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독서 후기로 쓴 글입니다)
쇳밥일지와 역행자를 연이어 읽었다. 역행자의 경우, 이미 베스트셀러로 유명했고 내가 구독하고 있는 밀리의 서재 순위에서도 앞자리에 있어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선택적 자기계발서 회피하는 개인적 성향으로 인해 일부러 못 본척 하고 있던 책이었다. 그러던 중, 지인의 강력한 추천으로 보게 되었고, 속도감 있게 그리고 내 뼈를 심하게 후려치는 심정으로 단숨에 읽어냈다.
역행자를 읽고, 이틀 만에 쇳밥일지를 접하게 되었다. 쇳밥일지를 처음 접했을 때 연이어 전혀 성격이 다른(알고보니 비슷한 점도 많았다) 책을 읽기 부담스러워, 시간을 두었다가 읽으려고 프롤로그만 살짝 보고 말자 생각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프롤로그가 너무 마음에 들어 책을 놓칠수 없었다. 회색 미래(개인적으로 김동식 작가와 회색 인간이라는 책을 참 좋아한다. 김동식 작가님과 천현우 작가님 잘 어울릴 듯하다)라는 제목 아래 '오랜 기간 떠돌이로 살았다'라고 시작하는 첫 문장이 마음을 울렸다. 이유는, 나 스스로를 이방인/떠돌이라고 정의하기 때문이다. (20살에 고향 김해를 등지고 20여년간 강남을 제외한 서울 곳곳, 이라크, 미얀마 등을 정처없이 떠돌며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1인)
당연히 자석에 끌린 듯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냈고, 내 기준에서 두 책은 닮은 듯 다른 점이 명확했다.
<공통점>
저자의 나이가 나보다 어리다. (전형적인 꼰대 기질의 발로로, 나이부터 따지는 한국의 무례한 전통 중의 하나에 입각한 사고 방식)
저자는 책을 열심히 읽었다.
읽는데 그치지 않고 열심히 꾸준히 썼다.
<가장 큰 차이점>
책에 주로 언급되는 돈의 액수. 수 억 ~ 수 십억(역행자) vs. 한 달 열심히 잔업에 특근까지 이어지는 노동 후 받은 월급 2백만원(쇳밥일지)
<요약평>
겨울 새벽에 차가운 물로 샤워한 느낌(역행자)
돼지갈비를 굽고, 소주를 마시며, 누군가의 치열한 삶의 얘기를 들은 기분. 냉정하다 못해 얼음장을 볼에 대고 있는 듯한 현실이 비록 앞에 있지만, 얘기를 듣노라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숯불처럼 가슴이 따뜻해짐. 하지만 그 안에는 보통의 무거운 삶이 있고, 자아성찰이 있으며, 사회 부조리와 불평등이라는 거대담론도 담겨 있음. (쇳밥일지)
역행자도 유익했지만, 쇳밥일지에 대해서는 책 정리도 하고 여러차례 곱씹어 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간 적응하느라 고생한 우리팀 MZ 사원에게 선물도 줬다. (책 선물은 쉽지 않다. 상대방의 취향도 잘 모르고, 잘못 선물하면 오히려 받는 이가 기분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쇳밥일지는 자신있게 추천하고 싶다)
여기서 잠깐, 쇳밥일지와 역행자가 오묘하게 오버랩 되는 부분이 있다. (물론, 내 억측이니 너무 반감갖지 말고 다음 내용을 읽어보시길)
바로 <쇳밥일지>에서 야구선수 출신 체육 교사를 언급한 부분이다. 같은 야구 선수 출신이지만 박찬호 선수가 받은 연봉과 체육 교사가 받는 연봉을 비교하며 천현우님은 승자 독식 체제의 문제점을 언급하였다. 주요 질문은 이렇다. '아무리 박찬호가 노력을 했을지언정 체육 교사보다 연봉 차이만큼이나 수천 배 노력을 했을 것인가?' 이다. 그럼에도 현대 사회는 소수의 그것도 극 소수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는 승자 독식 게임을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게임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불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며 체제의 문제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나도 여기에 무척 공감한다.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과 상상할 수도 없는 노력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운'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뜻 프로야구 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확률적으로 묘사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수많은 중고생 야구선수 중에서 프로에 지명될 수 있는 확률은 채 두 자릿수 확률도 되지 못하고 그 선수 중에서도 tv에서 매일 볼 수 있는 확률은 1% 정도이며, 기사에 끊임없이 나오고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면서 연봉을 받을 확률은 1% 미만이라는 것이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에 운(큰 부상도 없어야 하며, 너무 늦지 않게 감독의 눈에 띄어야함)이 따라준 결과물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는? 그 분들도 선천적인 재능과 노력, 운으로 인해 국가대표까지 올라갔지만, 앞서 언급한 박찬호 선수의 수입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물론, 처음부터 야구와 같이 인기 종목을 택하지 왜 핸드볼을 택했느냐고 물어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핸드볼 국가대표는 이렇게 항변할 수도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남다른 운동 신경으로 그 때 마침 학교 핸드볼 감독의 눈에 띄여, '니 핸드볼 함 해볼래?' 그래서 그 선수는 대답했다. '간식은 잘 나옴니꺼?'( 그 만큼 우연히 시작했다는 뜻이다) 감독은 그 선수의 머리를 콩 쥐어박고는 핸드볼을 쥐어줬다.
멋도 모르던 그 선수는 핸드볼을 처음 손에 쥐였는데, 손바닥을 꽉 채운 공의 감촉이 너무 좋았드랜다. 야구공을 쥐었을 때는 느끼지 못한 어떤 감정이 솟구쳤고 그렇게 핸드볼을 시작했드랬다.
그때 마침 우생순 신화로 핸드볼계도 나름 괜찮을 것 다는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도 그는 핸드볼을 너무 좋아해서 다른 운동은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라고 답변하면?
만약 박찬호 선수가 뛰어난 운동 신경을 가졌지만, 야구 대신에 무지막지한 허벅지를 이용해 역도를 무척이나 사랑했다면? 그래서 야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면?
승자 독식 체제는 이처럼 셀 수 없는 변수와 운이 재능과 노력이 더해져 함께 작용한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내 배경과 그 운'놈'에 의해 승자 독식 게임에서 처절히 패배했을 수도 있다. 단지 노오력이 부족해서 단순하게 치부하기에는 매에우우 한계가 있다.
역행자에서는 성공의 치트키를 알려주었다. 그것도 아주 자신있게. 현대사회는 치트키 몇 개만 알고, 나를 거기에 최적화 시키면 누구나 성공(경제적 자유) 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너무나 자신있게 설파한다. 나도 충분히 동의하는 점이 있고, 그 중에 몇 가지는 바로 실천 중에 있다. 글쓰기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현재 처한 상황, 자라온 배경, 성격(이마저도 자의식 파괴로 저자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등으로 인해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도 많다는 생각이든다. 내가 그렇다. 나도 경제적 자유를 바라는 수많은 월급쟁이 중 1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행자라는 책의 내용에 상당 부분 동의하고 자극도 받았지만, 왠지 내가 초라해보이고 지금까지 잘 못 살아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텁텁한 커피를 한움쿰 입에 물고 있는 듯한)
하지만 쇳밥일지를 읽고 다시 기운을 차렸다. 앞으로 내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살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힌트도 얻을 수 있었다.
두 책은 모두 좋은 책이다. 그리고 두 저자 분 또한 나이를 떠나서 배울 게 많은 분이다. 하지만 내 삶의 궤적은 천현우님을 닮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날 선 감각으로 하루하루 날 무딘 회사 생활을 영위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