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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Jul 05. 2024

지방에서 서울로 이직한 후배를  보며(下)

힘냅시다! K-직장인!

나는 조심스레 N후배의 정확한 상황부터 파악했다. 조언이 그저그런 g소리가 되지 않으려면 상대방의 정확한 상황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N후배의 상황


1. N후배의 아내는 경상도에 직장이 있었기 때문에 남편을 따라 서울로 바로 이주는 불가능한 상태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말부부를 해야 함.


2. 자금이 모자라 바로 집을 구하기 불가능해서, N후배의 친동생이 사는 강서구(염창쯤?)의 1.5룸에서 함께 지내며 출퇴근.


N후배가 이직을 바라는 이유(그것도 서울로)


1. 답답함. 머가 답답하냐? 그냥 답답함. 30년 넘게 반경 15킬로미터에서만 살아온 것에 대한 답답함.


2. 큰 회사에서 더 나은 시스템을 경험하고 싶어함. 그러다보면 본인도 더 성장하지 않겠냐는 논리.


나는 N후배의 상황을 파악한 뒤, 첫 번째로 출퇴근의 힘든 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악명높은 9호선의 출퇴근의 G랄맞음을 정말 절절하게 설명했다. 내 신혼집이 가양이었는데, 9호선 타고 여의도로 출근 하는 것도 힘들었다며 아주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자차로 20분 안에 출근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또 설명했다. (원래 후배는 경상도 본사에서 자차로 20분 정도 출퇴근 걸렸다고 한다)


두 번째로, 큰 회사의 큰 시스템에 대해 나는 '회사 별 거 없다'라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물론, 나의 보잘 것 없고 한정된 이직과 한정된 경험에서 나온 얘기였지만, N후배가 이직하려는 강남의 그 회사의 시스템을 조금 알고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조언이었다.


하지만 내가 19살 때 무모하게 서울로 상경한 것처럼, N후배는 이직을 최종 결정했고, 3개월째 새로운 강남에 위치한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몇 일 전, 간단히 N후배의 안부를 물음겸 전화를 걸었는데... 무려 1시간 가까이 N후배의 하소연을 들을 수 있었다.


이직 3개월 차에 접어든 N후배의 목소리를 핸드폰으로 들어보니 왠지모를 회한이 느껴졌다. 아니다 다를까... N후배는 이직을 후회한다도 했다. 그리고 많이 힘들다고 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드냐고 내가 물었다.


N후배는 차장님 말이 다 맞았다고 했다.


어떤 부분이 다 맞았느냐고 내가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N후배는 크게 두 가지인데, 서울 생활 적응과 회사 생활 적응이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정도면 두 가지만이 아니고 아예 이직 후에 다 힘든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N후배는 길게 한숨을 뽑았다. 내 조언이 맞았음에도, 나는 기쁘지 않았다. N후배를 아끼는 만큼 나도 함께 긴 한숨을 뽑아냈다. 다음은 N후배가 서울로 상경 후 왜 힘들어 하는지에 대한 하소연을 요약한 내용이다.


먼저, 생활적인 측면: 출퇴근 길의 9호선 지옥철은 말해 무엇하랴. 그리고 금요일 회사를 바로 마치고 ktx를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에 가면 거의 토요일에 집에 도착함. 그렇다고 아내가 서울로 올라와서 자리잡기에는 집값도 너무 비싸고 직장도 여의치 않음.


두 번째, 이직한 회사: 큰 회사라고 해서 대단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줄 알았는데 별 거 없음. 오히려 N후배의 전직장(내가 다니고 있는 현직장)에서 배울게 더 많음. 전직장에 비해 보고가 너무 많아 일이 진척이 안됨. 등등


이직을 본인이 결정하고 실행했던 터라, 힘든 점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있다고 했다. 차장님께는 말을 해도 이해줄 것 같아서 이렇게 하소연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N후배가 처음의 곤란한을 딛고 일어서 적응도 잘하고 더 잘 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서울살이의 녹록치 않음과 중간에 이직한 이들이 얼마나 적응에 애를 먹는지를.


N후배를 아꼈던 만큼이나 안타까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없기 때문에. 그저 조만간 만나서 소주 한 잔 기울이자는 말만 할 수 밖에 없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무리 간접 경험과 조언을 많이 듣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일을 저지르고 또 거듭 후회를 하는 인류종이지 않을까싶다. 보다 전문적인 용어로 얘기하면, '찍먹똥된(꼭 찍어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는가?)'


판단이 쉽지 않다. 나만 하더라도 그간 얼마나 많은 후회할 짓을 했던가. 나를 키운 건 1할이 분유였고, 9할이 후회였다. 어제도 오늘도 조금 전에도 후회할 짓을 했다. (아내와 Hoya가 지금 자고 있는데, 이 글을 써서 당이 딸린다는 이유로 아이스크림을 세 개나 먹은 나... 그러고는 살 쪘다고 걱정하는 나... 나자신)


그렇다면 후회없이 혹은 퇴보없이 발전만 할 수 있는가? 어려운 문제다. 이래서 조언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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