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남자
정답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소설' 읽기입니다. 그것도 호흡이 긴 '장편'소설 읽기입니다.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가 아닌 장편소설을 추천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무기력증은 단순한 피로가 아닌, 삶의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피처>를 읽었습니다. 15년 전 출간된 소설이지만, 저는 케네디씨의 최신작 <원더풀 랜드>를 먼저 읽고 깊이 매료되어 같은 작가의 초창기 작품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옳았습니다. 긴 호흡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저는 제 삶을 잠시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나?'
<빅 피처>의 주인공 벤 브래드포드는 월스트리트의 성공한 변호사입니다. 이른바 '파이브 포커' - 돈, 명예, 권력, 아름다운 아내, 사랑스러운 자녀 - 를 모두 거머쥔 인물이었죠. 하지만 그도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장편소설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인물들과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묘한 기시감이 따라왔습니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었을 때와 같은 질문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판사도, 월스트리트 변호사도 아닌데, 왜 그들과 같은 실존적 위기를 겪고 있을까요? 출근길 지하철에서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더 성공하는 방법'을 찾고 있는 제 모습이 문득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습니다.
얼마 전 승진한 김 부장님은 "이제 시작"이라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만약 이반 일리치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김 부장, 그게 정말 당신이 원하는 거요?"라고 물었을 것 같고, 벤 브래드포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축하해요, 김 부장님. 근데 혹시 사진 찍는 거 좋아하세요?"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렇게 우리 곁에서 살아 움직이며, 무기력한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어줍니다.
앞자리 이 과장은 씁쓸하게 말했습니다. "애 학원비랑 대출금 갚으려면 이번 승진은 꼭 해야 해." 이반 일리치와 벤 브래드포드라면 아마 침묵했을 것 같습니다. 때로는 답이 없는 게 답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의 침묵은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져줍니다.
퇴근길 카페에서 부동산 앱을 들여다보며 한숨 쉬는 직장인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성공'을 쫓고 있습니다. 이반 일리치와 벤 브래드포드가 이 자리에 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보세요. 지금 당신이 쫓는 게 정말 당신이 원하는 걸까요? 아니면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이게 정답이라고 하니까 쫓고 있는 걸까요?"
지루한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직장인을 위한 광고 포스트를 읽었습니다. (술에 취해 제대로 읽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직장인이여, 오늘도 파이팅!"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네, 파이팅... 근데 혹시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요?"
창밖 한강의 불빛이 반짝였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이반 일리치와 벤 브래드포드가 한강변 아파트를 검색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당분간은 소설을 찾아 읽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번에 읽을 장편소설을 검색했습니다. 무기력증의 답은 더 많은 성공이 아닌, 더 깊은 질문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반 일리치와 벤 브래드포드가 보기에는, 이게 조금은 더 '빅 피처'에 가까운 선택이지 않을까요? 장편소설은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설 여유를 줍니다. 그리고 그 여유야말로 무기력증을 벗어나는 첫걸음입니다.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남자>는 <빅 피처>의 프랑스어판 제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