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의 재취업

쉽지 않은 이유

요즈음 유난히 대기업 임원을 주제로 한 글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사실 최근에 준비하고 있는 꽤 긴 분량의 연재글이 있는데, 그 주제가 변화하는 시대에 맞서는 직장인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중에 대기업에 대한 분석도 있고, 그리고 그 대기업의 정점에 있는 임원에 대한 얘기도 담으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레 저의 경험에 근거한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긴 호흡의 글은 따로 묶어서 연재할 생각이며, 지금 이 글에는 짧은 생각을 담았습니다.

저는 운이 좋아서 지난 10여 년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대기업 2곳에서 근무했습니다. 한 때는 대기업에서 임원을 소망했던 기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중소기업으로 이직한 지 2년 반이 흘렀습니다. 지금은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뽑아주지도 않겠지만, 저도 대기업으로 다시 돌아갈 마음이 없습니다. 사람이 참 간사하게도 대기업이 주는 안정감과 명성은 그립고, 연봉과 복지는 여전히 부럽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가장 큰 이유가 대기업 임원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제가 대기업 다닐 때 꿈꿨던 그 임원 때문에 오히려 대기업이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능력 있고 멋진 대기업 임원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경험하고, 알고 있는 임원들은 그렇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미생의 마 부장도 임원이 되기 위해 그렇게 부하직원들에게 못살게 굴었나 봅니다.

제가 대기업을 10여 년 다니면서 만났던 임원들 중, 비교적 이른 나이에 짤린 분들은 대부분 재취업을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재취업이 된 분들은 별로 없었으며, 재취업이 되더라도 새로운 곳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는 분들이 드물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늘 궁금했습니다. 아니,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에서 수 억 원의 연봉, 기사님이 배치된 차량, 온갖 복지, 그리고 또 수 억의 인센티브에 일반 직원과 다른 퇴직금 적립의 혜택까지 받는 분들이 왜 밖에서는 경쟁력이 없을까?

제가 대기업에 다닐 때 가끔씩 퇴직한 임원분들을 만나면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작아 보이더군요. 자신감도 없어 보였고요. 대기업 현직 임원으로 있을 때와는 너무나 왜소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그런 분들이 대부분 재취업을 희망하나, 재취업이 잘 안 된 케이스가 많았습니다.

이 의문은 제가 대기업을 나와 중소기업에 근무하면서 비로소 풀렸습니다. 답은 간단했습니다. 대기업 임원은 밖에서는 경쟁력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요. 대기업 밖에서 경쟁력이 없으니 퇴직을 해도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너무 간단한 원리입니다.

물론, 재취업이 되는 대기업 출신 임원들도 꽤 있습니다. 제가 몇몇 사례를 보니, 재취업 유형도 2가지로 나뉘더군요. 1) 퇴직한 임원의 대기업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높이 사서 2) 퇴직한 임원의 실력을 보고.

1번의 경우는, 흔히들 알고 있는 전관예우에 가깝습니다. (부정적인 느낌으로는 '로비' 혹은 '로비스트'라고 우리나라에서는 표현합니다) 그 사람의 능력보다는 대기업에서 쌓은 네트워크를 밖에서 인정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도 인적 능력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제가 추구하는 밖에서 통하는 '찐'실력과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2번의 경우는, 엄청난 실무 능력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경영 능력, 엔지니어링 능력 등등 밖에서 실제로 통하는 능력인 거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2번의 케이스를 잘 보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1번 케이스로 재취업했으나 곧 그 쓰임을 다해 버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기업은 마치 정교한 기계 같습니다. 모든 부서와 팀은 각자의 역할에 따라 돌아가고, 개인은 그중 하나의 톱니바퀴입니다. 나의 업무는 정교하게 정의되어 있고, 시스템은 견고합니다. 견고한 시스템에서 누리는 안정감도 크고요. 그러나 그 견고함이 때로는 본인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지 냉정히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 경쟁력이 톱니바퀴 안에서만 유효한지 아닌지 주기적으로 의심해야 합니다.   

중소기업은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톱니바퀴’는 없고, 제가 곧 기계 전체가 되어야 하더군요. 물론, 절대 쉽지만은 않습니다. 일과 사람에 치여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에서 2년 반을 꾸역꾸역 견디고, 나름 적응도 하고 귀여운(?) 인정을 조금 받다 보니 이제는 재취업에 대한 걱정은 덜한 편입니다. 웬만한 곳에서는 지금의 월급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슬며시 생기더군요. (몰론, 저의 지금 월급이 그리 높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2차전지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비해 2차전지 분야 전체가 어려움을 겪다보니, 최상단의 대기업  2차전지 관련 계열사도 임원은 물론 일반 직원들의 구조조정도 진행한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이제는 대마불사라는 말이, 오래되고 현실에는 맞지 않는 고사성어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고, 곧 다가올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