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까지는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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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폭'우'의 지랄맞음을 지난 7월에 썼습니다. 4개월 만에 출근길 폭'설'의 지랄맞음에 대해서 쓰니 마음이 새롭습니다. 새삼 우리나라의 변화무쌍한 날씨 변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기후변화도 걱정됩니다. 저는 걱정이 많은 중년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대한민국에는 첫눈이 내렸습니다. 첫눈인데 너무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11월에 내린 눈 중에 양적으로 어마어마해 기록적인 폭설이라고 합니다.
직장인인 저에게도 첫눈은 반갑습니다. 그리고 약간 설레기도 하고요. 하지만 폭설은 반갑지가 않습니다. 출퇴근을 위한 이동이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어제 회사일 때문에 이동할 때 택시를 탔는데, 평소 4만 원 정도 하던 택시비가 7만 5천 원이 나왔습니다. 교통 체증 때문이기도 했고, 사고로 인해 다른 도로로 이동하느라 비용이 더 청구되었습니다. 회사 재경팀장님께 혼날 수도 있겠네요.
저는 일을 잘하지 못하는 직장인입니다. 하지만 지난 직장생활 14년간 지각한 적은 없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근 시간은 꼭 지킵니다. 능력 없는 제가 그나마 회사에서 버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폭설 때문에 출근을 더 서둘렀습니다. 일 못하는 직장인이 지각까지 한다면 완전 밉상이니깐요.
폭설 맞은 출근길은 쉽지 않더군요. 시작부터 그랬습니다. 산아래 아파트 단지에서 집을 나오니 꽤 많은 나무들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나 봅니다.
그리고 미끄럽고 질퍽질퍽한 도로가 저의 신발을 촉촉하게 적시더군요.
많은 직장인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출근길에 젖은 신발의 그 찝찝함을요. 정말 하루종일 찝찝합니다. 올여름에는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신발 마를 날이 없었고, 보아하니 올 겨울에도 기록적인 폭설 때문에 신발 마를 날이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사실은 제가 묻고 제가 답합니다)
'폭우가 싫습니까? 폭설이 싫습니까?'
<끝>
이렇게 글을 마치고 싶었습니다. 폭설의 출근은 지랄맞다. 끝.
이 글을 쓰려고 폭설 출퇴근길에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다시 찬찬히 보니 꽤 풍경은 이뻤습니다. 폭우 때는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수조차 없는데 그나마 눈 내리는 날은 사진을 찍을 수 있더군요.
나무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뭇가지마다 올려져 있는 눈이 보이더군요. 물론, 나뭇가지는 저 눈의 무게를 견디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겁니다. 제가 앞서 말한 출근길 아파트 단지에서 쓰러진 나무는 너무 무겁고 힘들어 잠시 쓰러졌고요.
얼마 전에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었습니다. 제목이 특이합니다. 제목도 특이하지만 조승리 작가님의 인생은… 그리고 말발과 글빨은 작가님의 이름인 '승리'에 걸맞습니다.
86년생 조승리 작가님은 15살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하여 몇 년 뒤 완전히 시력을 잃었습니다. 굳이 제가 친분도 없는 조승리 작가님의 출생 연도를 언급한 이유는, 새삼 저와 비슷한 나이의 그녀를 상상해 보기 위함입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승리 작가님과 나의 현재 여건을 비교해 보며 안도감을 느끼거나 단순히 그녀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그런 통속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머라고 단순하게 표현할 수 없는 책이고 그녀의 인생이긴 한데, 그래도 한 마디로 표현해 본다면, '저런 책 제목을 지을 수 있고 제목이 어울리는 이야기'입니다. 저런 제목을 지을 수 있는 결기가 있는 분입니다.
저는 폭우를 만나면 폭설을 만나면, 만날 때마다 투덜거립니다. 조승리 작가님의 책을 읽어도 그때뿐, 다시 출근길에 올라서면 투덜거립니다. 조승리 작가님의 지랄맞음에 비해 저의 지랄맞음은 지랄 맞다고도 할 수 없겠지만, 저는 범인이기에 조승리 작가님의 그릇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저에게 주어진 이 작고 귀여운 지랄맞음을 버티려고 합니다. 버티다보면 축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가 또 기다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p.s. 아파트 단지에서 쓰러진 나무 소식은 어떻게 되었는지 다시 전하겠습니다. 저도 궁금하네요. 다시 일어섰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