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oo shall pass
저는 중소기업에서 '영업전략구매투자해외사업지원인사총무물류대외협력'팀의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최근에 뜻하지 않게 영업일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냐고 물어보실 수도 있고, 아니면 '구라 아냐?'라고 물어보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영업전략구매투자해외사업지원인사총무물류대외협력'팀의 일을 3년째 하고 있습니다.
점점 해를 거듭할수록 팀명이 길어집니다. 2년 7개월 전 지금 중소기업으로 이직했을 때 '전략구매투자해외사업지원'팀만 맡았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느는 건 옆구리살과 팀이름뿐이더군요. 팀 이름이 길어질 때마다 제 어깨도 무거워졌습니다. 업무가 늘어날수록 책임감도 커졌고, 그만큼 고민도 깊어졌습니다.
이제 저도 한계에 다 달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저를 바라보는 팀원들조차도 제가 위태로워 보이나 봅니다. 매일 새벽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볼 때 '오늘은 버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네, 맞습니다. 저는 지금 분명 직장인으로서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실제로 하루에도 몇 번씩 사표를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오락가락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물론,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할 수도 있고, 다른 일을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사표를 내는 건 저를 위해서, 저의 가족들을 위해서, 그리고 팀원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순간, 제가 되뇌는 말이 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This too shall pass)"
이 오래된 지혜의 말은 여러 문화권에 걸쳐 전해져 내려옵니다. 유대교 전승에는 현명한 솔로몬 왕이 슬플 때는 위로가 되고, 기쁠 때는 겸손하게 만드는 문구를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국 현자들이 만든 솔로몬 왕의 반지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시간은 늘 흘러가고, 모든 순간은 지나간다는 이 단순하면서도 깊은 통찰은 사표 쓰기 직전인 저에게 필요한 마법 같은 말입니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직장인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직장인의 관점에서 사표 쓰기 직전에 왜 "이 또한 지나가리"의 마법이 필요할까요?
저는 지금까지 2.5번의 이직을 했습니다만,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든 직장이 절대 모든 면에서 좋지는 않더군요. 장단점이 명백했습니다. 대기업에 다닐 때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대기업 다닐 때는 답답함과 권한을 갈망했습니다. 중소기업에 이직해서 많은 권한을 얻었지만 여러 가지 다른 성격의 일들이 한 번에 몰릴 때는 이직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결국 직장은 직장일 뿐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직장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지금 회사에서 분명히 이직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도피와 같은 다른 회사로의 이직은 40대인 저에게 절대 좋을 리 없다는 이성적인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많은 직장인들이 사표 앞에서 망설이고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의 이 순간도, 이 고민도 결국 지나갈 것이라고. 그리고 그때가 되면, 지금의 이 시간이 제게 어떤 의미였는지 더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까요?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이 순간은 지나가야 할 시간이 아닌, 견뎌내야 할 가치가 있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또한 지나간다면 저는 분명히 성장해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이런 깨달음 없이 쉽게 무너졌는데, 이제는 그런 시행착오를 겪고 지금에 이르다 보니 이 시간이 지난 후의 제 모습이 조금 기대됩니다. 아니, 기대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끝으로 소설가 헤밍웨이가 남긴 말로 이 글을 마무리 합니다.
우리는 잘 부서지긴 하지만, "빛은 부서진 그 틈으로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