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무실 전화 공포증의 진짜 이유

전화 거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의 과제

by 바그다드Cafe

콜 포비아(전화공포증)이라고 하면 흔히들 "MZ세대가 카톡만 하려고 해서..."라고 손사래를 치시는데요. 잠깐만요, 40대인 제가 상무님이나 전무님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보며 마음의 준비운동부터 하는 걸 보면 이건 세대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전화를 피하는 건 단순히 '디지털 네이티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감정 리스크 관리' 전략이랄까요?


생각해 보면 전화는 참 무서운 매체입니다. 상대방의 한숨 소리까지 실시간 Full HD로 전송되거든요. "아... 그게..." 하는 머뭇거림에도 온갖 해석이 붙습니다. 메시지였다면 이모티콘 하나로 때울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여기서 잠깐, 전화 공포의 또 다른 주범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바로 "Right Now!" syndrome입니다. (지금 당장 해!) 메일이나 메시지라면 최소한 숨 고르기 할 시간이라도 있는데, 전화는 즉답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죠. "어제 보고서 검토해 봤나?" (아니오, 방금 열어보려던 참이었는데요...) "지금 회의실로 올 수 있나?" (아... 제가 지금 화장실인데...)


사실 전화를 거는 쪽에서 잠깐의 여유만 준다면, 받는 쪽의 스트레스도 훨씬 줄어듭니다.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라는 한 마디, "답변은 오후까지 주시면 됩니다"라는 작은 배려가 상대방의 콜 포비아의 절반은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이러한 배려와 여유를 마냥 바랄 수만은 없습니다. 여전히 세상에는 빌런이 차고 넘치니깐요. 빌런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무실에서도요. Villains Never Die.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 교수님의 이론 중에 '감정 리스크 회피 성향'이라는 게 있습니다. 콜 포피아도 결국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인 거죠. 하지만 이유를 알았더라도, 직장에서는 이런 회피 성향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건 마치 수영을 배우기 위해 물을 피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화 무서워서 못해요"가 "회의 무서워서 못해요"로 발전하면... 우리의 창의성은 '읽씹' 당하고 맙니다.


광고인 박웅현 작가님의 "안전한 것보다 미안해하는 게 낫다(Better sorry than safe)"라는 말은,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불편한 순간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메시지만으로는 캐치할 수 없는 미묘한 뉘앙스, 예상치 못한 반응, 날카로운 반박까지... 이런 '리스크'들이 결국 우리를 더 단단한 직장인으로 만듭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 울리는 전화, 받아볼까요? 거는 사람은 여유를 주고, 받는 사람은 용기를 내는 것. 이게 바로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의 시작 아닐까요? (단, 스팸 전화는 제외입니다. 그건 진짜 무서우니까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