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이라크의 한 사택에서 만난 30년 된 히타치 에어컨은 여전히 굉음과 함께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라크에서 3년간 건설 노동자로 일하며 배전사업 수주를 위해 이라크 정부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히타치가 포함된 일본 컨소시엄의 강력한 경쟁력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로부터 7년 후, 미얀마의 시멘트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다시 한번 히타치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수십 억 원의 히타치 중장비를 구매하는 과정에서였죠. 현지에서 히타치 중장비의 높은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 기억 속의 히타치는 전자제품과 건설중장비의 회사였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LG전자와 HD현대를 합친 것 같은 존재였죠. 하지만 최근 히타치의 변화 이야기를 접하면서, 저는 '변화'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일본 제조업 역사상 최대 적자(7873억 엔)를 기록했던 히타치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는 단순한 구조조정이나 사업 재편이 아닌, 기업의 DNA를 바꾸는 과정이었습니다. 22개의 상장 자회사를 정리하고, 해외 매출 비중을 61%로 끌어올리며, 외국인 직원 비중을 60%까지 확대했습니다. 12명의 이사 중 9명을 사외이사로, 그중 5명을 외국인으로 선임하며 지배구조까지 혁신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히타치가 변화를 바라보는 관점이었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걸린다'가 아니라 '시간을 들이는 것'을 염두에 뒀습니다. 시간을 들여 변화를 납득한 후에 일하게 하는 겁니다.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작을 빨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말은 단순한 기업 혁신 사례를 넘어, 우리 시대의 모든 조직과 개인에게 깊은 통찰을 줍니다. 많은 조직들이 "빨리 변해야 한다", "경쟁사가 앞서간다", "시장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조급해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구성원들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히타치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변화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구성원들의 우려를 경청했습니다. 새로운 역량을 개발하는 데 시간을 투자했고, 실패도 배움의 기회로 받아들였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가치관이 조직에 뿌리내리도록 충분한 시간을 들였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관점에서도 이는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언젠가는 변해야지", "기회가 오면 그때 준비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수동적인 태도입니다. 변화는 누군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입니다.
히타치가 15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이뤄낸 변화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얼마나 현명하게 시간을 사용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지만,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구성원들의 납득을 기다렸지만, 변화의 방향은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2024년에는 주가 상승률 90%를 기록하며 일본 시가총액 4위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고, 그 시작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조급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면서, 그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시간이 걸린다고 좌절하지 말고, 오히려 그 시간을 의미 있게 채워나가야 합니다.
이라크에서 만난 에어컨을 만드는 회사가 AI 활용을 극대화하는 회사로 변한 것처럼, 변화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의식적으로 시간을 '들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미얀마에서 본 히타치 중장비의 신뢰도처럼, 진정한 변화는 시간을 들여 쌓아 올린 결과물입니다.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작을 빨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히타치의 통찰은, 오늘날 우리가 변화와 성장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놓습니다. 변화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바로 오늘부터 시작하세요. 그리고 그 과정을 즐기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 같습니다. 차이는 그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습니다. 히타치가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변화하고 있듯이, 우리의 성장과 변화도 끝없는 여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여정이 고통스러운 시련의 연속이 아닌, 성장의 기쁨을 누리는 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시간을 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저는 변화의 여정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은 성공과 실패를 모두 소중한 배움의 기회로 받아들이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것이 바로 현대 사회에서 조직과 개인이 생존하고 번영하는 길이라고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