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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김 부장은 부끄러움을 잊었는가

부끄러움을 알아채는 게 경쟁력입니다

by 바그다드Cafe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 시인의 서시는 마치 오늘날 직장인들을 날카롭게 꼬집는 듯합니다. 하늘은커녕 스마트폰만 우러러보는 우리들에게, 이 시구는 옛날 흑백 TV처럼 어딘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직장인의 부끄러움 상실 증상은 전염병처럼 퍼져나갑니다. 엘리베이터에서는 마치 자신의 집 안방인 양 큰 소리로 통화하고("아니, 그래서 내가 팀장한테 직접..."), 회의실에서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다 졸며("아, 미안미안. 깊이 생각하느라..."), 후배들 앞에서는 자신의 실수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어. 요즘 애들은 몰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법이거든...")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요?


심리학자들은 이를 '도덕적 면역 체계'라고 부릅니다. 마치 처음에 김치찌개를 끓이면, 조심스럽게 마늘을 넣다가 나중엔 마늘뿐만 아니라 합성 조미료를 정신없이 퍼붓는 것처럼요. "이 정도는 괜찮아", "다들 이렇게 하는 걸", "나만 착하면 손해지"라는 점점 과한 자기 합리화의 방어기제가 작동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신입 때 "절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며 손가락질했던 상사의 모습이, 거울 속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건 회사 생활에서 나타나는 '선택적 부끄러움 증후군'입니다. 지각할 때는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데, 회식자리에서 막말할 때는 왜 그리 당당한지. 보고서 마감을 못 맞추면 식은땀이 나는데, 후배 실수를 핑계 삼을 때는 왜 그리 자연스러운지. 마치 편의점 출입문처럼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부끄러움이라니,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의 신기한 능력이 아닐까요?


MZ세대들은 이런 우리를 보며 한숨을 쉽니다. "부장님! 그거 부끄러운 줄 아세요?"라는 날카로운 일침에 화가 치밀어 오르시나요? 그렇다면 축하드립니다! 아직 당신 안에 부끄러움이라는 감각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오래된 냉장고 안의 김치처럼, 잊고 있었지만 분명 그 자리에 있었던 거죠.


부끄러움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비타민과 같습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만이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감히 제안합니다. 오늘 퇴근길, 스마트폰 대신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어떨까요?

37개월된 아이는 저보다 하늘을 자주 봅니다.

어쩌면 그 하늘 아래서 우리는 오늘 하루 부끄러웠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작은 반성을 할지 모릅니다. "아, 오늘도 부끄러움을 잊고 살았구나..." 하고 말이죠. 그리고 내일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다짐하는 겁니다. 물론 이 다짐을 까먹더라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그래도 다시 하늘을 보며 다짐하면 됩니다. 윤동주 시인이 말씀하신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삶은 어쩌면 부끄러움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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