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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Jun 26. 2024

타인의 시간을 생각하며

자기반성의 시대

장강명 작가님은 <미세 좌절의 시대>에서 글쓰기와 독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인쇄술이 나오기 전에도 글쓰기는 자기 앞에 있지 않은 독자를 염두에 두고 하는 행위였다. 읽는 이는 한 명일 수도 있지만 수만 명일 수도 있었다. 내가 만날 일이 없는 먼 나라 사람, 동시대인이 아닌 후세인들도 내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글쓰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공인이 된다. ‘보편 독자’를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나도 에세이 <낀대의 낀소리>와 웹소설 2편(단편, 중편 각각 1편)을 연재하며 보이지는 않지만 나의 글을 읽어주시는 소수의 독자님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내 글을 읽어주시는 타인을 생각하다보면 글쓰기에 대한 나만의 정성이 더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문장을 더 다듬고 싶고, 내가 겪고 느낀점이 나의 글 너머의 어떤 분에 간절히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독자님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 버릇을 들이다보니, 분명 예전의 글쓰기와는 다른 점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 타인을 고려하지 않은 글들은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나만을 위한 외침이었다. 타인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마치 아이패드에 쓰는 필기처럼. 나의 팀원들은 내가 쓴 아이패드 글씨를 거의 알아보지 못한다)


최근 본격적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타인에게 읽히는 글과 나혼자만을 위한 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깊이 고민한 끝에 아주 명쾌하고 간단한 나만의 답을 갖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일기와 책(혹은 독자에게 읽히는 목적으로 작성된 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타인이 내 글을 읽었을 때 어느 한 가지라도 득이되냐 여부인 것 같다. 나는 일기를 썼다고 생각했지만 '보편 독자'에게 득이되는 그 무엇(재미, 교훈, 감동, 자극, 유용한 정보 등)이 한가지라도 있으면 이는 단순 일기를 넘어 타인에게 읽힐 수 있는 에세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편의 글에 복수의 요소(재미도 있으면서 교훈적인, 혹은 재미/교훈/감동/자극/유용한 정보가 모두 담긴)가 담긴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타인에게 득이되는 그 무엇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유는, 타인의 시간에 대한 진정한 감사 때문이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양질의 컨텐츠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컨텐츠 범람 사회에, 타인의 소중한 시간을 나의 보잘 것 없는 글에 할애함이란 부담스럽지만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래서 나는 출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육아 후에 짬을 내어 나에게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는 타인을 생각하며, 내 안에 잠재된 어떤 것을 끄집어 내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이렇게 타인의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깊이 깨달을수록, 나의 시간을 침범하는 무례에 대해서는 반감이 깊어진다.


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회사에 생존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생계형 노동자이다. 그 친구의 회사는 친구의 시간을 당연하다는 듯 침범한다.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는 일을 하더라도 그나마 계약된 업무 시간이라면 참을 수 있다고 내 친구는 말한다. 하지만 의미없이 거듭되는 술자리는 힘들다고 내 친구는 힘을 주며 말한다.


내 친구는 하소연한다. 업무 시간 후 이어지는 술자리는 힘겹다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그저 무의미한 얘기들과 연거푸 들이키는 회식을 위한 술을 이제는 사양하고 싶다고. 옛날의 영광만을 거듭 되뇌이는 시간 또한 곤혹스럽다고 한다. 회사얘기, 골프얘기, 회사에서 골프친 얘기를 따라 무한정 흐르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대화는 어제와 오늘이 같고, 오늘이 내일과 같다고 한다.


내 친구는 성토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알코올을 1군 발암물질로 지정했다고. 퇴근 후 분리수거를 해야 할 시간에, 청소와 설겆이를 해야 할 시간에, 아이를 돌봐야 할 시간에, 아내와 두런두런 앉아서 그날 있었던 얘기를 해야할시간을 박탈당하며 왜 1군 발암물질을 마셔야만 하는가라고. 교훈도 없고, 발전을 위한 자극도 없는 그런 무의미한 시간을 왜 보내야만 하는가라고.


내 친구는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너는 어떤 선배이고, 동료인가. 어떤 선배가 되고 싶은가. 어떤 동료로 기억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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