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선정을 축하하는 동시에, 나도 숟가락을 살짝 얹는 기분으로 쓴 글입니다)
어제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아내님이 호들갑을 떨며 알려왔다.
"여보, 한강 작가님 알지? 노벨 문학상 받았나 봐?"
"정말?? 머머??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무식하게도 노벨문학상은 작품이 선정 기준인 줄 알았다)
아내님은 이런 나를 한심해하며,
"노벨문학상은 특정 작품 한 권으로 주는 게 아닐걸? 작가의 전반적인 문학적 기여와 업적에 평가일걸? 작가에게 주는 상일걸?"
나는 속으로 흠칫 놀랐다. 우리 아내님이 달리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겸연쩍어하며,
"그렇군... 어쨌든 너무 잘 된 일이야. 진짜 자랑스럽고, 작가님 대단하시다...ㅠㅠ"
그리고 설거지를 마저 했다.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가 2016년 맨부커 국제상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작가님과 작품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채식주의자>를 읽었으나 8년 전의 나는, <채식주의자>를 오롯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철이 없었고, 감수성이 어렸다. 다행히 뒤이어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는 무척 감명 깊게 읽었드랬다. 또 뒤이어 <작별하지 않는다>를 구매하긴 했으나 <작별하지 않는다>는 아직 읽지 않고 고이 이북 클라우드에 모셔 두었다.
나의 이북 클라우드에 가서 다시 한강 작가님을 검색해 보니 그동안 구매한 내역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어보기 위해 다시 다운을 받았다. 역시 '책은 종이책이든 이북이든 사놓으면 언젠가는 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만큼은 책 과소비하는 나를 칭찬해!)
클라우드에 남겨진 작가님 책의 흔적
작가님의 책 중에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책은 <소년이 온다>이다. 그래서 오늘 하고 싶은 얘기도 <소년이 온다>에 관한 것이다. 책은,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님은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했다는 인터뷰를 후에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마음에 와닿았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복수의 광주 518 관련 피해자들의 이야기가나오는데, 나는 그중에서 소년 동호와 그 어머니의 이야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당시 중학교 3학년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와 함께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너무나 억울한 죽음을 맞는다.
동호의 억울한 사연과 동호의 어머니 이야기도 각각 실려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아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동호 어머니의 마음이 너무나 절절하게 그리고 생생히 전해졌고, 6장 '꽃 핀 쪽으로'를 읽으며 참 많이 울었드랬다. 나도 아이가 생기고 보니 그때 그 슬펐던 감정이 간혹 증폭될 때도 있었다. 아들을 묻은 엄마의 마음이, 부모의 심정이 이제는 더 이해될 것 같아서 그랬다.
아니제.
그럴 수 없는 걸을 내가 알제. 내 손으로 너를 묻었은게. 하늘색 체육복에다 교련복 윗도리를 입고 있던 너를, 하얀 하복 샤쓰에다 아래위 까만 동복으로 갈아 입혔은게.
...
관 뚜껑 닫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네 얼굴이 얼마나 핼쑥했던지. 네 살이 그렇게 희었던 줄 그때 처음 알았다이.
나중에 느이 작은형이 그러드마는. 총을 맞고 피를 너무 흘려서 네 얼굴이 그리 희었다고. 그래서 관이 가벼웠다고. 네가 아무리 덜 컸다고 해도, 그렇게 관이 가벼울 수는 없었다고.
...
어쩌끄나, 젖먹이 적에 너는 유난히 방긋 웃기를 잘했는디. 향긋한 노란 똥을 베 기저귀에 누었는디. 어린 짐승같이 네발로 기어댕기고 아무거나 입속에 집어넣었는디. 그러다 열이 나면 얼굴이 푸레지고, 경기를 함스로 시큼한 젖을 내 가슴에다 토했는디...
우연히 이틀 전, '나의 직장 상사 전두광'이라는 글을 올렸었다. (그때 '소년이 온다'를 언급했었어야 했는데... 소설은 '오래된 정원'과 '레카토'만을 소개했다...) 거기서 정아은 작가님의 책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그는 왜 무릎 꿇지 않았던가>를 참고 했고, 책 속의 질문을 언급했다.
우리는 왜 전두환을 무릎 꿇리지 못했는가? 그가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국가적·사회적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을 피해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더 담론화해서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그래서 급히 이 바람이 휘발되지 않게 글로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