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나타난 미친소

그때 그때 달라요

이 글은 세스 고딘 저, <보랏빛 소가 온다>에서 실질적인 영감을 받았습니다.

"상무님, 지난번에는 분명히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요..."

"아니, 그건 그때고 지금은 다르지!"

"하지만 회의록에도 나와 있는데요..."

"회의록? 그런 건 형식적인 거고... 상황이 다르다니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대화 아닌가요? 특히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야!"라는 마법의 주문은 모든 논리와 증거를 한 방에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효과가 있습니다.

1. 선택적 기억상실증의 비밀

재미있는 점은 이런 '선택적 기억상실'이 항상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해리포터의 '망각마법'처럼요. 하지만 직원들이 뭔가를 잊어버렸을 때는?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가 바로 등장합니다.

예시 상황:

- 자신이 지시한 내용이 성공했을 때: "내가 그때 이렇게 하라고 했지?" (애석하게도 이런 경우 잘 없습니다...)

- 자신이 지시한 내용이 실패했을 때: "누가 그렇게 하래?"

- 직원이 새로운 제안을 했을 때: "아니, 그건 예전에 해봤는데 안 돼."

- 그 제안이 성공했을 때: "그래, 내가 그때 너한테 그렇게 해보라고 했잖아."

2. 양자역학적 기억력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꼰대의 과거 발언은 관찰하기 전까지는 모든 상태가 공존하는 양자역학적 상태에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 따라 과거의 발언이 결정되는 신기한 현상이죠.

예를 들어:

- 보수적인 결정이 성공했을 때: "내가 안정적으로 가자고 했지?"

- 보수적인 결정이 실패했을 때: "난 처음부터 과감하게 가자고 했는데..."

- 과감한 결정이 성공했을 때: "그래, 내가 한번 해보자고 했잖아!" (실상은 과감한 결정 잘 안 합니다...)

- 과감한 결정이 실패했을 때: "누가 그렇게 위험한 걸 하래?"

3. 꼰대의 타임머신

꼰대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바로 과거를 자유자재로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이죠. '타임머신 꼰대'의 주요 스킬을 살펴보면:

- 과거 발언 순간이동: "그때 내가 한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

- 미래 예지: "사실 난 이럴 줄 알았어."

- 현재 재해석: "내가 그래서 이렇게 하라고 했잖아."

- 기억의 마법: "너희가 잘못 기억하는 거야."

4. 꼰대 행동의 비밀 매뉴얼

1) 기본원칙

- 모든 성공은 나의 예지력 덕분

- 모든 실패는 남의 잘못

- 모든 과거는 수정 가능

2) 핵심 스킬

- 상황에 따른 발언 번복

- 증거 인정 거부

- "그때는 달랐다" 주문 외우기

- "너희가 잘못 알았다" 역카운터

치유는 가능한가요?

다행히도 이런 '꼰대증후군'은 치료가 가능합니다.

처방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억력 강화 운동

- 회의록 정리하기

- 자신이 한 말 기록해 두기

- 메모 습관 들이기 (물론 이게 귀찮다면 그냥 "다 내 기억력 탓이네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2. 자존심 내려놓기 운동

- 하루에 한 번 "내가 틀렸네요" 말하기

- 주기적으로 "잘 모르겠다" 시전 하기

- "젊은 친구 의견이 더 낫네!" 외치기

3. 실천 습관

- 회의 전: "이전에 내가 한 말과 다를 수 있어"라고 미리 말하기

- 회의 중: 메모하기

- 회의 후: 기록 확인하기 (이것도 귀찮다면 그냥 "나 꼰대 맞아요"라고 인정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마지막 처방전

장강명 작가님의 말처럼 "중년들이여, 책을 읽자. 주름 제거 시술보다 시급하다. 콘텐츠 부재도 주름만큼 훤히 보인다."

여기에 한 마디 더하자면: "기억력이 나쁜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기억력이 나쁜데 우기는 게 부끄러운 겁니다."

자, 이제 선택하세요.

- 매일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야!"를 외치는 사무실의 미친소로 사는 삶

- 아니면 "미안해요, 내가 틀렸네요"를 담담히 말할 수 있는 탈꼰대의 삶

참,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 "나는 절대 이러지 않아"라고 생각하고 계신다면... 죄송하지만 당신이 바로 '꼰대 예비군'입니다. 어서 위의 처방전을 실천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