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더라? 내가 왼손으로 마우스를 사용하고, 젓가락질을 하며, 칫솔질을 시작했던 때가.
꼼꼼하지 못한 성격 탓에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시절로 짐작하는 습관으로 미루어보건데, 미얀마 시멘트 공장 시기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략 5~6년 전에 시작된 일이다.
대부분의 생활과 일을 오른손에 의존했던 나는, 그때부터 생활의 기본축이 왼손이 될 때까지 주구장창 연습했더랬다. 먼저 칫솔질부터 왼손으로 연습하고, 마우스로 영역을 확장한 후 최종으로는 숟가락질은 물론 젓가락질까지 무리없이 사용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왼손으로 칫솔질을 잘 하지 못하고 몇 초만 하더라도 왼손과 왼팔이 아팠지만 점차 익숙해졌고, 결국 3분을 왼손 칫솔질로 채웠다. 마우스질도 처음에는 빈화면, 워드, 나중에는 피피티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젓가락질은 처음에는 밥부터, 반찬, 지금은 콩자반 한 개까지 집어서 입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살짝만 말했을 뿐인데 상대방이 오히려 더 신이 나서 얘기를 이어간다. 그만큼 영화가 재밌고, 인상 깊었던 반증이다. 그럴수록 나의 B&G는 더 먹혀 들어간다.
나는 대화를 이어간다.
"나는 안상구가 오른팔이 짤려 어쩔 수 없이 왼손으로 젓가락질 해서 라면 먹는 장면보고 충격 받았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라면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잖아!"
"그래도 대충 휘휘 돌려가며 맛있게 먹던데? 그거 완전 먹방짤 레전드 됐잖아."
이쯤해서 나의 B&G는 절정에 도달한다.
"내가 왼손을 연습하겠다고 마음 먹은 게 사실 그 장면 때문이야. 만약에 내 오른팔이 서걱서걱 짤리면, 왼손밖에 안 남는데, 그 때 내가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못하면, 좋아하는 라면을 제대로 못 먹잖아. 숟가락으로 라면을 먹을 수도 없고... 안상구처럼 휘휘 돌려서 먹자니, 너무 뜨겁고 또 인간성을 포기한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내부자들 영화보고 나서 왼손을 연습하기 시작한 거야."
상대방은 이 때부터 혼란스러워한다. 말이 안되는 거 같지만 그렇다고 전혀 설득력이 없어 보이지도 않는, 진실과 구라의 오묘한 경계를 오간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안상구가 왼손으로 라면을 휘휘 돌려 먹는 장면. 아마 엄청 뜨거웠을 것이다>
사실 이 지면에서 최초로 밝히지만, 내가 왼손을 사용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는, 서걱서걱 오른팔이 짤린 안상구 때문이 아니다. 오른팔이 없을 때 라면을 인간답게 먹기 위해서도 아니다. 바로 황선미 작가님의 에세이 <익숙한 길의 왼쪽>을 읽고 왼손에 입문했다.
미얀마에서 읽었던 책이라, 책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충 기억해보자면 오른손 잡이였던 황선미 작가님이 오십이 훌쩍 넘자, 오른팔과 오른쪽 어깨 등 주로 오른쪽에 집중적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고백하셨다. 물론 단순 질병 고백으로는 병원 가서 치료하면 충분했지만, 작가님은 이를 통해 인생에 대한 통찰로 확대하셨고, 이를 에세이로 승화시켜 <익숙한 길의 왼쪽>이라는 책을 출간하셨다.
다음은 책 내용 중에 일부다.
'오른손잡이로 너무 오래 살았다. 이제부터는 왼쪽의 삶에 무엇이 있는지 봐야겠다. 서툴고 느리고 두렵고 어색할 테지만 왼쪽 길에도 역시 도전할 만한 뭔가가 있지 않겠나.'
'늘 다니던 익숙한 길의 왼쪽에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왜 나는 한가지 길밖에 몰랐을까. 익숙하고 편리한 게 전부가 아닌 줄 그 때 이미 알았으면서 나의 오른쪽이 무너지고 있는 줄은 이렇게 몰랐다니.'
'익숙한 길의 왼쪽 모퉁이를 돌면 거기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그랬다! 나는 미얀마 시멘트 공장에서 일도 하고 숙식을 할 때, 황선미 작가님의 <익숙한 길의 왼쪽>을 감명 깊게 읽었드랬다. 당시 너무 심심했던 나머지 익숙한 길의 왼쪽 모퉁이를 돌면 거기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너무 궁금해서 몸소 실천했던 것이다!
이게 말이 안 될 수도 있는데, 내 말을 좀 더 차근차근 들어보시라. 내가 근무했던 미얀마 시멘트 공장은 미얀마에서도 아주 오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요렇게 말하면 와닿지 않으니, 이렇게 설명해 보면 어떨까? 우리나라 60년 대의 충북 제천의 시멘트 공장. 실제로 당시 한국 시멘트 공장에서 30년 넘게 근무하신 경력이 있는 분을 채용했는데, 그 분께서 미얀마 시멘트 공장의 생활상을 그렇게 표현하셨다.
그만큼 일이 끝나면 할 일이 없었다. 생각해보자. 1965년 충북 제천의 시멘트 공장에서 기숙을 하는 내가 일이 끝나면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그나마 시내로 나가려면 차로 5시간 이상 가야하는데.
촘촘하게 밤을 수놓은 반딧불이를 생전 처음 보았고, 밤에는 핸드폰 조명을 꼭 밝게 해서 걸음을 비춰야지만 뱀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동네 출신의 미얀마인이 간증하길, 시멘트 공장이 들어서기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야생 코끼리떼가 즐겁게 뛰어 놀았다고 한다. 그만큼 신비한 곳.
그곳에서 나는 먼가에 홀린 듯 익숙한 길의 왼쪽편을 직접 보고자 왼손을 연습하기... 아니, 수양하기 시작했다.
(왼손 수양의 결과가 어떤지는 다음 편 글로 말하고자 합니다. 익숙한 길의 왼쪽 모퉁이를 돌면 거기엔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 편을 읽어주세요.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