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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Oct 01. 2024

직장인, 오키나와 원정대 짐꾼으로 발탁된 사연

어렵다.. 인생도 보고도 휴가도 오키나와도

한 일 년 전인가 지금의 아내가 '항공권 핫딜 떴어. 내년 10월 초에 Hoya(34개월 된 우량아) 데리고 오키나와 갈 거니깐 달력에 표시해 놔'라고 말했다. 아니 말했던 거 같다.


당시의 나는, '음... 또 저러는군. 그때 되면 아마 어떤 사정이 있어서 취소될 거야'라고 아주 편하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는 어떤 능력을 타고났는데, 항공권 핫딜을 아주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한 일 년 전부터. 하지만 벌써 몇 번이나 예약하고 취소했던 경험을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일 년 전의 나는. 


하지만 24년 10월이 다가올수록 평소와는 다른 색다른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아내의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것. 그리고 우량아 Hoya는 이제 제법 사람꼴을 갖춰 비행기를 타도 되겠다고 아내 혼자 자체 결론을 내린 것.


'이거 이거 이러다가 진짜 Hoya 데리고 비행기 타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3개월 전쯤의 나는 불안함 마음에 휩싸였다. 


그리고 하늘이 도왔다...


늘 그랬듯 2개월 전쯤에 지금의 아내와 크게 싸웠다. (일부러 그런건 절대 아니다. 오키나와 여행을 피하려고 싸웠다는 루머가 있는데 절대 아니다) 아니, 크게 혼났다는 표현이 맞다. 누가? 내가... 왜 혼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야 머.. 혼날 짓을 많이 하니깐(이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이번 혼남은 혼남으로 그치지 않았다. 선물도 있었다. 역시 인생이란 반전의 연속.


대노한 아내님은,


'10월 오키나와 여행 나랑 Hoya만 다녀올게. 넌 안 와도 돼. 기대도 안 했어. 그래서 일부러 너꺼는 따로 끊었어.'


'아싸싸싸싸쌋ㅅㅅㅅㅅ 개이득... 5일 동안 혼자라니...'


그래도 나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는 체 침울한 표정을 유지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라스베가스의 어느 냉철하기로 유명한 도박꾼처럼.


하지만 세상은 절대 내 맘대로 되지 않더라. 

아내님은 나라는 인간이 못마땅해도 나의 노동력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나 보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의 노동력은 미워하지 마라' 머 이런 느낌이다.


그렇게 대노했음에도, 그리도 분명히 나보고 따라올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음에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나는 오키나와 원정대에 짐꾼으로 발탁되어 있었다. 아내님도 고민했으리라... 저 웬수를 데려가느냐 마느냐... 실리를 택한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오키나와 원정대의 짐꾼으로 선임되었다.


2주 전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나의 오키나와 여행 항공표가 17만 원이라는 사실을... '아니. 부산김포 왕복 비행기도 20만 원이 넘는데. 이게 실화라고?' 아내님의 능력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며...


십칠만이천팔백원짜리 오키나와 왕복 항공권.

많이 불안했다. 아내님은 그 어느 때보다 오키나와 원정대를 총괄 지휘하는데 열의를 불태우고 있었고, 반대로 회사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https://brunch.co.kr/@humorist/207

내가 며칠 전에 썼듯이, 우리 회사가 속한 배터리 업계가 캐즘인가 캐롯인가 먼가로 아주 안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 분위기는... 아니, 정확히는 나의 바로 상사님인 J전무께서 심기가 불편하다. (물론, J전무님의 심기는 일 년 365일 내내 불편하긴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불편하실걸?)


오키나와 원정대 짐꾼으로 최종 확정되고 2주 전부터 J전무께 보고 타이밍을 잡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세상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추석 연휴가 있었고, 정부는 뜬금없이 10월 1일 오늘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 버렸다. 원래 계획은 이번주 월화 근무하고 내일부터 휴가를 쓸 계획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공휴일이 생긴 것이다.


결국 지난주까지 오키나와에 짐꾼으로 발탁되었다고 보고하지 못하고... 9월 30일 그러니깐 어제를 맞이했다. 그런데 아뿔싸... J전무는 하루종일 외근이었다. 그것도 사장님을 모시고(칼국수 좋아하시는 그 사장님 맞다).


어떡하지... 마음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아내님은 이런 사실을 알까? 괜히 아내님을 조금 아주 조금 진짜 조금 책망했다. 그래서 초 베스트 타이밍을 뽑기 위해 그동안 14년 직장 생활을 통해 배운 나의 기술을 써먹기 시작했다. 우선  J전무님의 일정을 세세하게 파악한 뒤, 동선과 KTX 타는 시간까지 확인했다. 갑자기 내가 J전무의 일정을 챙기자 다른 직원들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평소에는 1도 관심 없거든요...)


그래서 나의 종합적인 전략기획 솜씨를 바탕으로 아주 적합한 타이밍을 뽑았다. 바로 J전무가 돌아오는 KTX 안에서 전화로 오키나와 짐꾼으로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알리기로 한 것. 그 배경에는 한껏 피곤해진 J전무의 노곤노곤한 마음에 침투하려는 나의 안일한 생각이 있었다.


때는 오후 2시 20분. 나는 중요한 회의 중에, 다시 중요한 통화가 있는 것처럼 회의실을 나왔다. 그리고 J전무께 전화를 걸었다.


통화 내용은 안 밝히련다. (아마도 잡담 기술을 소개하는 편에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너낌)


어쨌든 휴가 승인은 받았다. 하지만 좀 찜찜하게 받아냈다. 그래도 받긴 받았다.


오늘, 정부가 선사한 갑작스러운 공휴일에 아내님은 당직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국가의 부름을 받아 나갔고, 나와 우량아 Hoya 둘만 뻘쭘하게 남았다.  슬슬 정신차리고 오키나와 원정대를 위한 짐도 챙겨야한다.  


오키나와에서 짐꾼 역할을 수행하며 글도 몇 개 뽑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 짐꾼 역할도 제대로 못한다고 아내님이 쿠사리* 줄려나... 이래저래 어려운 짐꾼 인생이다.


*일본 여행이고 일본 현지에서 듣는 핀잔이기 때문에, 우리말(?)인 핀잔보다는 쿠사리가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우량아 Hoya가 뒤집기도 못할 때, 아내님은 Hoya 여권을 만들었다. 이제 그 빛을 발하는가 보다.


수줍게 공개해봅니다... 제가 왜 우량아라고 하는지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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