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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합니다. 커피가 안 땡깁니다.

설마...

by 바그다드Cafe

이상합니다. 커피가 안 땡깁니다. 벌써 5일째 회사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카페인이 없으면 도저히 회사생활을 할 수 없는 제가, 5일째 커피를 마시지 않다니요. 그것도 일부러 마시지 않은 것도 아니고 순전히 제 몸에서 커피를 원하지 않습니다. 마치 오랜 연인과 갑자기 전화도 안 되고 문자도 안 되는 것처럼, 커피와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오늘은 금요일입니다. K직장인에게는 한 주의 누적된 피곤이 대폭발 하는 요일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출근하고 커피 한 사발(아침의 첫 데이트), 점심 전에 에너지 드링크 한 사발(오전의 긴급 구원), 점심 먹고 커피 한 사발(식곤증과의 전쟁), 오후 3시는 오후 3시이기 때문에 에너지 드링크 한 사발(오후의 구세주)이 저의 일과입니다. 물대신 카페인을 몸에 넣는 구조입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우스가 네오에게 건넨 빨간약처럼, 카페인은 제 현실을 지탱하는 기둥이었죠.


그리고 오늘은 아침에 중요한 일 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했습니다. 보통 이런 날이면 더블샷 아메리카노는 기본이고, 옆구리에 에너지 드링크까지 끼고 다녔을 텐데... 그런데도 커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이상합니다.


도대체 제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11월 말부터 시작한 간헐적 단식과 연관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루 5시간만 식사하고 나머지 19시간은 물만 마시는 이 단식법을 시작하고 나서, 제 몸에는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나 봅니다. 마치 오래된 컴퓨터의 포맷과 재설치를 하는 것처럼, 제 몸은 스스로를 리셋하고 있었던 거죠.


처음에는 단순히 체중 감량을 위해 시작했던 간헐적 단식이, 점점 저를 '카페인 중독자'에서 '카페인 무관심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마치 SNS에서 '관계 끊기'를 하듯, 커피와의 질긴 인연도 자연스레 정리되고 있나 봅니다.


회사 동료들은 제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놀랐습니다. "너 아프냐?", "혹시 임신한 거 아니냐?"(저는 남자입니다) 등등 온갖 잡설이 쏟아졌죠. 어제는 "너 요새 왜 이렇게 착해졌냐?"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카페인 부족으로 예민할 때가 많았나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는 퀭한 눈으로 커피머신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제가(마치 새벽 론칭하는 신상품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이제는 쳐다보지도 않으니까요.


아침에 눈을 뜨면 상쾌합니다. 더 이상 '커피 없이는 못 살아'라는 주문을 외치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물과 차를 마시고, 비타민과 마그네슘을 챙기면서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다음은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요? 점심시간 후 초콜릿이 당기지 않는다거나, 퇴근 후 치맥이 생각나지 않는다거나... 아… 이건 좀 너무하겠죠? (치맥은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제발) 일단 지금의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신기하고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매일 아침, 커피 대신 따뜻한 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에너지는 커피가 아닌, 건강한 생활습관에서 온다는 것을요.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스타벅스 골드회원 자격을 잃게 될 것 같다는 점? 아, 이제 그런 것도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네요.


별다방의 올해 첫 주문이 '유자 민트 티' 였네요. 올해는 시작과 끝에 까페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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