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늦지 않았습니다
서울의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제 친구가 마흔에 고향의 중소기업 신입사원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친구는 내신 성적은 평범했지만 수능에서 예상치 못한 좋은 성적을 받아 명문대에 입학했습니다.
친구의 대학 시절은 평탄했습니다. 집안 형편도 넉넉한 편이어서 서울 유학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고난이 시작됐습니다. 회계사의 꿈을 안고 고시원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당시 저희는 모두 친구를 응원했습니다. 성실함과 운(수능 대박)이 만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험은 냉혹했습니다. 한 번, 두 번... 실패가 거듭될수록 자신감은 서서히 무너져갔습니다. 회계사 시험이 막히자 세무사로,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공무원 시험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말했지만, 시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서른, 서른다섯을 지나 마흔이 눈앞에 다가오자 그제야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사실 저희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의 시험 준비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요.
몇 년 전 저는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이제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게 어떻노? 30대 중반이면 부모님한테 독립해야 하지 않겠나? 직장 생활하면서 새 기회를 찾을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친구는 몇 년을 더 공부했음에도 끝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작년, 고향의 중소기업 문을 두드렸고 합격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얼마 전 통화에서 들은 목소리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진작에 이럴걸..." 하는 후회 섞인 한숨 속에서도,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이 묻어났습니다.
매달 받는 월급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다며, 처음으로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번다는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나이 마흔에 신입사원으로 시작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신보다 어린 상사 밑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고, 업무도 서툴 것이며, 체력적으로도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야 진짜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전화기의 발명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삶에는 흥미로운 전환점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원래 청각장애인을 위한 발성법 교육에 관심이 있었고, 이 분야에서 일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전화기 발명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벨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한 장의 문이 닫힐 때 다른 문이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닫힌 문만 너무 오래 바라보느라 우리에게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
오랫동안 회계사의 꿈이란 닫힌 문만 바라보았던 친구는 이제 새로운 문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는 분명 또 다른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