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품없는 40대 꼰대 직장인이 세상에 남기고자 하는 것
최근에 재밌게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최태성 작가님의 <다시, 역사의 쓸모>입니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오디오북을 통해서였습니다.
대전에서 회사차를 이용해서 혼자 운전할 일이 있었는데, 평소라면 라디오를 들으면서 했을 운전을 그날따라 오디오북이 듣고 싶었습니다. (저는 평소에는 이어폰을 쓰지 않아 귀로 콘텐츠를 잘 소비하지 않습니다)
네비 음성소리와 책을 읽어주는 성우의 목소리가 겹쳐서 완벽히 듣지는 못했지만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출장을 마치고 바로, 이북으로 <다시, 역사의 쓸모>를 샀습니다. 그리고 퇴근길에 찬찬히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책의 도입부가 저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습니다.
“당신의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한국인 최초로 미국 주 대법원장에 오른 문대양 전 대법원장이 삶의 끝자락에서 받은 질문입니다. 그는 잠시 생각을 고른 뒤 이렇게 답했습니다.
“세상에 기여한 바 없이 떠나는 것입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죽음도,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도 아니었습니다. 삶의 끝에서 세상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는 그의 대답은 살아가는 동안 나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만들더군요.
<다시, 역사의 쓸모> 중에서.
저는 이 구절을 읽는데, 반성도 되고 고민도 되더군요. 먹고살기에만 급급해서 저의 좁아진 시선이 부끄러웠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생존과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며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저의 시선이 좁아지고 먹고사니즘에만 빠진 배경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흔히 말하는 흙수저 중의 흙수저 출신입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동생과 함께 살았습니다. 넉넉지 못한 환경 속에서 자라며 학창 시절 참고서 하나 사는 것도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학에 겨우 진학했지만, 여전히 어려움은 계속되었습니다. 고시원, 반지하, 학교 기숙사를 전전하면서 한 학기를 휴학해서 번 돈으로 한 학기를 다녔습니다. 군대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자처했고, 졸업 후에는 이라크와 미얀마에서 5년 넘게 근무했습니다.
15년간의 직장 생활 동안 주식투자에도 실패하고, 다른 재테크에도 밝지 못해 형편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먹고사는 것에만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최태성 작가님은 같은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역사를 알리는 사람으로서 제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과 지혜를 끊임없이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고 이 시대에 맞는 의미를 찾아내서 알려주는 것이죠. 우리 시대에 맞는 스토리텔링으로 계속 전하다 보면 사람들의 삶에 역사의 지혜가 스며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저도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비록 최태성 작가님처럼 대단한 통찰과 지혜는 없지만, 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다 큰 어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
흙수저 지방 촌놈이 서울에서 고생한 이야기
밑바닥 인생에 대한 이야기
2.5번의 이직과 대기업 중소기업에 대한 이야기
직접 경험한 2번의 전쟁 이야기(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미얀마와 버마 그리고 조지 오웰에 대한 이야기
30대 후반에 첫 아이가 생겨, 고생하면서 육아 서포터하는 이야기
그리고 제가 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저도 할 이야기가 제법 되는군요. 타인에게 엄청나게 유익한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작은 용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저의 이야기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사실에 작은 희망을 느낍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느끼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