪼그라들 것이다. 나는앞으로 20년 넘게 일해야하고(애기가 어리다. 아주 어리다...ㅠ) '단디하소' 혹은 '단디해라' 혹은 '그냥 쫌 잘해라'라고만 외치는 분들은 곧 집에 간다. 나와는 입장이 다르다.
TV 드라마에도 자막이 깔리는 시대가 되었다. 내가 20대인 20년 전 만하더라도 자막은 성가심 그 자체였다. 영화(그때는 한국영화에서 자막은 상상도 못 했고, 외화에서만 자막을 구경할 수 있었다)에서 자막을 읽으려면 영화 감상 자체를 방해받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대사뿐만 아니라, 감정, 배경, 그리고 영화 음악까지 알아야 온전히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막이 싫어 한국영화만 찾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2000년대 초 '무한도전'을 시작으로 예능과 드라마를 거쳐 이제는 한국영화에도 일부 자막이 도입되고 있다. 디지털과 편집 기술의 발달에 따른 시대 변화가 세대에 영향을 미쳤고, 이제는 세대가 강력하게 자막을 요구하는 양상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나는 수사반장의 자막을 보며, 앞으로는 '자막'처럼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확하게 내 생각을 전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세대가 거기에 맞게 변화했고, 자막이 없으면 시청자의 불편함을 초래하고 종국에는 시청자의 버림을 받듯이, 모호한 지시와 커뮤니케이션은 불편을 넘어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꼰팟을 벗고, 에어팟 끼고 일하는 <맑은 눈의 광인> 관점에서 이해해 보자.아니, 나랑 같이 노력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