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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Sep 10. 2024

출장가서 돈까스 카레라이스 먹다 입천장 홀라당 까진 썰

이정도면 산재 수준

이 이야기는 김해공항 국내선 푸드코트에서 돈까스 카레라이스 먹다가 입천장이 홀라당 까진 어느 직장인 썰입니다. 하지만 김해공항 푸드코트 측 잘못은 1도 없습니다. 그저 센스가 부족했던 어느 직장인의 부주의와 시대의 희생양에 관한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평범하디 평범한 직장인 J 씨가 살았다.


J 씨는 회사의 임원인 Y 씨와 함께 경상도로 1박 2일 출장을 갔다. J 씨가 경상도 출장에 동행한 이유는 일을 잘해서가 아니었다. 오직 경상도 사투리 통역이 가능했고, 식당 예약을 잘했기 때문이다. 임원 Y 씨는 서울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경상도 언어에 서툴렀고, 끼니는 반드시 적재적소에서 챙겨야 했다. 그런 면에서 J 씨 만한 인재가 없었다. (J 씨는 초중고를 경상도에서 나왔고, 대학은 서울에서 졸업했기 때문에 바이랭구얼이 가능했고, 식당 예약 능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진정 글로벌 인재요, 회사에서 촉망받는 인재다)


J 씨는 1박 2일 출장 동안 통역 실수도 없었고, 첫째 날 점심과 저녁, 둘째 날 호텔 조식까지 빈틈없이 수행했다. 임원 Y 씨의 표정도 좋아 보였다. J 씨는 셀프로 본인을 칭찬했다.


하지만... 아뿔싸! 호사다마好事多磨*라 했던가! 아니면 자만한 나머지 J 씨의 긴장이 풀렸던 것인가!!

생각지도 않은 쓰나미를 서울로 돌아가는 마지막 일정인 김해공항에서 만날 줄이야... 끝까지 들어보시라.


*좋은 일에는 탈이 많다.


J 씨는 마지막 끼니를 챙기기 위해 머릿속으로 복잡한 시뮬레이션을 계산했다. 하지만 아침 미팅 일정을 고려했을 때, 도무지 둘째 날 점심 식사를 할 짬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광란의 검색을 한 끝에 김해공항 국내선 푸드코트가 있음을 알아냈고, 거기서 '' 점심을 해결하고 비행기에 오르면 성공적인 피날레를 찍을 수 있음을 J 씨는 직감했다. 임원 Y 씨의 승낙도 받았다.


드디어 김해공항 국내선 푸트코트에 도착했다. 임원 Y 씨는 물냉면+왕만두 세트를 골랐다. 보통의 J 씨 같았으면 윗사람과 같은 메뉴를 골랐을 텐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돈까스 카레라이스를 골랐다. 임원 Y 씨를 자리로 먼저 안내하고, J 씨는 키오스크 주문도 거침없이 해냈다. 그리고 물냉면+왕만두 세트가 적힌 번호표와 돈까스 카레라이스가 적힌 번호표 2장을 들고 기다렸다.


'띵동'


물냉면+왕만두 세트가 나왔다. J 씨는 음식이 담긴 쟁반을 당당하게 들고 임원 Y 씨에게 가져갔다. 그리고 남은 돈까스 카레라이스를 찾기 위해 다시 조리칸으로 돌아가 기다렸다.


그사이 임원 Y 씨는 물냉면과 왕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씩 흘렀다. 하지만 J 씨의 돈까스 카레라이스는 나오지 않았다. J 씨는 먼발치서 임원 Y 씨를 힐끔거렸다. 여전히 물냉면과 왕만두를 먹고 있었다. J 씨는 다시 조리칸을 간절하게 쳐다보다 이상한 점을 느꼈다. 번호가 늦은 왕돈까스는 이미 나왔는데, 돈까스 카레라이스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J 씨는 초조했다. 그리고 임원 Y 씨를 다시 보았다. 여전히 물냉면과 왕만두를 먹고 있었다. J 씨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돈까스를 튀기는 여사님께 물어보았다.


"저... 저... 왕돈까스보다 돈까스 카레라이스 번호가 빠른데요..."


돈까스를 튀기던 여사님은 '별 희한 놈이 다 있네'라는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말했다.


"왕돈까스랑 돈까스 카레라이스는 고기가 달라 튀기는 속도가 달라요."


J 씨는 당황했다. 경상도 말 통역과 앞선 3끼를 완벽하게 수행한 그였지만 왕돈까스와 돈까스 카레라이스의 고기가 달라 튀기는 속도에서 차이 나는 점까지는 알지 못했다. 아니, 같은 메뉴인 물냉면+왕만두 세트를 주문하지 않은 본인을 자책했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약 3분 30초 전으로 돌아가 물냉면+왕만두 세트를 2개 시켰으리라...


3분 30초??? 그랬다. 키오스크 주문을 넣은 지 3분 30초 만에 돈까스 카레라이스는 완성되었고, 허겁지겁 임원 Y 씨의 자리로 돌아간 J 씨는 최종 망연자실했다...


임원 J 씨는 이미 물냉면의 면과 건더기는 다 먹었고, 왕만두까지 다 먹은 후 냉면 국물을 그릇째 호로록 마시고 있었다. 임원 J씨는 돈까스 카레라이스가 튀겨지는 3분 30초 만에 물냉면 한 그릇과 왕만두를 다 먹은 것이었다.


J 씨는 서둘러 돈까스 카레라이스를 먹기 시작했다. 동시에 J 씨의 입천장도 홀라당 까지기 시작했다. J 씨는 거의 1분 컷으로 갓 튀긴 돈까스와 엄청 큰 감자가 들어간 카레라이스를 다 먹었다. 남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음을 이해해 주자.


J씨는 음식 사진도 못찍었다. 그래서 독자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김해공항 국내선 푸드코트 홈페이지에서 메뉴를 받아왔다.  <출처: 플레이팅 김해공항 국내선 3층점>

J 씨는 실로 당혹스러웠다. 경상도 말을 바이랭구얼로 통역하는 글로벌 인재인 J씨도 한국 직장인의 빨리빨리 밥 먹는 문화의 벽을 극복하지 못했다. J 씨는 오만가지 의문에 사로잡혔다.


'왜 물만두+왕만두 세트를 2개 시키지 못했나'


'왜 돈까스 카레라이스는 왕돈까스 고기와 다른가'


'왜 한국 남자들은 밥을 빨리 먹는가!! 물냉면과 왕만두를 어떻게 3분 30초 만에 먹을 수 있으며, 1분 만에 입천장이 홀라당 까지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돈까스 카레라이스를 먹을 수 있는가'


J 씨를 대신해서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알 듯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바로, 군대 문화의 영향으로 특히 한국남자의 밥 먹는 속도가 엄청나게 상승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여수의 어느 섬에서 그림 그리고, 집필하는 김정운 교수님(뽀글뽀글 파마머리 한 그분)도 비슷한 고민을 한 것 같다. 김정운 교수님이 집필한 <창조적 시선>의 일부 내용을 살펴보자.



또 ‘군대 이야기’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이삼 년의 군대 생활이 한국 남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기 때문이다. 성인으로서의 자의식이 막 생기자마자 느닷없이 살벌한 환경에 던져지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의 남자들만의 세상이다.


그것도 전쟁에 대비하여 ‘살인 훈련’을 받는 곳이다. 20대 초반의 사내들이 성인이 되어 처음 겪는 이 살벌한 체험은 평생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는다. 그래서 술잔만 돌면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왜 우리가 청춘을 그곳에서 보내야 했는지, 평생에 걸쳐 묻고 또 묻는 것이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까라면 까’야 하는 권위적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군대 경험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요즘 군대는 달라졌다’지만, 군대는 군대다. 한국 남자들의 행태를 이해하려면 군대를 이해해야 한다. 물론 군대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구태여 내가 할 필요는 없다. 검색하면 이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내 의문은 이 독특한 ‘한국 군대’가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는 것이다.



아 그런데... 또 아뿔싸! J 씨 정보에 따르면 임원 Y 씨는 군대 대신 방위를 나왔다는... 그럼에도 그 역시 빨리빨리 시대가 낳은 괴물이자  희생양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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