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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40대 팀장

이대로 쓰러질 순 없습니다

by 바그다드Cafe

저는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여의도의 한 회사에서 근무했습니다. 금융의 심장부라 불리는 이곳에는 증권회사, 금융회사 등이 많이 위치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여의도의 직장인은 경쟁이 더 치열할 것 같다는 저만의 편견이 있습니다. 제가 여의도에서 몇 년 간 근무할 때도 괜히 기분인지 몰라도 다른 직장인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의도 직장인 괴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의도 직장인들이 스트레스와 과로사로 갈려나간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괴담이 아닙니다. 실제로 10년 전 저와 같은 건물에 근무하던 40대 팀장이 야근 중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당시에 저는 팀장들의 스트레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어쩌면 여의도에서 길 가다 마주쳤을 누군가의 죽음에 잠시 놀랐을 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었습니다.


6년 전 저는 여의도의 직장을 떠났고, 2년 반 전에 지금의 중소기업에서 전략구매투자해외사업지원인사총무물류대외협력팀의 팀장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영업팀의 일까지 추가되었습니다. 이제는 '영업전략구매투자해외사업지원인사총무물류대외협력팀'이라는 이름의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팀 이름을 말하다 보면 숨이 찹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 길어진 팀 이름 속에는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현실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40살에 이 모든 업무를 맡다보니, 이제는 여의도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그 팀장님의 스트레스가 이해가 됩니다. 저도 요즘 회사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입니다.


우리 80년 대생들은 특별한 세대입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교차점에 서 있습니다. PC통신을 처음 접했고, 대학생 때 SNS의 등장을 목격했으며,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전환을 경험했습니다. 또한 본격적인 입시 경쟁과 빈부 격차를 체감한 첫 세대이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와 글로벌화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세대입니다.


바꿔 말하면, 낀세대입니다. 위에도 치이고 아래에서도 치이는(다행히 우리 회사의 영업전략구매투자해외사업지원인사총무물류대외협력팀의 팀원들은 저를 치이게 하지 않습니다) 세대입니다. 지금의 40대 팀장들이 딱 그런 위치에 있습니다.


'23년 이직 후 팀장이 되었을 때 여의도에서 또 하나의 비극적인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여의도에서 한 40대 팀장이 19일 동안 259시간을 근무하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하루 평균 13.6시간의 근무 시간. 그 시간 속에 가려진 한 사람의 인생이 있었을 텐데, 그저 숫자로만 남게 되어버렸습니다.


https://news.tvchosun.com/mobile/svc/osmo_news_detail.html?contid=2023092690172


소식을 접하고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이대로 무너지기에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만 그럴 뿐 차일피일 미루다가 1달 반 전부터 본격적인 건강관리를 시작했고, 지금은 8kg를 감량했습니다.


더 이상의 40대 팀장 사망 소식을 듣지 않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드립니다.


1.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건전한 방법 찾기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제일 좋겠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건전한 방법을 꼭 찾아야 합니다. 절대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습관을 들이면 안 됩니다. 술을 마실 때 나오는 도파민은 찰나와 같습니다.


2. 건강 관리의 생활화


제 주변의 40대 초반 동료들을 둘러보면, 대체로 몸에 이상 신호가 감지됩니다. 관리하지 않았다면 고혈압, 당뇨, 콜레스테롤의 3종 종합선물 세트를 받기 시작하는 나이입니다. 더 늦기 전에, 더 상황이 안 좋아지기 전에 건강 관리를 시작해야 합니다.


3. 회사에 모든 걸 올인하지 않기


대기업에서 임원이 될 확률은 1% 미만입니다. 그렇다고 회사에 모든 걸 올인해도 모두가 임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워낙 임원의 비중이 낮으니까요. 이런 낮은 확률을 위해 회사에 모든 걸 올인하고, 나 자신을 갈아넣기만 해야 할까요?


그리고 제 경험상 회사에 모든 걸 올인한다는 사람치고 '진정 회사일을 잘하는' 사람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회사에 모든 걸 올인한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은 정작 시선이 좁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우리의 전부가 아닙니다. 여의도의 밤하늘을 수놓는 불빛들이 누군가의 인생을 태우고 갈아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아름다운 광경이 아닙니다. 그저 호러물입니다.


더 이상 40대 팀장의 슬픈 소식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쓰러지기에는 아직 너무 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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