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그다드Cafe Sep 29. 2024

5년에 4번 이직하고 지금은 K자동차 다니는 동생

5년에 둘이 합쳐 이직 6번

도반道伴: 불교 용어. 함께 도道를 닦는 벗.


친한 동생이자 도반이 있다. 나보다 나이는 8살 어리고, 나의 전전직장 L종합상사에서 5년 전에 만났다.


우리가 처음으로 만난 이후, 나는 2번의 이직을 했고, 나의 어린 도반은 4번의 이직을 했다. 5년에 둘이 합쳐 이직 6번. 1년에 1.2번 꼴이니 10년이 지나면 12번의 이직을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어린 도반(줄여서 Young도반, 영도반)과 나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직 전문 컨설팅 회사를 차리자며 도반결의를 가끔 다진다.


영도반의 커리어에 대해 잠깐 소개하자면,


- 신방과를 나왔지만, 신방과보다는 회계에 두각을 나타냄.

- 미국회계사 및 회계/재무 관련 자격증 다수 보유

- 첫 번째 회사: L종합상사

- 두 번째 회사: W투자증권

- 세 번째 회사: 대형은행

- 네 번째 회사: 회계법인

- 다섯 번째 회사: K자동차


영도반은 현재 5번째 회사인 K자동차에 다니고 있으며 6개월 정도 되었다. 그런 영도반을 오랜만에 만났다.


나: K자동차는 어떠냐?


영도반: 형, 현타와요.


나: K자동차 다닌 지 얼마나 되었지?


영도반: 6개월이요.


나: 이제 이직할 때 되었구먼...


영도반: ㅋㅋㅋ.


나: 그래도 너 회계법인 다닐 때 보다 얼굴은 훨씬 좋다?


영도반: 그렇죠. 워라밸이 훨씬 나으니깐. 형도 알잖아요. 회계법인 다닐 때는 일주일에 기본 60시간 일한 거.


나: 그렇지. 근데 너 커리어중에 회계법인을 제일 오래 다녔잖아. 2년 가까이 다닌 거 맞지?


영도반: 네. 정확히는 2년 2개월.


그렇다. 영도반 커리어 5년 중에 총 5개 회사를 경험했는데 직전 회사인 회계법인에서 가장 오래 일했다. 회계법인에서 맡은 일은 M&A 컨설팅에서 기업실사를 담당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회계법인에 다닐 때 영도반은 워라밸이 무너진 상태였다. 꽤 자주 새벽까지 야근했고, 주말에도 출근이 잦았다. 그래서 얼굴 보기가 더 힘들었다. 급기야 누적된 피로로 간수치가 급격히 올라가서 3주 정도 병원 신세를 졌다.


결국, 영도반은 워라밸을 찾아 5번째 직장인 K자동차로 이직했고, 6개월이 흐른 것이다. 물론, K자동차도 객관적으로 일은 빡세겠지만 회계법인에서 지옥을 경험한 영도반에게는 문제 될 게 없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영도반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의 K자동차는 워라밸이나 안정성 면에서 회계법인보다 나은데, 영도반은 다시 회계법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든다고 했다.


의외였다. 내가 왜냐고 물으니, K자동차는 이미 구축된 시스템으로 일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일을 통한 성장은 한계가 있음이 뻔히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회계법인에 있을 때, 기업실사만 2년 넘게 했는데,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평가)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해 반쪽만 배운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내 표정이 딱 이랬다.


뭐지? 기업실사와 밸류에이션이 머가 다르지? K자동차면 정말 꿀이지 않나… 전 직장 회계법인에서 간수치 때문에 눈이 노랗게 되었던 걸 벌써 잊었나…


혹시 총명했던 도반이 과거 미화 오류에 빠진 건 아닌가 의심이 되었다. 이 오류는 사람들이 현재의 어려움이나 불만족을 경험할 때, 과거의 상황을 실제보다 긍정적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심리적 현상이다. 이를 통해 전 직장이 마치 더 나았던 것처럼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된 게 아닐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부정적 경험보다는 긍정적 경험에 더 집중하게 되고, 현재의 불만족이 클수록 과거의 좋았던 부분이 과장되어 기억한다고 한다.


하지만 영도반과 얘기를 더 할수록 나의 괜한 걱정임을 깨달았다. 영도반은 충분히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회계법인에서도 힘들었던 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현재 회사의 장점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단지 영도반은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리는 미래와 현재 K자동차에서의 성장 가능성을 매칭시켰고, 여기서 이격이 났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그리는 미래를 위해서는 전 직장에서 경험을 더 하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여기서 잠깐.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존 크럼볼츠(John Krumboltz) "계획된 우연이론" (Planned Happenstance Theory)을 살펴보자.


이 이론은 개인의 커리어 경로가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우연한 사건들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직장인 수백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는데 커리어 형성의 계기 가운데 약 80퍼센트가 ‘우연’이라는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크럼볼츠는 이 설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커리어에서 보다 유연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하며, 우연한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우연한 기회를 잡을 준비는, 결국 자신을 아는 데서부터 출발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준비하는 것을 뜻한다.


내가 본 영도반은 이미 이를 실천하고 있었다. 본인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을 위한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다.


영도반의 잦은 이직을 본 주위 사람들은 영도반을 많이 걱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영도반이 걱정되지 않는다. 영도반은 지금 우연이라는 기회를 잡기 위해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장점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 우연도 찾아오리라 믿는다.


p.s. 우리는 이직 브라더스다. 앞으로 이직일지가 어떻게 펼쳐질지 나도 궁금하다. 영도반 화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배터리 대기업 구조조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