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살풀이 에세이
저의 40대 지인 중 한 분이 최근 이직을 하고 느낀 점을 저에게 살풀이 하듯 전해왔습니다. 저는 들은 내용을 지인의 허락 하에 재구성했고, 최대한 지인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일명 타인의 살풀이 에세이입니다. (저도 30대 후반에 이직을 했기 때문에 어쩌면 저의 얘기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렇게 적응을 못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20대, 30대를 거치며 몇차례 이직을 해오면서도 이렇게 난관에 부딪힐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직의 중심에서 후배들을 이끌던 제가, 이제는 낯선 환경 속에서 새로운 적응을 시작해야 하는 신입아닌 신입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을 익히는 일이 이토록 고단할 줄 몰랐습니다. 젊은 직원들은 새로운 협업 도구들을 마치 숨쉬듯 자연스럽게 다루는데, 저는 매뉴얼을 붙들고 한참을 씨름해야 했습니다. "이 기능은 이렇게 쓰시면 됩니다"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후배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회의실에서는 더욱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새로운 용어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올 때면, 노트북 화면 아래로 살며시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하게 됩니다. '애자일'이니 '스크럼'이니 하는 용어들은 마치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낯설기만 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가끔 저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계신 동년배 분들을 발견할 때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자괴감이 밀려옵니다. 경력 20년이 무색하게, 신입보다도 못한 제 모습에 한숨만 깊어집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런 하루하루를 이야기하면, 그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예요"라는 위로의 말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라는 게 참 야속하게도 더디게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는 늘 긴장 상태입니다. 실수라도 할까 봐, 누군가에게 무능해 보일까 봐, 젊은 동료들의 답답한 시선을 받을까 봐... 이런 생각들이 하루 종일 저를 짓누릅니다. 전 직장에서는 제가 시스템을 만들고 프로세스를 개선했는데, 이제는 남이 만든 시스템을 배우느라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내가 정말 잘한 선택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연봉이 조금 높아졌다고 해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직을 선택했는데... 지금의 이 불안감과 초조함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특히 밤에 잠자리에 들 때면 이런 생각들이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동료들과의 관계도 쉽지 않습니다. 나이는 제가 많지만 업무적으로는 제가 더 배워야 하는 상황이라... 선배도, 후배도 아닌 이 어정쩡한 위치가 때로는 버겁게 느껴집니다. 점심시간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고, 업무 시간에도 뭔가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겁니다. 언젠가는 적응하겠죠.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40대의 이직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도전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이직을 결정하기 전에 좀 더 깊이 고민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도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여전히 긴장되고 불안하지만, 이제는 그런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어쩌면 이것도 제 인생에서 지나가야 할 하나의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후배들에게 배우는 자세로, 조금 더 겸손하게 이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언젠가는 이 시기를 돌아보며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겠죠.
아이폰의 대머리 아빠는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에서 때때로 벽돌에 머리를 맞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믿음을 잃지 마세요."(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