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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e 프리퀀시

초짜 마케팅 분석? 아니요! 그냥 불편러 입니다.

by 바그다드Cafe

저는 몇몇 브랜드에 충성도가 꽤 높은 편입니다. 예를 들어, 가방은 '프라이탁', 후리스는 '파타고니아', 신발은 '뉴발란스', 출근복은 '안다르'가 대표적입니다.


대한민국 직장인으로서 하루에 가장 많이 찾는 커피는 어떤가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예전에는 분명 스타벅스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스벅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보다는 '매장 수가 많'고 '편해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십니다.


매장 수가 많다 보니 당연히 자주 갑니다. 스벅이 편한 이유는 스벅 어플을 통한 '사이렌 오더' 기능 때문입니다. 투썸의 어플도 써봤는데, 개인적으로 스타벅스 어플의 UX/UI는 어떤 커피 전문점 어플보다도 뛰어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잠깐, 말 나온김에 저의 스벅 아이디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예전에는 스벅 아이디로 바그다드까페를 사용했는데 남의 까페에서 다른 까페(바그다드까페)로 불리니 좀 민망하고 민폐 같기도 해서 지극히 평범한 '말보로 레드'로 바꿨습니다.


가끔 스벅에 같이 간 사람들이 제가 사이렌 오더로 주문을 한 뒤 저의 닉네임이 불릴 때면 담배도 안 피우면서 왜 담배 이름을 닉네임으로 사용하는지 묻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 이유는 박상영 작가님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의 여주로 나오는 '재희'가 바로 '말보로 레드'를 피우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재희는 말보로 레드를 냉동실에 보관합니다. 냉동실에 말보로 레드를 보관하는 이유는 '새 담배를 피울 때마다 시원해서 좋아서' 입니다.


그래서 저는, 담배를 좋아하진 않지만 '냉동실의 말보로 레드'는 좋아합니다. 사실 제대로 하려면 스벅 아이디가 '재희가 피우는 냉동실의 말보로 레드'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글자 수의 압박 때문에 '말보로 레드'로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년 정도 된 거 같은데, 다행히 2년 전에는 같은 닉네임이 없어서 바그다드까페에서 갈아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 같습니다. 담배와 커피는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리고 제가 '말보로 레드'를 특별히 생각하는 또 다른 추억이 있습니다. 벌써 15년도 넘은 얘기입니다. 저는 군대를 전역하고 2007년에 DVD방(오래전 비디오방에서 진화함.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음.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요즘에는 숙박시설에서 스트리밍으로 영화 시청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됨)에서 야간 알바를 했습니다. 제가 해 본 수 많은 야간알바 중 가장 좋아했던 알바였습니다. 왜냐하면 야간에는 손님도 거의 없었고, 남는 시간에는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열설적으로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은 오래 할 수 없었습니다. 야간 알바를 하는 이유는 돈이 궁했기 때문인데 DVD방 알바는 장점이 많아서 시급이 낮았습니다.


짧은 DVD방 알바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습니다. 지금 해보니 직장인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30대 초반의 여성 분이었습니다. 그녀는 저녁 8시에서 10시 사이에 늘 혼자 DVD방을 찾았습니다. 일주일에 2~3번 정도 꾸준히 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녀는 영화를 고른 뒤 카운터에 있는 저에게 DVD 케이스를 내밀고는 빈 종이컵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방번호를 알려주면서 종이컵을 건내면 그녀는 정수기로 종이컵을 가져가서 살짝 물을 받고 지정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며 혼자 담배를 피웠습니다. 물이 살짝 담긴 종이컵은 재떨이 대용으로 사용했습니다. 2007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담배에 관대했습니다. 그래서인지 DVD방은 금연 구역이었음에도, 흡연을 하는 단골들의 손에 종이컵이 쥐어졌습니다. 흡연자는 영화를 보며 흡연을 참기 어려웠을 겁니다. 단골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그녀가 영화를 다 보고 나가면, 저는 알바의 소임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녀가 떠난 자리를 치우고 싸구려 방향제를 뿌렸습니다. 그녀는 깔끔한 편이었던지라 담배꽁초가 담긴 종이컵만 치우면 됐습니다. 그녀가 피웠던 담배가 바로 ‘말보로 레드’ 였습니다. 그녀는 평소 영화를 볼 때면 딱 2개비만 피웠고, 딱 2개의 꽁초만 종이컵에 남겼습니다. 아마도 영화 초입에 한 개비를 피고, 클라이맥스에서 한 개비를 더 태우지 않았나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아주 가끔씩 그녀는 3개비를 핀 경우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명작을 본 경우였습니다. '타짜'라든지 '연애,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본 날이 담배 3개비가 종이컵에 담긴 날이었습니다.


아... 몸에도 안 좋은 담배 얘기를 너무 길게 했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모태 비흡연자인데 이렇게 잡설이 길다니요... 사과드립니다. 다시 스타벅스로 안내하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스타벅스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진 시기가, ‘스타벅스 하고 싶은 거 다 해’ 시기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에서 골프공을 팔고, 스타벅스에서 모기업 야구 유니폼을 파는 모습을 보고 그랬습니다. 농담 삼아 지인들에게 요즘 스타벅스 온라인 샵을 가면 '비싼 다이소'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종종 얘기합니다. 시애틀에서 시작된 스타벅스 브랜드 이미지가 한국의 대기업을 거쳐 변질된 느낌입니다.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은 스타벅스에서는 커피와 텀블러만 팔았으면 좋겠습니다.


수년 전, 사랑했던 여자친구(지금의 아내)를 위해 프리퀀시를 고이 모아 당시에는 힙했던 스벅 다이어리로 교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스벅 프리퀀시 상품은 힙하디 힙한 '영스피릿'의 무언가였습니다. 스타벅스의 프리퀀시 상품을 '겟' 하기 위해 에스프레소 수십 잔을 시키고 마시지도 않고 그대로 버렸던 손님의 일화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스벅 프리퀀시의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몇 년 전 스벅 다이어리를 수줍게 받았던 (사랑했던) 여자친구였던 지금 아내와 올 겨울 프리퀀시 상품에 대해 상의 했습니다.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더군요. 별 고민 없이 '포터블 램프 보카니아 T 그린'을 가져오라고 명령했습니다. 포터블… 보타니아… 그…. 찾아보니 쉬운 말로 '녹색 무드등'이었습니다.

올 겨울 프리퀀시 상품

예전만큼 열성적으로 모으지는 않았지만, 이번 시즌에도 어쨌든 프리퀀시를 다 모았습니다. 올해는 특이하게 미션 음료를 과하게 마셨는데, ‘더블 에스프레소 크림 라떼’가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미션 음료를 2잔이나 오버해서 마셨습니다.

올 겨울에도 또 모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녹색 무드등'을 '겟'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에서는 구할 수도 없고, 겨우 발견한 곳은 455,532m 떨어진 제주시청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12월 6일 '겟' 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 됐습니다. 이게 이럴 일인가요? 하지만 저는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지체 없이 제가 몇 년 전 사랑했던 여자친구이자 지금의 아내에게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아내는 혀를 차며, 한 마디 하더군요.


‘아침 7시에 다시 리셋되니깐 그때 오픈런을 해야 돼’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냐고 되물어보니, 맘까페라고 합니다. 음… 맘까페는 정말 정보의 보고인 곳 같습니다. (저는 맘이 아니라서 가입할 수 없다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맘까페에서 얻은 정보로 스벅의 마케팅 정책에 대해 부연 설명했습니다.


<스벅의 프린퀀시 마케팅 전략>

1. 사람의 심리상, 어렵게 얻은 제품은 더 귀하게 여긴다.

2. 일부러 프리퀀시 상품을 조금씩 풀어서 스벅 어플에 대한 접속을 늘린다. 일단 접속이 늘어나기만 하면 상품 판매지수가 올라갈 것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습니다. (다시 한번 맘까페에 가입할 수 없는 저의 처지가 안타까웠습니다)


희한합니다. 스벅이 편해질수록, 마케팅이 강화될수록 브랜드 충성도는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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