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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꼰대 되기 좋은 날씨입니다

세대 차이인가 시대 차이인가

by 바그다드Cafe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고, 권위를 무시하며,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


놀랍게도 이는 김 부장님의 말이 아닙니다. 기원전 1000년 경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서 발견된 글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비슷한 말을 남겼고, 이집트 피라미드의 벽화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발견되었습니다.


세대 갈등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어른 세대는 젊은 세대를 비판해 왔고,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압축 성장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세대 간 차이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세대 간의 갈등이 심각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평범한 사무실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보릿고개를 겪은 60년대생 임원, IMF를 통과한 70년대생 부장, 디지털 변혁기를 산 80년대생 팀장,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접한 MZ세대 사원들이 한 공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마치 각기 다른 시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사람들처럼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다른 세상을 살아왔는가


60년 대생들의 청춘은 고도성장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서울 변두리의 판잣집에서 자라나 구로공단으로 출퇴근하던 누나의 월급으로 대학을 갔고, 농사짓던 부모님이 소를 팔아 등록금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들에게 직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닌 가족 희생에 대한 은혜를 갚는 곳이었고, 조국 근대화의 현장이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라는 말이 이들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70년 대생들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격변기를 통과했습니다. 청소년기에는 군사정권 말기의 엄격한 교복 단속과 두발 규제를 경험했고, 대학생 때는 90년대 초중반 역동적인 경제성장기를 보았으며, 사회 초년병 시절에는 IMF 외환위기를 맞았습니다. 한 순간에 주변 동료들이 정리해고되는 것을 보며, 이들은 안정성과 성실성의 가치를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80년 대생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교차점에 서 있습니다. 이들의 학창 시절은 급격한 정보화의 시기와 겹칩니다. PC통신을 처음 접했고, 대학생 때 SNS의 등장을 목격했으며,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전환을 경험했습니다. 또한 본격적인 입시 경쟁과 빈부 격차를 체감한 첫 세대이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와 글로벌화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90년 대생들은 선진국 대한민국의 첫 세대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네이티브였고,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글로벌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했습니다.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가치관을 보입니다. 워라밸, 개인의 행복, 다양성의 인정은 이들에게 있어 타협할 수 없는 기본 가치입니다.


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가


한국의 세대 갈등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압축적 시대 변화에 있습니다. 불과 30~40년 만에 농업사회에서 첨단 디지털 사회로 진입한 나라는 세계 역사상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 사무실에 앉아있는 구성원들이 마치 다른 시대, 다른 문명에서 온 것처럼 전혀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요즘 애들은 이기적이야"라고 말하는 윗세대나, "꼰대는 이해가 안 돼"라고 말하는 아랫세대나 모두 서로의 성장 배경과 시대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나이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세대 간 이해의 첫걸음은 이러한 '시대적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는 의문 대신 "저 세대는 어떤 시대를 살아왔을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더 나아가, 각 세대는 서로에게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60년 대생들의 책임감과 헌신, 70년 대생들의 적응력과 회복탄력성, 80년 대생들의 균형감각, 90년 대생들의 창의성과 다양성 존중은 모두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들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에게서 배우려는 자세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왔지만, 지금 이 순간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압축 성장이 만든 세대 간 간극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소통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단순히 세대 갈등을 진단하거나 특정 세대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왜 이토록 다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작은 제안입니다. 이것이 세대 갈등 해소를 위한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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