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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Dec 05. 2024

40대 뚱보 직장인의 건강검진

'천국의 계단'으로 초대합니다

제목만 보면, 40대 뚱보 직장인(‘나’)의 건강검진에서 심각한 결과로 인해 천국의 계단을 건너는(혹은 건널 뻔한) 이야기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결말이 다르니 끝까지 읽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럼,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연말입니다. 연말이면 술자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습니다. 다들 40줄에 들어섰습니다. 우리는 동창이니깐요.


40줄에 들어선 우리의 대화는 예전과는 분명 달라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10대 때부터 만났기 때문에 이런 대화는 조금 낯설기도 했습니다. 살벌한 대화였거든요.


예를 들면, 동창 A가 이번에 암에 걸렸다더라, 동창 B가 건강검진 하고 추가로 추적 검사를 받았는데 상황이 안 좋다더라 등등. 살벌한 대화는 기실, 건강 때문이었습니다. 40대가 되니 다들 건강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고 있었습니다.


저도 연말을 맞아 지난 11월 11일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미루고 미룬 검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건강검진은 미뤄야 제맛이거든요. 마치 벼락치기와 같은 원리죠.


이렇게 쿨하게 말하지만 사실은, 조금 무서웠습니다. 최근에 살이 많이 쪄서, 생애 최고 몸무게를 찍은 연유로 건강이 안 좋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겁하게 미뤘습니다…


결국, 최근에 결과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상보다 더 결과가 안 좋았습니다. 추가적으로 약을 먹는다거나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분명, 좋지 못한 상태인 것은 확실합니다.

빼빼로 데이에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빼빼로 몸매를 기원하며….

왜 이런 살벌한 결과가 나왔는지… 그것도 딱 40살에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철저히 저를 분석해 봤습니다.  


운동 부족

다른 저의 브런치 글에서도 몇 번 언급했는데, 저는 운동을 좋아합니다. 30대 초반에는 수영에 빠져있었고, 급기야 영등포구청장배 수영대회 핀수영에서 2등을 했습니다. 수영이 조금 지겨워질 때는 크로스핏도 제법 했고요. 저는 제가 운동을 하지 않으면 금세 살이 찌는 체질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요 몇 년간 운동을 거의 놓다시피 했습니다. (틈틈이 수영장을 가는 것도 꾸준하게 가지 못했습니다) 비겁한 변명을 하자면, 저희 집에 새 식구도 생겼고, 이직을 하고 적응이 필요했습니다. 압니다… 변명이라는 것을요.


아주 잘못된 식습관

저는 식습관이 바르지 못합니다. 가공식품을 좋아하고요. 야채는 거의 먹지 않습니다. 그리고 밥도 오지게 빨리 먹었습니다. (지금은 의식적으로 고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습관을 가진 제가, 운동도 놓아버렸으니 살이 차오르는 건 당연한 결과였죠.


못된 술버릇 

저는 못된 술버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주사가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술을 마시면 허언증이 심해집니다. 특히, 주량을 과시하는 아주 몹쓸 허언증입니다. 우리나라의 유서 깊은 주도상, 술을 마시면 상대방의 주량을 묻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의 주량은 제 앞에 앉아있는 당신보다 무조건 한잔 더, 혹은 고객보다 한 병 더'


이런 잘못된 드립을 날립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술만 마시면 이런 허언증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어렸을 때는 더 가관이었습니다. 특히 20대 후반, 중동에서 한창 비즈니스를 할 때 주량을 물어보면 소주 1배럴*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완전히 정신 나간 상태였죠.


이렇게 자기 최면을 걸다 보니, 실제로는 술이 약하면서 매번 과음을 하게 됩니다.


*배럴: 원유를 담는 용기이자, 원유 부피를 재는 국제 표준 측정 단위입니다. 1배럴은 42갤런, 약 159리터에 해당됩니다. 즉, 저는 소주를 159리터 마실 수 있다고 구라를 친 겁니다. 159리터를 소주병으로 환산하면 대략 500병인데요... 이렇게 숫자로 풀어보니 제가 얼마나 한심한 구라를 날렸는지 알겠습니다. 부끄럽네요.



이딴식으로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월급이 적다고 직장인 선물 세트 3종(고혈압, 지방간, 고지혈증)을 받아서는 되겠습니까?


그래서 우선 못된 술버릇부터 고치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아예 술을 끊으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또 다른 허언입니다. 그렇지만 노력은 해 볼 생각입니다. 금주가 안되면 적주(적당한 술)라도 해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못한다는 핑계 대신, 어떻게든 운동거리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바로 찾았습니다. 바로 회사의 비상구 계단입니다.


우선 하루에 딱 2번만 계단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점심 먹고 복귀할 때 딱 2번입니다. 오늘 바로 실천에 옮겼는데 효과가 좋더군요. 다리가 바로 후들거렸습니다. (참고로 저의 사무실은 5층입니다...)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내일도 해보려고 합니다.

천국의 계단

그리고 회사 비상구 계단에 이름도 지었습니다. 바로 ‘천국의 계단’입니다. 저는 믿는 종교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천국의 계단’이라고 지었을까요? 맞습니다… 생각하시는 그 유치한 이유…  20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 드라마, 압도적인 전국 시청률 40%를 찍었던 그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따왔습니다. 오늘 계단을 처음 오르면서 처음으로 떠올린 생각이 ’천국의 계단’이었습니다. 아마 힘들어서 살짝 상태가 안좋았나 봅니다. 이런 유치한 생각을 하는 걸 보니깐요.

드라마 '천국의 계단'

그럼에도… (사랑은 돌아오지만) 살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발요.


p.s. 40대 직장인이여, '천국의 계단'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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