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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Jul 06. 2024

묻고 더블로 가! 직장 상사 때문에 괴로워하는 동기

정신과와 마약 그리고 박미옥 형사님의 위로

공감능력 0 직장 상사(‘T’) 때문에 괴로워하는 전전직장 동기(‘K’) 이야기이자, 박미옥 형사님 이야기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회사에는 그런 상사 없음 ^^;;)


K는 직장 상사 T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했다.

K 설명에 따르면, T는 100이라는 일이 있으면 무조건 150 아니, 200을 주문한단다.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일까지 전부를 그렇게 주문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 주문을 처리하는 것도 힘겨운데, 주문하는 방식도 일방적이고 강압적이라고 한다. (무조건 해. 그래서 어쩌라고, 해결책이 머야. 가져와 답을.) 겨우겨우 100을 하면, 애초에 200을 주문한 T상사의 눈에 차지 않는다. 결국 K는 욕을 먹고, 힘들어하고 좌절한다. 무한 반복이다.


하지만, K는 분명 애초 목표인 100을 달성했다. 200을 시킨 T의 잘못이다. 그리고 T는 더 큰 잘 못을 저지르고 있다(네 죄를 네가 알렸다!!). 매번 그렇게 더블더블을 외쳐대니, 주위 사람들이 갈려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T는 직원들을 잘 쪼는 능력있는 상사(새도 아니고... 잘 쪼면...머)로 인정 받았고, 과분한 자리까지 올라갔드랬다.


<K의 슬픈 고백 중에서도, 왜 영화 타짜의 이 장면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주책이다 참... 그래도 외쳐본다. 묻고 따블로 가!>

결국 K는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물론, 다른 부정적인 문제도 동시다발적으로 터져서 였지만, 가장 큰 이유는  명백히 T 상사 때문이다) K 얘기를 쭉 들어보신 선생님은, 푹 한숨을 쉬시더니 정작 상담을 받아야 할 사람은 T 상사라고 했단다.


그렇다. 진짜 문제가 있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줄 모른다. 선생님은 T 상사의 가장 큰 문제점을 공감 능력 결여라고 진단하셨다. (심지어 T 상사는 정신과에 가지도 않았는데, 진단명이 떨어졌다. 공짜로 아픈 곳을 알아버린 것이다. 완전 개이득) 이 부분에 대해서는 K도 크게 공감했다.


K는 쓰게 웃으며, 어쩌면 마이너스 공감이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T 상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편견에 사로잡힌 채로 판단을 쭈욱 한다면 공감 능력이 없는 상태를 넘어 마이너스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K에게 말해줬더니, K는 또 쓴 웃음을 지었다.


K가 해준 얘기 중에, 또 다른 T의 얘기도 있다. (머야? 파도파도 괴담인 것을…)


몇 명이 밥을 먹으러 가던 중, K가 물었다. (내가 왜 먼저 말을 꺼냈드냐, K에게 책망을 하니, K는 다른 사람들이 말도 없이 뻘쭘해 하길래, 어쩔 수 없이 질문을 했다고 한다. 또, T상사는 침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참… 가지가지한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마약을 많이 한다고 하던데, 참 젊은이들이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T 상사가 호쾌하게 답했다.


 "정신력이 썩어빠진거지. 약해빠져가지고. 얼마나 살기 좋아졌어? 나 때는..."


K 더 이상 대꾸를 안했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려고 한 K 자신의 경거망동을 자책했다. 나도 물론, 마약에 대해서는 당연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하지만... 정말 힘들어서, 혹은 범죄에 휘말려서 마약에 중독되었다면?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더라도 가슴으로 그 아픔을 헤아려볼 수는 있지 않을까?


얘기를 다 듣고는, 나는 K에게 책 선물을 했다. (나는 지인들께 책 선물을 잘한다. 특히, 내가 직접 읽은 책만 선별해서 선물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이다)


바로 전 강력반장 출신의 박미옥 작가님의 책 <형사 박미옥>. 갑자기 왠 형사?? 나도 K에게 책을 선물하며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감 능력이 풍부한 K에게 그 책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나도 그 책을 통해 위로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책 <형사 박미옥>의 일부분이다.



어느 날 마약사범을 검거했다. 체포 통지를 누구에게 하겠는지 물었더니, 부모님 말고 형에게만 연락해달라고 한다. 형은 이내 도착했다.


제법 고위직 명함을 내밀면서 형사들에게 정중하게 인사까지 한다. 마약에 찌든 동생과는 사뭇 다른 결의 사람 같다. 보통 이렇게 멀쩡하다못해 고상해 보이는 사람이 구속된 가족을 찾아오면, 서로 눈이 마주치자마자 잡아죽일 듯이 쏟아내는 말은 이런 식이다.


“네가 집안 망신 다 시킨다. 너 죽고 나 죽자. 언제까지 이럴래?”


  처음 보는 형사에겐 깍듯하면서 제 가족에겐 모진 말 날리는 사람들, 참 많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달랐다. 동생이 갇힌 곳으로 얼른 들어가서는 의자에 앉기도 전에 건넨 그 한마디에 나는 놀랐다.


“아직도 그렇게 힘드니?”


거창한 사회적 지위 때문에 제 체면을 더 챙길 법한 큰형이 막냇동생을 면회 와서 건넨 첫 말, “아직도 그렇게 힘드니”.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가족에게서 이런 위로를 받는 동생을, 한 사람을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한 남자를 ‘한낱 범죄자’가 아니라 ‘아직 힘들어하는 사람’으로 진지하게 바라보고 대화하는 동안, 나는 남자가 지나야 했던 인생의 폭풍우를 알게 되었다.


남자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런데 고상한 집안에선 결사반대했다. 남자는 여자를 포기할 수가 없어서 동거부터 하기 시작했고, 부모님을 부지런히 찾아가 시시때때로 허락해주시길 간청했다. 그리도 노력한 덕분에 드디어 결혼을 승낙받은 날, 한없이 기쁜 마음으로 귀가했는데 여자는 죽어 있었다. 여자를 사랑했던 옛 애인이 찾아와 이미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그녀를 죽여버린 것이다. 여인이 죽었다는 것도, 끔찍한 살인사건의 피해자라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그 사실을 애도하고 슬픔을 견딜 시간도 없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당했다. 48시간 동안 이어진 조사는 죄를 짓지 않았어도 숨이 막혔다.


슬퍼할 시간조차 없었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꽂혔다.


슬픔을 호소하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이 그 여자를

죽이지 않았고 죽일 이유도 없었음을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도 싫었다고 했다.
남자를 검찰청으로 보내던 날, 담배 한 갑을 샀다. 이전에 살인용의자로 몰렸던 남자에게 경찰이 단 1초의 슬퍼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면, 이번엔 담배 한 대 피울 시간쯤은 주고 싶었다. 그 당시는 서울지방경찰청 담당형사가 범인을 직접 검찰청까지 데려다주던 시절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늘 투덜거렸던 부수적인 업무가 그날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씨, 내가 지금 줄 수 있는 것은 담배 한 대밖에 없네요. 한동안 담배 한 대 피우기도 어려우실 텐데, 부담스러워 말고 한 대 피우시죠. 그런데 말입니다. 한 사람이 죽어 모든 상황이 허무해진 것처럼, 의미라는 것이 부여하면 있고 부여하지 않으면 다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든 살기를 바랍니다. 어떻게든 또다른 의미 있는 것을 찾아서 나오면 좋겠습니다.”



K는 '아직도 그렇게 힘드니?'라는 문장 때문에, 마음이 속절없이 무너졌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살기를 바랍니다. 어떻게든 또다른 의미 있는 것을 찾아서 나오면 좋겠습니다.'라는 문장을 읽고도 또 한 번 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눈물이 나는 순간, 치유의 눈물임을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눈물이 반가웠다고 했다.


내가 아는 K는 공감능력이 너무나 뛰어난 사람이다. 눈물을 반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상처도 잘 받고 더더더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공감능력이 뛰어난 덕분에,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형사 박미옥>의 마약 수사 부분을 읽으며 다시 힘을 얻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K야 힘내렴. 힘들면 언제든지 나한테 찾아와. 내가 맞춤으로다가 책 선물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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