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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Sep 29. 2024

이혼준비하다가 진짜 기절한 부장님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이제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당시에는 너무 화가 나고 어이없기도 해서 도무지 쓸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쓸 수 있다. 아니다, 써야 화해하고 나도 자유로워질 수 있겠다 싶어 쓴다.


1년 전에 우리 회사 역사상 최고 최대 최초 스펙을 가진 부장님 한 분이 입사했다. (P부장이라고 하자)


잠깐 약력을 소개하자면,


- 80년대 생

- 강남 8 학군 고등학교 졸 + 서울대 서양사학과 졸 + 미국 어느 대학(어느 대학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MBA 석사 졸

- S증권 및 K증권 등 우리나라 유명 증권회사와 컨설팅 회사에서 15년 이상 경력


이런 약력과 스펙을 가진 P부장이 중소기업인 우리 회사에 어떻게 입사하게 된 지는 잘 모른다. (알아도 모른 척할 뿐) 다만, 화려하게 입사했다는 것만 안다.

여러모로 입사할 때 화제가 됐다. 삼각별 차를 출퇴근용으로 쓰고, 와이프는 구글을 다니는 등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멀쩡하고 부러움을 불러일으킬만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P부장이 입사가 결정되었을 때, 우리 회사 P전무가 한 말을.


'우리 회사 역사상 최초 서울대 출신이고, 최고의 스펙을  가졌으니 많이 배우도록! 우리 회사에서는 M&A를 총괄할 거고 나중에는 크게 쓰일 거야!'


당시 나는 속으로 궁시렁궁시렁 쫑알쫑알 불평불만이 많았다. 첫 번째 이유는 P부장 입사 전까지 M&A 업무는 내가 담당하고 있었고(내가 잘 못 해서 그랬지만...) 두 번째 이유는 나의 못난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학벌과 스펙도 완벽하고 부자처럼 보여서 열등감이 더 폭발했드랬다.


P부장은 성격도 모나지 않아서, 중소기업인 우리 회사에도 적응을 잘했다. 다행히 나와는 업무가 잘 나뉘어 나도 P부장과 잘 지냈드랬다. 그런데 조금 이격이 발생한 것은 P부장이 입사하고 6개월이 지난 시점인 작년 말부터 갑자기 결근이 잦아진 것이다. 그것도 당일 아침에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결근이 몇 번 계속되자 나를 포함한 동료들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걱정 +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의심은 다른 좋은 데로 이직하려나? 이런 류의 의심) 성격이 조용조용한 P부장인지라 회사내에서 그렇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동료는 없어서 더더욱 그 속내를 알기 어려웠다.


작년 말 P부장과의 카톡

이러다가 올해 초에 사달이 났다. 이틀인가 삼일인가 아예 연락이 되지 않은 채 회사를 무단 결근 한 것이다.

사유는 기절... 기절을 좀 오래 한 것이다. 일박이일인가 기절했다. 

이건 같은팀 다른 후배가 연락한 내용

그렇게 P부장은 병가와 휴가와 결근을 지속하다가 3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정확히는 회사에서 권고를 했다. 사직을.


나중에야 안 사실인데, P부장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 스트레스는 바로 이혼(구글 다니는 그분)과 재산분할과 양육비. 두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재산분할이며 양육비가 만만치 않아 그 스트레스가 엄청났다고 한다. 진짜 기절할 정도로...


물론, 내가 P부장의 사정을 정확히 알 수도 없고, 이혼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P부장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다면, 아마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지나지 않았나 싶다.


결혼 후 어쩔 수 없이 아내와 떨어져서 미얀마 시멘트 공장에서 노동자로 2년 근무했었다. 심리적으로도 일적으로도 힘든 시기였다. 그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의를 유튜브로 알게 되었다. 나는 불교신자도 아님에도, 즉문즉설 강의를 참 많이 들었다. 지금은 세세한 내용까지 기억나질 않지만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 나름대로 정립할 수 있었다.


행복은 불행하지 않는 것이고, 사람과 사람의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해야 할까?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걸, 아예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면 어떨까? 그렇게만 마음가짐을 다질 수 있다면 불행할 일도 없고, 행복에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꽤 많은 책을 읽었드랬다. 잘난 사람 책, 못난 사람 책, 못남을 극복한 사람 책, 잘 나가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 책 등... 그리고 소설도 많이 읽었다. 참 다양한 인생이 있구나 싶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비교 우위에 의한 스스로 위로는 경계해야 한다. 예컨대, '타인의 어떤 기구한 인생을 보고 그나마 나는 살만하구나' 하는 생각들. 이런 생각의 메커니즘을 지속하다 보면 발전은 없고, 현실의 안주만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인간인지라 나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을 보면 스스로 안도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제일 경계하는 생각의 메커니즘 중 한 가지이다.


다시 P부장 얘기로 돌아가자. P부장이 우리 회사에 8개월 남짓 다녔는데, 사실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많지 않은 대화 중에, P부장이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질문을 기억한다.


'책을 추천해 주시겠어요?'


책을 읽고 싶은데 책을 읽은 지 오래되어, 어떤 책을 읽어야 될지 모르겠다며 나에게 질문한 것이다. 그때 나는 젠체하고 싶은 마음에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추천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P부장이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조승리 작가님의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추천하겠다.


추천하는 이유는 이 책의 공식적인 추천사 2편으로 대신하련다.


이병률(시인·여행작가)

그녀의 글의 권위는 정확한 삶의 태도에 의해 가능하다. 세상을 맘껏 활보하지 못하는 입장인데도 어떻게 이렇게 절도 있게 세상을 읽고, 삶을 철학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예측하는 바로는 이미 그녀가 심연에 도착한 것은 아닌가 싶은 것이다. 모든 예술가들이 그토록 가서 살고 싶어 하는, 어떤 경지로의 찬란한 도착……. 이 책을 읽고 슬펐고 뜨거웠으며, 아리고 기운이 났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전한다. 그리고 그녀의 훤칠한 글 앞에서 내가 바짝 쫄았다는 사실까지도.

박현경(동화작가)

읽는 도중 목이 메었다. 열다섯 한창 꽃피울 시기에 청천벽력을 떠안았는데 그걸 이토록 담담하게 적을 수 있다니, 평범치 않은 정신력과 필력이었다. 점자판과 노트북과 TTS를 숱하게 오가며 적었을 그의 글에서 나는 때론 장난꾸러기 같고, 때론 MZ세대 그 자체이며, 때론 전쟁을 겪은 듯한 노인을 만났다. 고독하지만 담대하고, 고집스럽지만 섬세한 그의 세상은 아름다운 정신 ‘승리’다.




p.s. 조승리 작가님의 자기소개 부분도 인상 깊다.

86년 아시안게임을 시청하다 나를 낳은 엄마는 내 이름을 ‘승리’라 지었다. 열다섯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어 이제는 눈앞이 어둠으로 가득하지만, 엄마가 지어준 이름 덕분에 나는 대한민국의 승리로서 신나는 일을 찾아 어둠 속을 헤매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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