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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Oct 03. 2024

오키나와의 운전은 꼰대의 두뇌를 풀가동 시킨다

갤러그와 오른쪽 운전

https://brunch.co.kr/@humorist/214

우여곡절 끝에 짐꾼 자격으로 아내님(4X연차 인생) 그리고 아드님(34개월 차 인생)과 함께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오키나와 공항 음료수 자판기. 나는 일본 여행하면 이 자판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가격도 12년 전 처음 일본 여행 때와 비슷하다.

아내님이 여행 브레인(기획, 일정, 예산 등등)을 맡고 나는 짐꾼 및 렌터카 운전수를 자처(?)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렌터카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운전수가 필요했고 운전수를 굳이 자처하지는 않았지만 상황이 그랬다. 아내님은 여행 일정을 점검하랴 쇼핑 목록을 점검하랴 34개월 된 아드님을 돌보랴 정신없기 때문이다.


사실 나보다 아내님이 훨씬 운전을 잘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호기롭게 내가 운전을 하겠노라고 등 떠밀려 외쳤다. 하지만 착잡하고 걱정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한국에서도 잘 못하는 운전을 일본에서... 그것도 오키나와에서 하게 될 줄이야...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렌터카를 등록하며 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렌터카를 등록하면서 밖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더 가라앉았다. 왜냐하면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님에게 물었다.


(마음이 깊이 착 가라앉은) 나: 운전석이 오른쪽이네?


아내님: 그것도 몰랐어? 그리고 준비 안 했어? 내가 유튜브로 오른쪽 운전 공부하라고 했잖아!!


(마음이 찢어지는) 나: 공부했지. 알아. 걱정하지 마.


 때, 내 머리에 섬광처럼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고 신해철 님께서 어떤 라디오 방송에서 했던 말이다.


'저는 일본에서 하는 오른쪽 운전이 어렵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오락실 갤러그 때문이예요. 어렸을 때 오락실에서 살았거든요. 그 경험 덕분에 일본에서 하는 운전이 어렵지 않았어요.'


진짜 고 신해철 님이 그랬냐고? 다른 신해철 님 어록은 많이 남아있는데 이 오락실 갤러그 어록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지만, 95% 이상의 확률로 나는 장담한다. 분명히 저런 말을 했던 것으로.

오른손과 왼손을 동시에 사용하는 최고의 창의력 계발 툴Tool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오락실에 꽤나 살았는데, 나를 키운 건 8할이 오락실인데... 렌터카를 등록하며 그 짧은 순간에 고인의 숨겨진 어록까지 생각해 가며 이런 생각까지 미쳤다. 아마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가족(아내님, 아드님)의 생명까지 책임져야 하는 혹독한 가장의 무게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나는, 일본에서 오키나와에서 그리고 오른쪽에서 처음 운전을 했다. 다행히 오키나와의 다른 운전수들은 과속도 하지 않았고, 외국인 초보 운전수라고 무시하지도 않았으며 클락션도 빵빵 거리지 않았다. 평균 40~50 킬로미터로 운전하며 무사히 정말 무사히 그리고 다행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키나와 한국인 운전수의 상태

그럼에도 (죽을 고비까지의 경험은 아니었지만) 역주행을 피하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두뇌가 풀가동 되고 있는 상태임을 깨달았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은 그의 저서 <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입니다>에서 '창의적인 사람은 없고 창의적인 상황만 있다'라고 강조했다. 만약 창의적인 상황이 있다면, 나는 오키나와에서 운전을 하며 역주행을 피하기 위해 가족의 안위를 위해 창의적인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갑자기 창의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아내님은 나의 창의력을 키워 AI 시대에 적합한 인재로 조련하기 위해 이번 여행을 계획한 건 아닐까? 그래서 초보 운전수인 나로 하여금 오른쪽 운전을 맡긴 것이다!



p.s. 굳이 창의력을 위해서라면 일본까지 와서 운전할 필요는 없다. 가까운 오락실 가서 갤러그 하자.


갤러그를 하는 마음으로 오키나와에서 운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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