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후배와 아침에 카톡을 주고받았습니다. 사무실에는 다른 듣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이런 얘기는 카톡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엄청 비밀스럽거나 남을 험담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회사 내에서 저의 일중, 어떤 일이 메인이고 어떤 일이 사이드잡인지 궁금한 후배의 카톡이었습니다. 저의 대답은 '출근'입니다.물론, 후배가 바라던 답은 아니었겠지요. 후배는 구체적으로 제가 어떤 일을 우선순위에 두는지 궁금했을 겁니다.
회사후배와 카톡 내용
카톡을 답장한 시간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후배의 질문에 저는 바로 '출근'이라고 답했습니다. 후배의 질문에 빛의 속도로 대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평소에도 '출근'을 가장 어려워하고 일단 '출근'만 하면 어떤 일이든지, 그리고 그 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2년 반 전에 지금의 회사로 이직했습니다. 첫 이직은 아니었음에도 2년 반 전의 이직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상황도 힘들었고, 회사생활도 힘들었습니다.
2년 반 전에는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지 불과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내는 저보다 훨씬 힘들었겠지만 아빠가 된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그리고 새로 이직한 회사는 왜 이렇게 힘든지요... 어중간한 나이에 이직한 저를 보며, 주위의 텃세도 심했을뿐더러 일 자체도 어려운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후배들은 농담 삼아 제가 맡고 있는 팀을 일컬어 '전략구매투자해외사업지원인사총무물류대외협력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일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자살예방교육'에서 들었던 얘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군대에서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1가지 이유만으로 그런 마음을 먹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보통 감당할 수 없는 2~3가지의 일이 한꺼번에 겹치면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군생활은 힘든데, 집안에 누군가 소천하거나, 애인과 헤어지는 경우가 함께 겹쳤을 때입니다.
제가 2년 반 전에 이직했을 때 딱 그랬습니다. 저의 그릇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쳤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었습니다. 모두 제가 선택한 일들이었으니깐요. 그리고 아내도 출산과 육아로 심신이 지쳐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는 구식 복도식 아파트의 12층인데 현관문을 열면 바로 바깥이 보입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평소에는 현관문을 열면 바로 바깥과 연결되어 상쾌함을 주는데, 앞이 보이지 않고 막막하기만 할 때 현관문을 열면 종종 극단적인 생각이 떠오릅니다. 한동안 출근길도 그랬고, 집으로 돌아오는 퇴근길도 그랬습니다.
물론, 지금도 저는 쉽지 않은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여전히 '전략구매투자해외사업지원인사총무물류대외협력'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집에서는 서툰 초보 아빠입니다. 회사일도 잘 해내지 못하고 집안일도 잘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습니다. 제가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제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대단한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저를 가장 힘들게 한 단어가 '출근'입니다. 아무리 회사에서 힘들어도, 아내와 싸워서 힘들더라도, '출근'은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출근' 때문에 힘들었던 저는 '일단 출근만 하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일단 출근을 하고 나면, 또 하루가 버텨졌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출근을 하고, 또 한 달을 출근하고, 일 년이 지나고 지금 3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2년 반 전에 저와, 지금의 저는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2년 반 전에 비해 조금은 단단해졌음을 느낍니다. 힘들 때일수록 멀리 보는 것보다 바로 내 앞에 있는 일들에만 집중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전략입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이틀 전, 첫눈 치고는화끈한 폭설이 내렸습니다. 저같이 출근이 전부인 출퇴근 뚜벅이에게는 자연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三폭(폭염, 폭우, 폭설)은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습니다. 지난 이틀 입으로 욕을 달고 또 출근했습니다. 제가 욕을 달고 출근할 때 다른 직장인도 고군분투하며 출근하더군요. 심지어 1시간 넘게 스키를 타며 출근한 직장인도 있었습니다.
스키타고 출근한 직장인(선생님)
저는 요즘 여러 가지 이유로 기사를 잘 보지 않습니다만, 스키 타고 출근한 직장인은 일부러 찾아보았습니다. 한 시간 넘게 스키를 타서 팔이 아프다는 인터뷰도 읽어 보았습니다. 팔이 아파서 퇴근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겠다는 코멘트도 봤습니다. 그리고... 스키 타고 출근했지만 끝내 회사(학교)는 휴교했다는 기사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