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그다드Cafe Jun 29. 2024

AI 사피엔스

그는 왜 보라색 양말을 신었나

<전혀 어색하지 않게, 오른손으로 브이를 만들어 턱을 괴시는 센스. 나의 그 분이 책 전면에 나오셨다>


최재붕 교수님이 또 엄청난 책을 발간하셨다. 바로 <AI 사피엔스>. 출간과 동시에 밀리의 서재에서 읽을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밀서 소싱 담당자님, 칭찬합니다)


최재붕 교수님과는 각별한 추억이 있다. 물론, 교수님은 나를 전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교수님을 잘 안다. 일방적인 추종이라고나 할까? 팬덤의 일종이다. 나이 사십에 오랜만에 팬덤이 형성되었다. 수줍게 고백하건데, 내가 교수님의 팬이 된 건... 교수님의 보라색 양말 때문이다.


코로나가 한창인 시절 전전직장에서 최재붕 교수님을 모시고 강연회를 가졌다. 그 때 교수님을 먼 발치서 처음 뵈었다. 당시에는 교수님께서 <포노 사피엔스>를 출간하시고는 코로나 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강연을 다니셨고, 전전직장에서도 강연을 하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 강연에는 스마트폰이 더 이상 도구가 아닌, 인간의 장기 중의 일부가 되었다고 강조하셨다. 10여년 전 잡스 형님이 인간의 장기를 추가로 개발 했고, 그 장기를 직접 이식까지 하셨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스.마.트.폰. 잡스 형님이 아이폰을 개발한 후로 오장육부의 전통적인 사피엔스는 멸종했다. 대신 스마트폰이라는 장기를 장착한 오장칠부(오장육부+스마트폰 장기)의 인간이 탄생했다고 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로 <포노 사피엔스>가 탄생한 것이다. 그만큼 스마트폰은 인류 역사상 불의 발명에 버금갈 만한, 아니 불의 발견을 능가하는 발명품이라고 강조하셨다. 강연 전에 이미 <포노 사피엔스>를 읽고 크게 공감했기 때문에 강연도 쉽게 몰입했다.


강연 중의 압권은 BTS 일화를 설명할 때 였다. BTS는 거대 자본의 연예기획사가 만든 아이돌이 아니고, 온라인과 스마트폰을 통해 자발적인 팬덤을 형성했다. 전통을 거부 한 채 K-팝의 새로운 장을, 글로벌 팬덤의 진수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교수님은 그런 과정을 쭉 설명하시면서, 당신의 보라색 양말을 불쑥 보여주셨다. 좀 놀랬다. 생각해보라 오십은 훌쩍 넘은 아재가 보라색 양말이라니. 하지만 교수님의 멋진 패션 감각에 묻혀 보라색 양말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교수님은 소녀처럼 수줍어 하시며 고백했다. 자신은 찐 BTS 팬이고, 아미의 상징인 보라색 양말만 신는다고 하셨다. 하... 이런 60년대생이 있을 줄이야... 그 때 받은 보라빛 충격으로 나는 교수님의 팬이 되어버렸다. 그런  교수님은 BTS의 팬이시고. 요즘도 강연 때 여전히 보라색 양말을 신으시는지 궁금하다. 만약에 신으신다면 보라색 양말을 몇 켤레나 가지고 계시는지도 궁금하다. (별게 다 궁금해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다. 나는 교수님의 진정한 팬임으로)


최재붕 교수님의 팬인 JK낀대(글쓴이)가 이런 수줍수줍한 추억을 잊지 않고 있던 찰나에, 교수님은 또 계시를 내려주셨다. 정말 타이밍도 절묘하다. JK낀대의 지금 직장은 제조업 기반의 2차전지 소재 회사인데, 요즘 2차전지 업계가 너무 좋지 않다... 그래서 고민이 많은 한 가정의 가장이자, 31개월 아이의 아버지이고, 회사에서는 무능력한 팀장에게.... 교수님은 책으로 메세지를 전하셨다. 바로 <AI 사피엔스>. 책 내용이 워낙 도움이 많이 되는지라 앞으로도 몇 번이고 언급할 예정이다.


오늘은 교수님과의 인연을 설파함과 동시에 책 중에서, <AI 사피엔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 중 몇 문장을 소박하게 옮겨 적고자 한다.


<AI 사피엔스 중 일부> 최근에는 제조를 돕는 로봇 개발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보입니다. 2022년 처음 선보였을 때만 해도 엉성하다고 비웃음을 샀던 테슬라 옵티머스Optimus는 2023년 놀라운 모습으로 등장해 세계 로봇 산업계를 경악시켰습니다. 잘 걷고 균형도 잘 잡으며, 물건도 구별해 집어내는가 하면 박스도 척척 옮깁니다. 불과 1년 만에 엄청난 성과를 만든 거죠. 어지간한 잡무는 충분히 해낼 것 같은 이 로봇의 가격은 2만 달러 선이고, 테슬라의 목표는 옵티머스로 자동차 생산 인력의 50%를 대체하는 겁니다. 오픈AI가 투자한 피규어Figure라는 로봇 회사는 더 무섭습니다. 챗GPT가 탑재된 이 로봇은 인간의 음성 명령을 인식하고 그걸 다시 로봇 언어(기계어)로 즉각 번역해 행동에 옮깁니다. 이미 2024년부터 BMW 미국 공장에서 간단한 업무를 시작하기로 계약되어 있습니다. 2030년이면 인력의 50%를 대체할 것이라는 이들의 목표가 꿈만은 아닌 거죠. 생성형 AI는 로봇 시장의 판도도 바꾸는 중입니다. 이러니 미래 성장기대치가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 JK낀대: 제조업에 종사하는 나에게, 앞으로 제조업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알려주고 있다.  


<AI 사피엔스 중 일부> 결국 성공의 비결은 실력입니다. 만약 테슬라가 좋은 자동차를 만들지 못했더라면, 앞선 기술을 성공시키지 못했더라면, 자율주행이나 로봇에서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쳤더라면, 이 정도의 성장은 이룰 수 없었을 겁니다. 아니, 성장은커녕 이미 파산했겠죠. 다른 많은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역사에서 사라졌듯이 말이죠.

—> JK낀대: 말이 필요없다. 그냥 가슴에 때려 넣어야 하는 명문장이다. 특히 ‘결국 성공의 비결은 실력입니다’


<AI 사피엔스 중 일부> M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달리 어려서부터 인터넷을 사용한 첫 세대입니다. 대유행을 일으켰던 인터넷 게임에 어려서부터 푹 빠져 자랐던 첫 세대이기도 합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세계적 열풍에 익숙하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M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전 세대와 세계관이 확연히 다릅니다. 인터넷 게임에 들어가면 전 세계 사람을 만납니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국경 없이 누구든 만나서 대화하고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걸 체험했죠. 스케일도 어마어마합니다. 내가 즐기는 게임인데 프로리그가 있고 세계 챔피언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프로 게이머는 연봉이 100억 원도 훌쩍 넘습니다. 이런 세계에서 종일 놀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스케일이 그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달라진 겁니다.

인터넷 게임이 없었던 시대에도 우리는 열심히 놀았습니다. 인간에게 놀이는 사회를 이해하고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아주 중요한 행위입니다. 특히 10대 시절, 친구를 만나고 형동생 관계를 맺어가며 세상을 살아가는 세계관을 형성합니다. M세대 이전 세대는 구슬치기, 딱지치기, 오징어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놀았습니다. 모든 것이 내가 사는 ‘동네’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해외는커녕 다른 동네조차 가볼 생각을 못 했습니다. 남의 동네에 가면 돈 뜯기고 두들겨 맞는 게 일상이었으니까요. 기성세대의 세계관은 ‘우리 동네’를 중심으로 형성됩니다. 그러니 고향과 출신학교에 대한 애착이 유달리 강합니다. 나를 보호해주고 인정해주는 건 우리 동네의 혈연, 학연, 지연이니까요. 서로 인사만 나누고 나면 출신 지역, 학교, 본관을 묻고 호구조사부터 시작하는 것도 어려서부터 형성된 세계관이 DNA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죠.


스케일도 동네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아무리 구슬치기를 잘해도 전국 챔피언십 같은 건 없었으니까요. 성공에 대한 세계관도 그래서 아주 단순합니다. 집안에서, 동네에서, 친구들에게 인정받으면 성공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동네에서 칭찬받는 구성원이 되고자 합니다. 그렇게 50년 넘게 하나의 세계관으로 살아왔습니다.

이러니 M세대의 인터넷 세계관과는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넷 게임이 펼쳐놓은 디지털 신대륙에 입장하면 세상 누구나 만날 수 있고, 거대한 규모의 판을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인터넷 게임에 입장해 “혹시 몇 년생이세요?”라고 묻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선후배도 없고 누구나 친구입니다. 오직 실력만이 신분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꿈의 크기도 달라집니다. 내가 잘하기만 하면 100억 연봉의 세계 챔피언도 될 수 있으니까요. 세계관과 성공의 스케일이 확장되는 것이죠. 실제로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세계 최고의 프로 게이머 페이커 이상혁 선수의 연봉은 100억을 훌쩍 넘습니다. 아마추어 게이머들 중에서도 세계 랭킹 100위 안에 드는 걸 최고의 프라이드로 여기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 JK낀대: M세대의 새로운 세계관과 놀라운 스케일.
 
<AI 사피엔스 중 일부> 우리 사회가 디지털 세계관의 엄청난 혁신성보다 부작용에 집중한 것은, 기성세대에 깊이 뿌리내린 개도국 관성 탓입니다. 기성세대는 세계에 없던 혁신을 만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도전하라고 이야기하지도 못합니다. 게임에 빠지고 코딩에 빠진 아이들을 보면 이들이 조직 중심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부터 앞섭니다. 자신들의 조직 중심 세계관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니 오직 부작용만 보이는 것이죠.

선진국의 부모들은 세상의 혁신을 모두 자신들이 만들어왔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혁신적인 일에 도전할 때 옆에서 용기를 북돋고 좋은 코치도 되어줍니다. 자신들이 아버지의 차고에서 창업해서 거대 기업으로 키웠듯이, 아이들에게 차고를 열어주고 마음껏 무모한 도전을 즐기게 합니다. 세상에 없던 혁신을 만들었던 세대가 또 다른 혁신을 만드는 세대를 키우는 비결이자 전통입니다. 이러한 선순환 시스템이 형성되어야 혁신적인 기업들이 계속해서 나올 수 있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안정된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축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 JK낀대: 기성세대 아버지들이여! 반드시 <AI 사피엔스>를 읽읍시다.

<AI 사피엔스 중 일부> 조직 중심 대기업에서는 직급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거의 모든 결정을 임원들이 합니다. 신입사원은 과장님이 좋아할 내용으로 기획하고, 과장은 부장님이 좋아할 내용으로 다시 수정합니다. 부장은 다시 상무님이 좋아할 내용만 남기고 잘라내죠. 그러면 상무는 사장님의 세계관에 가장 잘 맞는 내용으로 정리합니다. 물론 임원과 사장 대부분은 인터넷 게임이라고는 즐겨본 적이 없는 레거시의 파워에 익숙한 분들이었죠. 대충 만든 서비스라도 우리 회사의 브랜드파워를 믿고 엄청난 자본을 쏟아 TV 광고를 때리면 소비자들은 쓰게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 JK낀대: 정신 차립시다. 임원 여러분. 그리고 임원 여러분들도 반드시 <AI 사피엔스> 읽읍시다. 매일 술만 먹지 마시고, 집에 일찍 들어가셔서 제발 공부 좀 하세요.(물론, 우리회사 임원은 안 그럼 ^^;;)

<AI 사피엔스 중 일부> 일단 래퍼 박재범이 전면에 등장합니다. MZ와 코드가 잘 맞는 가수죠(가수 임재범이었다면 저도 관심을 더 많이 가졌을 것 같습니다). 보통은 가수가 술에 관한 히트송을 하나 내면 대기업과 함께 브랜딩을 하는 게 상식이었죠. 그런데 박재범은 생각부터 다릅니다. 진짜 한국을 대표하는 소주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멕시코는 데킬라, 러시아는 보드카, 영국은 스카치위스키, 미국은 버번위스키 등 나라마다 대표하는 술이 있습니다. 대중적이면서도 조금은 품격 있는 술 브랜드도 많죠. 그런데 우리나라 대표 술인 소주 중에는 내세울 만한 브랜드가 없어 아쉬웠다고 합니다. 일반 소주는 고구마 주정으로 만든 화학주에 가깝고, 또 전통 소주는 비싸도 너무 비싸게 만들었죠. 그래서 박재범은 적당히 대중적이면서도 글로벌한 관점에서도 즐길 수 있는 소주를 만들겠다고 공언을 합니다. 자기 팬들이 가득한 커뮤니티에서 말이죠. 외국에서는 가수나 배우들이 히트시킨 주류 브랜드도 이미 많았기 때문에 더 자신이 있었습니다. 일이 착착 진행되어 술이 숙성되고 판매가 가능한 날짜가 가까워지자 제품 발표 행사를 기획합니다. 박재범이 유명한 래퍼인 만큼 당연히 기자들을 불러 신제품 발표 기자회견을 할 줄 알았는데 웬걸, MZ의 성지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팝업 이벤트로 판매를 시작합니다. 갑자기 일론 머스크의 메시지가 떠오릅니다. “광고하지 마라. 열광하게 하라!”
—> JK낀대: 박재범님을 다시 보게 되었고, 더현백에 손님을 만나러 가면 그저 ‘왜 이렇게 젊은 친구들이 많지? 왜 이렇게 붐비지?’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하는 나를 호되게 꾸짖는다.  


내 절친 후배 YB(나와는 14살 정도 차이가 난다)는 ‘결국 성공의 비결이라는 실력입니다’ 라는 문장이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라고 했다. 물론, 나에게도 가장 인상 깊은 문장 중 하나이다. 내가 절친 YB에게 덧붙인 말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YB야, 실력에 대한 정의도 중요하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실력을 구분하는 능력도 중요한 거 같어. 예를 들어, 내가 사회 생활을 시작한 13년 전만 하더라도 영문으로 계약서를 작성할 수 능력은 정말 고급 기술이자, 실력이었거든. 단순히 영어로 말을 잘한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복합적인 능력을 요하는 기술이야. 어중간한 문과생 중에서는 '법', '재무회계' 보다도 더 먹히는 기술이었지. 그런데 내가 최근에 챗GPT로 영문 계약서 작성해보니깐 웬만한 사람보다 낫더라. 나보다는 무조건 낫고. 물론, 영문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으면 도움은 되겠지. 하지만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 자기 계발에 투자하려면, 최소한 시대 흐름은 반영해야 보다 효율적인 투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내 시간은 소중하니깐. 잘파 세대인 너의 시간도 물론 더활나위 없이 소중하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