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셀)를 주로 생산하는 스웨덴과 한국의 대기업인 노스볼트(Northvolt)와 SK온이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대대적인 인원 감축을 발표했다. 노스볼트는 전체 직원 중 20%에 해당하는 1,600명 감축을 목표로 한다고 했고, SK온은 정확한 수치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창사이래 첫 희망퇴직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전기차 수요 둔화에 따른, 실적 부진이다. 업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캐즘(Chasm)인데, 캐즘의 사전적인 뜻은 '깊은 틈'이며, 경영학적 관점으로 차용하면 첨단 기술 제품이 소수의 혁신적 성향의 소비자들이 지배하는 초기 시장에서 일반인들이 널리 사용하는 단계에 이르기 전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하거나 후퇴하는 현상을 말한다.
캐즘을 그림으로 설명
즉, 얼리어답터(Early Adopters)가 전기차를 살만큼 샀으니 지금 전기차가 팔리지 않는게 당연하고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의견도 결과를 가지고 현상의 일부만을 해석한 것일 뿐, 전기차 판매 부진을 전부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2년 전만 하더라도 전기차는 미래이기 때문에 다른 첨단 기술 제품이 겪었던 캐즘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전기차의 수요가 감소되었다고 생각한다. 전기차 충전소 부족 문제, 화재 문제, 정부 보조금, 하이브리드 차량의 성능 개선 등이 복합적으로 나라마다 달리 나타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충전소 부족 문제와 화재 문제 때문에 전기차 수요가 둔화되었고, 미국의 경우 보조금 및 정치적인 이슈 때문에 수요에 영향을 미쳤다. 반대로 중국은 최근에 자국 내에서 전기차의 판매량이 내연기관차 판매량을 앞질렀다. 중국의 공산당이 1순위로 밀고 있는 산업이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기차 판매 부진을 단순히 캐즘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으로 '단순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이 오류는 문제가 지닌 복잡성, 다양한 요소 또는 상호작용을 무시하거나 축소하여 해결하려 할 때 발생한다. 이런 식의 단순화는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부정확한 결론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다시 노스볼트와 SK온의 구조조정 이슈로 돌아가서, 이 이슈를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배터리 소재업체에 다니기 때문에 관심이 큰 게 첫 번째고, 두 번째 이유는 공교롭게도 이 두 회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거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연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밝히기 어렵지만, 두 회사의 구조조정에 대해 아마추어 관점에서 의견을 제시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글을 쓰기에 앞서 '단순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체 검열을 엄청나게 진행했다.
두 회사가 구조조정(경영의 어려움)을 할 수밖에 없는 공통적인 이유.
1. 짧은 업력
- 노스볼트는 2015년에 설립되어 배터리 사업을 시작하였고, SK온은 의견차이는 있지만 SK이노베이션 시절로 거슬로 올라가 2010년 중반에 본격적으로 배터리 사업에 진출했다. 하지만 (중국업체를 제외하고) 경쟁사인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일본의 파나소닉은 최소 20년 전부터 배터리 사업에 투자했다.
2. 인력 구조
- 업력이 짧다 보니 자체적으로 인력을 양성하지 않고, 외부에서 사람을 끌어다 왔다. 그나마 SK온은 같은 한국의 인력들을 끌어올 기회가 많았는데(LG와 삼성으로부터), 노스볼트는 전 세계에서 사람을 끌어오다시피 했다. 한국(실제로 한국 출신의 엔지니어가 가장 많다), 미국, 중국, 브라질, 인도, 프랑스 등등 인력의 출신 국가가 매우 다양하다.
- 이러한 인력 구조는 장점으로 발휘되면 다양성을 부르고, 회사 내의 유연한 분위기와 창의성을 함양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하지만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답이 정해 있기 때문에 엄청난 창의성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어려운 시기에 이러한 다양성은 오히려 문제가 될 여지가 있는데, 사람이다 보니 출신별 파벌로 나뉠 수 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단합이 필요함에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단합에 어려움을 겪는다.
3. 무리한 투자
- 코로나가 한창일 때, 테슬라를 필두로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이 지속해서 성장할 것이라고 너도나도 예측했다. 바로 그때, 노스볼트와 SK온은 무리한 투자를 단행했다.
- 지금 보니 '무리한' 투자라는 결론이 났지만, 투자를 결정할 당시에는 긍정적인 의견이 다수였다. 노스볼트는 외부 투자를 통해 EU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고, SK온은 모기업인 SK이노베이션을 통해 자금을 주로 조달했다. 그리고 유럽과 미국에 대규모로 공장을 짓고 투자를 단행했다.
- 하지만 작년 중순부터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전기차 수요가 줄었고, 앞서 언급한 짧은 업력과 인력 구조 문제를 필두로 다른 복합적인 문제들이 얽혀 결국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한 것이다.
그렇다면 두 회사의 사례를 통해 우리 직장인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내맘대로 교훈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1. 대마불사 믿지 말자. 대기업도 가차 없다.
- 바둑 용어 중에 대마불사大馬不死가 있다. 대마는 쉽게 죽지 않는다는 뜻인데, 경영학 용어로는 규모가 거대한 대기업이 도산할 경우, 그와 이해관계가 얽힌 수많은 경제 주체들이 피해를 봐서 경제 전체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구제한다는 논리이다.
- 노스볼트의 경우, 이케아와 더불어 스웨덴의 대표 기업이다. 하지만 최근에 스웨덴 총리가 더 이상의 노스볼트에 대한 재정적 지원은 불가능함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국경을 넘어 우리나라에서도 더 이상 대마불사가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2. 직장도 유행이 있나요? 네. 제가 그랬어요.
- 이건 오롯이 나의 이야기이고 나의 반성이다. 하지만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고백해 본다.
- 코로나 시국에 직장생활 10년 정도를 넘겼다. 그때 나만의 업業을 찾자고 배터리 기업으로 이직을 결심했다. 그때가 벌써 3년 전이다.
- 지금 생각해 보니, 업業에 대한 고민보다도 특수 시국(코로나)과 10년 정도 다닌 전전직장에 대한 매너리즘 때문에 업 핑계를 되지 않았나 싶다. 업業에서 업UP을 하고 싶었던 나는, 결과적으로 좋지 못한 선택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첫 번째 이유는, 국경을 초월한 두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보며 많은 상념이 들어서이다.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었고, 관련이 있는 기업이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회사는 회사고, 결국 내가 중요하다. 내가 어떤 반성을 하고 앞으로 나의 커리어에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한 교훈을 생각하기 위함이다.나의 반성과 교훈이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 되길 바라며...
p.s. 시대예보를 쓴 대작가이자 마인드 마이너인 송길영 선생님(일명 송쌤)은 현대를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속성은 '적응적 기제'라고 했다. 어떤 것도 반드시 지킬 것은 없다는 사실을, 모든 것은 우리가 지금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명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것을 통해 현재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탐색하자고 했다.탐색의 차원에서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