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40대에 진입했습니다. 불혹이지요. 불혹인데 매일매일 기찻길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인생 36개월 차 아들을 위해 만드는 기찻길입니다.
잦은 야근과 원치않는(??) 술자리로 평소에 애비 노릇을 잘 못하기 때문에 '아들36'은 좋지도 않은 발음으로 '아빠 시쪄 아빠 시쪄'를 연발합니다.
'아들36'의 마음은 이해가 가나 서운한 마음도 조금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아들36'을 만나면 잘 놀아주고 싶은데 또 그게 잘 안됩니다. 그래서 최대한 도구를 이용해서 '아들36'과 친해지려고 노력합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아들이 좋아하는 기찻길을 집에 놓습니다.
불혹의 기찻길 놀이
며칠 전에는 열심히 기찻길을 놓는 중에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브리오* 기찻길의 생명은 커브 기찻길입니다. S자를 가로로 쭈욱 늘린 모양입니다. 이 커브 기찻길이 있어, 다소 밋밋한 기찻길에 그나마 스펙터클 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커브 기찻길은 4개가 있습니다.
*‘아들36’이 소유한 기찻길 브랜드입니다. 가격이 다소 비싸서 시리즈 중 1개만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케아에서 저렴한 기찻길도 사서 기존 브리오 기찻길과 섞어놨는데, 브리오와 아구가 잘 맞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억지로 브리오-이케아 조합으로 기찻길을 만들어 다양한 '길'을 표현합니다.
커브길 하나…
커브길 둘…
커브길 셋…
3개 뿐인 커브 기찻길...
그런데 말입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4번째 커브 기찻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참을성이란 단어를 전혀 모르는 '아들36'은 슬슬 짜증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4번째 커브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블록을 밑에 깔아 인위적인 커브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나름 저의 임기응변과 건설 실력에 스스로 놀랐습니다.
하지만 '아들36'은 무언가 이상함을 금세 알아채더군요… 그래도 아기는 아기인지라 꾸역꾸역 기찻길 놀이를 합니다. 저는 연신 '뿌뿌'를 외치며 실감 나는 놀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기찻길 놀이가 끝이 나고 '아들36'은 지쳤는지 낮잠을 영접하러 방에 들어갔습니다. 한숨 돌린 저는, 기찻길에서 2미터 떨어진 곳에 앉아 잠깐 멍을 때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렇게 찾았던 4번째 커브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4번째 커브 기찻길
아… 이 무슨 운명의 장난입니까? 4번째 커브길은 정말 가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찾을 때는 시야의 한계로 찾을 수 없었습니다. 시야의 한계는 기찻길에서 잠깐 벗어난 그 순간에 해결되었습니다.
엄청난 깨달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또 작기만 한 깨달음도 아닙니다. 아주 적당한 크기의 깨달음이라고나 할까요?
어려운 상황도 막막한 상황도 길을 잃을 것만 같은 상황도, 상황에서 살짝만 떨어져그 상황을 본다면 어쩌면 해결책이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 수 있다.
오늘의 기찻길
오늘은 야근도… 술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어제 늦게까지 마셨거든요. 오늘도 또 마시면 저는… 아마도 기찻길 옆 오두막으로 쫓겨났을 겁니다.
오랜만에 집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또 기찻길을 놓았습니다. 내일도'아들36'을 보러 일찍 오겠다고 기찻길 옆에서 조용히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