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많이 늦은 영화 후기일까? 아니다. 그럼에도 영화 <서울의 봄>과 연관은 있다. 왜냐하면 나의 직장 상사 전두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80년대는 격동이었다. 나는 당시 지금의 나의 아들만 한 나이인 4살이었기 때문에 격동의 시대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80년대를 알아야만 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하는 어떤 사명감 차원뿐만 아니라, 지금 나의 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라도 알아야 했다.
워낙 격동이었는지라 80년대 정치에 대한 영화와 책은 꽤 많다. 그중에서 나는 영화 <1987>과 소설 <오래된 정원>을 가장 감명 깊게 봤고 읽었다. 최근 영화 중에 1,300만 명이 관람한 <서울의 봄>도 빼놓을 수없다. <서울의 봄>이 한창 인기일 때, 나는 정아은 작가님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그는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를 읽었다. 정아은 작가님은 <모던하트>와 <잠실동 사람들>의 소설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르포 형식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니... 소설도 정말 잘 쓰는 분이 르포도 이렇게 잘 쓰시면...)
이 책은 '그는 어떻게 악인惡人이 되었고, 악인으로 죽었는가' 우리가 전두환을 단죄하지 못한 진정한 이유를 묻기 위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는 80년대를 이해하고, 80년대의 후광이 어떻게 대한민국에 드리워졌는지 이해하기에는 이만한 책인 없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봄> 영화도 좋지만 전두광과 그 시대를 폭넓게 통찰하고 싶어 하는 분들께 추천하고 다닌다.
나의 도반道伴 90년대생 C도 인기였던 <서울의 봄>을 감명 깊게 봤던 터라 나는 이 책을 추천했드랬다. 그리고 며칠 뒤에 C의 책 감상평을 들었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의 60년대생 회사 임원들이 왜 이 지랄인지 알았어요.'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이를 떠나 C가 비상한 감각과 통찰력이 있는 줄 이미 알았지만, 책을 통해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현실 감각이 이 정도로 탁월할 줄이야.대략 C의 감상평을 요약하자면, '1980년대 독재자를 향한 퇴보적인 선망 이후, 대한민국이 1990년대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면서 (국민을 갈아 넣어) 승승장구했는데 아직도 그 망령에서 못 벗어나더라'이다.
더 요약하자면, 이거다. '임자. 해봤어?' 아직도 땅크 정신을가진 60년대생 임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제 나의 생각을 조금 더 덧붙이고자 한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왜 내 주위에는 1980년대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 데모(시위)에 참여한 사람이 없을까? 아니면 샤이데모꾼이어서 데모한 사실을 감추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종교적인 교리의 영향으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 것일까? 조금이라도 자랑거리가 있으면 자랑해야만 하는 으른들이 많은데, 이미 정당성을 확보한 시위에 참석했으면 왜 자랑하지 않을까? 몇 번이고 같은 회사얘기. 회사에서 잘 나간 얘기. 골프얘기. 회사에서 골프 친 얘기는 주야장천 하면서.
나만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 퇴진 시위 운동에 촛불 들고 광화문에 참석한 얘기를 나의 아들 Hoya에게 해주고 싶은데 말이다. (얼른 자라나라. 34개월 된 Hoya야. 아빠가 재밌는 얘기 해줄게)
머리가 좀 굵어지고, 사회에서 20년 가까이 굴러보니 나는 나름 답을 얻었다. 1980년대 시위대는 당시 20~30대가 주축이었을 텐데 역으로 따지면 지금의 50년대생과 60년대생이다. 나는 50년대생과 60년대생을 주로 회사에서 만나는데, 이 분들은 시위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시위에 활발히 참석한 분들은 정상적으로 회사에 취업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대안으로 학원 강사나 자영업 쪽으로 많이 빠졌다고 한다. 이 사실을 김호연 작가님의 <나의 돈키호테>를 통해 알았다.
<나의 오래된 정원>을 쓰신 50년대생 황석영 선생님과 <레카토>를 쓰신 60년대생 권여선 선생님은 80년대의 역동적인 시위 모습을 소설로 말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분들은 직간접적으로 시위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자세하게 소설로 묘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1987> 중에서
다시 나의 직장 상사 전두광 얘기로 돌아오자. 눈치채셨겠지만 나의 직장 상사 전두광은 실존하는 인물은 아니다. 15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몇 개의 회사를 돌면서 내가 만난 60년대생 엘리트 직장인의 일반적인 특징을 모아 상상으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나의 직장 상사 전두광을 1987 시위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하려는 건 아니다. 독재에 항거하는 대신 착실히 공부해서 기업에 취직하고 우리나라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하드캐리로 끌어올린 게 나의 직장 상사 전두광 같은 분들이 일조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의 직장 상사 전두광이 30대와 40대에 주말도 없이 밤낮으로 일해서 국민소득 1만 불에서 3만 불로 훌쩍 끌어올린 것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나의 직장 상사 전두광은 이제 변해야 한다. 독재 정권 아래서 공부하고, 독재 정권의 영향력이 미치는 90년대 회사일을 배운 나의 직장 상사 전두광을 심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정말 많이 변했다. 백번 양보해서 90년대는 그래도 됐다고 치자. 개발도상국인 대한민국은 저 앞에 선진국 미국과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무조건 열심히, 안돼도 되게, 되는 거는 더 잘되게, 군인정신으로 밀어붙여도 어느 정도 말이 됐다. 왜냐하면 선진국이 길을 만들면 우리는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며 그저 열심히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임자, 해봤어?'는 달리말하면 '임자, 선진국은 이미 했잖아. 우리도 똑같이 따라 하면 돼.'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따라 할 선진국이 없다. 전두광 당신의 일부 기여로 이미 우리는 선진국이다. 최근 2년 새에 미국과 일본과 독일을 출장과 여행으로 다녀왔다.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별 차이가 없더라. 오히려 어떤 면에서 우리가 그들보다 시스템적으로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의 상사 전두광은 이제 변해야 할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땅크 정신으로 이천이십사 년을 살아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땅크 정신은 1980년에 고이 묻어두고, 선진국가의 일원으로 선진국민답게 젠틀하고 좀 여유도 가지십시다. 무조건 밀어붙이고, 지랄만 하지 말고.
p.s. 공교롭게도 10월 1일 광화문에서 땅크를 봤다. 정권에 호응해서 땅크를 보러 간 게 아니라 Hoya가 땅크를 너무 좋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래서 나의 상사 전두광은 지금 정권을 옹호하나 보다. 땅크 정신 코드가 맞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