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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Oct 06. 2024

오키나와에서 오타니 응원하기

오타니에게 배운다. 담주부터 출근!

오키나와의 여행 마지막 날. 4일을 묵은 리조트에서 나와 공항에서 가까운 도시로 이동했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34개월 된 아드님의 기운을 빼기 위해 숙소 근처 공원으로 나왔다. 이 친구의 (내 아들이지만) 체력은 정말 부럽다. 잠깐 낮잠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노라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아내님과 나는 필사적으로 기운을 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밤잠을 설칠 수 있으니... (아빠 엄마 잠이 안와... 놀아줘... 놀아줘... 잠이 안와... 놀아줘)


해가 저물도록 저렇게 2시간을 뛰어다녔다.

그렇게 강가에 풀어놓은 강아지 마냥 2시간을 뛰어다닌 끝에 아드님은 배가 고프다고 했다. 아내님은 도저히 34개월 된 아드님을 데리고 저녁 먹으러 나갈 기운이 없으니 나보고 나가서 혼자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만세를 환호성을 질렀으나, 티는 내지 않고) 아내를 걱정하는 척 물었다.


"당신, 저녁은?"


"대충 먹을게. 빵 남은 것도 있고, 내가 Hoya(아드님) 햇반에 김 싸서 먹일 테니깐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와."


나는 침울한 표정을 지은채(이런 상황에서는 표정이 아주 중요하다) 혼자 터널터널 방을 나왔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기운이 살아난 나는, 구글지도를 풀 검색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두뇌도 풀가동하기 시작했다. 오키나와에서 혼자서 저녁이라니!!! 완전 개이득.

두뇌 풀가동 중

원래는 Marubushi라는 초밥집(구글 평점 4.7점*)을 가려고 했으나... 일요일에는 영업을 안 하는 관계로 구글 평점 4.3점의 하마톤이라는 초밥집을 선택했다.


*나는 네이버 평점은 잘 안 믿는데, 구글 평점은 신뢰하는 편이다.

초밥집 '하마톤'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노부부로 보이는 어르신 두 분이 운영하는 듯 보였는데, 10석 정도의 다찌와 3개 테이블로 구성된, 오래되었으나 가지런한 일본의 여느 초밥집이었다. 음식도 훌륭했다. 나는 고등어구이와 모둠 초밥 그리고 아사히 생맥 2잔 + 오리온 병맥주를 혼자서 진짜 혼자서 시켜서 먹고 마셨다. 사실 맥주가 너무 맛있어서... 안주를 더 시켰다. 아니, 안주가 더 맛있어서 맥주를 더 시킨 것일지도...

고등어를 직접 불로 쏴주시는 주인장. 맥주들. 모듬 초밥. (주인장께서 광고 많이 해달라고 귀뜸하심. 그래서 노모자이크 처리)

그렇게 고독한 미식가 흉내를 내며, 안주 먹고 맥주 마시고, 맥주 마시고 안주를 먹고 있는데... 바로 그때!

 

티비에서 갓타니 오타니가 나왔다. 지금 메이저리그는 포스트시즌이 한창인데 일본 뉴스 1면으로 포스트시즌의 오타니가 나온 것이다. 샌디에이고와 1차전에서 3점 홈런을 때리며 또 경기를 씹어 먹어 버리셨다.

옆 테이블 일본인 손님의 자랑스러움이 느껴졌다.

갓타니가 뉴스에 나오자, 작은 초밥집의 공기가 달라졌다. 다들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른 표정이었다. (물론, 이미 초밥과 술을 낭낭하게 드셨지만...)


나도 평소에 오타니를 응원하기 때문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맥주를 더 마셨다. 같은 동양인으로서 느끼는 아시아인 국한뽕이 아니라 같은 지구인으로서 같은 사람으로서 느끼는 어떤 경외심 같은 것이다.


사실 오늘 좀 막막했드랬다. 꿈만 같던 가족 여행(아이와 함께하는 첫 해외) 후 다시 출근하면 어떤 험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고난과 역경이 던져질까, 아니, 이미 예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막막했다. 알고 있기에 더 막막한 기분.


하지만 혼밥의 나라, 혼밥의 원조, 혼밥의 본토, 일본에서 혼밥을 하며 태평양 건너 일본인 오타니를 뉴스로 보게 되었다. 그러자 거짓말 같이 갑자기 힘이 났다. 오타니의 기운이 전해진 것일까! 아니면, 뇌가 생존 본능을 발휘하기 위해 무조건적인 명분을 부여한 것일까??? 이유야 어떻게 됐든, 나는 혼밥의 나라에서 혼밥 중에 오타니를 보며 다시 출근할 기운을 얻는다.


p.s. 고등학생 시절 오타니가 만든 목표달성표가 있는데, 지금 봐도 놀랍다. (쓰레기 줍기... 무엇... 그리고 책읽기도 있다...ㅠ 당신같은 분이 책도 많이 읽으면 나는 어떻하라고요요요오오오.)

고등학생 오타니 목표달성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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