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회사를 싫어하는 아버지
자립과 고민 사이
저희 아버지는 1955년 생으로 환갑을 훌쩍 넘기셨습니다. 경상도에서만 평생을 사셨고, 그 또래의 많은 어른들이 그렇듯 전쟁 후 학업을 일찍 포기하고 생업전선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한평생 노동으로 점철된 삶을 사셨지만, 운이 좋지 않았는지 아니면 성향 때문인지 여전히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보수적이고요.
아버지는 항상 저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셨지만,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겨우겨우 아버지를 조금 만족시킬 만한 성적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아버지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물리적 독립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저를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점이 2가지가 있습니다. 본인의 삶까지 포함해서 가장 자랑스러운 점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본인의 삶이 아닌 당신의 아들 삶 중에서 자랑거리를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아프가니스탄 파병입니다. 사실 제가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 간 이유도 집안이 가난해서였습니다. 집안의 지원도 없이 경상도 촌놈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기란 너무 힘들더군요. 그래서 돈이 되는 것들은 다했습니다. 술집, 고깃집, 호프집, 디브이디방을 전전하며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다시 학교를 다녔습니다. 이런 저에게 군대에서 파병의 기회는 천금과 같았습니다. 필사적으로 지원했고,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파병을 다녀왔습니다. 17년 전인데도 아직 기억납니다. 파병을 마치고 성남 근처 군기지에서 해산식을 가졌는데, 그때 아버지는 어떻게 아셨는지 경상도에서 오래된 차를 몰고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아마도 군에서 집으로 연락을 했으리라 예상됩니다) 그때 같이 찍은 기념사진이 아직도 경상도 아버지의 집에 걸려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제가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였습니다. 누구보다도 기뻐하셨고, 주위에 자랑을 많이 하셨습니다. 몇 년이 지나 가끔씩 친척들을 만날 때 저희 아버지가 그렇게 자랑을 하고 다녔다고 저에게 귀띔을 해줬습니다.
그런 아버지와 요 몇 년, 사이가 서먹서먹 해졌습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짐작하건대 제가 2년 반 전에 대기업을 그만두고 중소기업으로 옮긴 이유가 가장 클 것입니다. 아버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자랑을 한 가지 잃은 것과 같으니깐요.
중소기업으로 이직하고 얼마 뒤, 아버지와 언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일관되게 '도대체 왜 대기업을 그만뒀느냐'로 공격하셨습니다. 처음에 저는 최대한 차분하게 저의 성향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잘 맞고, 중소기업에서 성장할 계획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해를 못 하시더군요. 제가 정신력이 약해 대기업을 그만둔 거라고 이미 결론을 내시고 그 외에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슬펐습니다. 아들의 마음과 아들의 계획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결국, 지금까지도 서먹서먹한 사이는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서울에서 고군분투하면서 가정생활과 회사생활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경상도에 홀로 계신 아버지와는 그렇게 만날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 이 관계는 풀기 힘들고 요원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쉽고 얼른 회복을 하고 싶지만, 제가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우선 심리적 자립을 이뤘고, 제가 꿈꾸던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대기업에서는 시스템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중요했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제가 주도적으로 일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업무 범위도 더 넓어졌고, 의사결정 과정에도 직접 참여하면서 더 큰 책임감과 성취감을 느낍니다. 특히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시스템이나 매뉴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해결방안을 찾아내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큰 성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평생 가난과 싸우며 살아오신 아버지께 대기업은 안정과 성공의 상징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에게는 안정보다 성장이 더 중요했습니다. 때로는 세대 차이라는 깊은 골을 뛰어넘기 힘들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