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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Dec 11. 2024

중소기업이 싫어서

원영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원영적 사고'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집단 사고'와 같이 심리학 용어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참 뜻은 '장원영처럼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라는 뜻이란 걸 알았습니다.


저는 지금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어느 날 회사 후배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후배는 현재 고객사인 대기업 실무진과 프로젝트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 (일부 대화 내용을 각색했습니다)


후배: "팀장님, 대기업은 진짜 부러워요."


바Cafe: "왜?"


후배: "여기는 진짜 업무가 세분화 되어있고, 꿀보직도 많은 거 같아요. 예를 들어 해외에 투자를 검토할 때 땅만 보는 사람, 건축 관리만 하는 사람, 자재만 조달하는 사람 등등 이거만 몇 년간 하잖아요."


바Cafe: "어? 그거 네가 지금 다 하는 거 아냐? ㅋㅋ 그리고 내가 예전에 다 했던 것들이고."


후배: "그렇죠. 팀장님 일을 제가 물려받았으니깐."


바Cafe: "그래서 우리를 '전략구매투자해외사업지원인사총무물류대외협력팀'이라고 부르잖아. 아 맞다. 최근에 법무검토 기능 추가됐다. ㅋㅋ"


후배: "휴... 중소기업이라서 더 그런 거 같아요."


바Cafe: "너는 다양한 일을 하는 게 힘드니?"


후배: "재미는 있는데, 가끔씩 버거울 때가 있죠."


우리의 하루는 대충 이렇습니다:


아침 8시 - 해외 투자 전문가로 시작

"우리가 투자하기에 적절한가? 지질은? 지반은? 주변 인프라는? 현지 법규는?"


아침 10시 - 갑자기 건축 전문가로 변신

"이 건물의 구조는 안전한가? 내진 설계는? 소방 시설은? 주차장은?"


오후 2시 - 물류 담당자로 급변신

"원자재는 제때 도착하나? 운송비는? 재고 관리는? 창고 상태는?"


오후 4시 - 법무 담당자로 피날레

"계약서 검토는? 법적 리스크는? 소송 가능성은?" (법대도 안 나왔는데 어쩐지 법조인이 된 기분입니다)


그리고 야근.


우리 팀의 비공식 명칭은 숨 한번 크게 들이마셔야 할 만큼 깁니다. '전략구매투자해외사업지원인사총무물류대외협력법무팀'. IVE의 '아이 엠' 가사만큼 긴 이름입니다. 한 사람이 이 모든 역할을 수행하다 보면, 때론 슈퍼히어로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월급은 히어로 월급대신 철저하게 1명분입니다.

이렇게 완벽한 젊은이가 있다니요...

저는 우울증에 취약한 나르시스트이긴 하지만 최근에 달라진 게 일부러라도 긍정적인 사고, 원영적 사고를 탑재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땅만 보는 사람, 건축만 보는 사람, 자재만 보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으면 전체 그림을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걸 한꺼번에 볼 수 있습니다. (러키비키 1)


실제로 우리의 업무는 마치 르네상스 시대의 장인들처럼 다재다능함을 요구합니다. 아침엔 해외 투자 검토를, 정오엔 구매를, 오후엔 법무 검토를... 때로는 하루에도 여러 번 직함이 바뀝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현대판 르네상스인이라 할 수 있죠. (러키비키 2)


"버거워요..."라고 말하는 후배에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자님이 말했잖아.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곤혹스럽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라고. 넌 지금 배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배우고 있는 거야. 완벽한 선순환이지!" (러키비키 3)


그러자 후배가 대꾸했습니다. "진짜 공자님이 말했나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공자님이야 워낙 말씀을 많이 하셨으니깐, 당연히 했겠지."


후배는 저의 말도 안 되는 농담에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대기업의 안정적이고 세분화된 업무 환경이 부럽게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우리는 매일매일이 새로운 도전이고 배움입니다. 물론 절대 쉬운 길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도 많은데 부정적인 생각만 한다면, 건강만 나빠집니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처럼, 한 분야에만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거죠. (마지막 러키비키 4입니다)


p.s. 대한민국 중소기업에 다니시는 모든 직장인 여러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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