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할 것인가, 역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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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울대 졸업하고 대기업 다니는 형님 지인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그때 그 형님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 오리고기를 먹으러 갔습니다. 입구에 걸린 나무 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전할 것인가, 역전할 것인가"
- 역전오리 -
'오, 이 오리집 사장님 센스쟁이시네...'
지난번 초밥집에서도 형님이 다소 심각했는데, 오늘도 고기 앞에서 표정이 영 좋지 않습니다. 맛있는 오리고기 앞에서도 40대의 고민은 계속됩니다.
"사장님, 여기 소주 한 병이요!" 형님이 한숨을 쉬며 주문합니다.
"요즘 회사에서 구조조정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네. 경쟁사들도 장난 아니게 압박하고... 팀장이라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니고... AI도 내 자리 노리는 거 아냐?"
"형님, AI가 오리는 구워도 형님처럼 술은 못 마실 거예요." 실없는 농담을 던져봅니다.
"근데 말이야... 서울대 나왔다고, 대기업 다닌다고 뭐가 달라? 결국 다들 비슷한 처지더라. 월급쟁이는 월급쟁이더라고. 며칠 전에 후배가 퇴사해서 스타트업 한다고 알리던데, 솔직히 부럽더라고."
"스타트업요? 차라리 이 오리집 인수하시죠?" 형님이 이제 웃습니다.
"애들 학원비에, 대출금에... 이러다 나이만 먹고 뒤처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야. 와이프도 일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 있나 싶다..."
문득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한 '위험사회'가 떠올랐습니다. 더 이상 안정적인 직장도, 평생직장도 없는 시대. 우리는 매일 오리고기 뒤집듯이 인생도 뒤집어가며 살아야 하나 봅니다.
"형님, 조선시대 실학자 홍대용이 그랬대요. '답습(踏襲) 하지 말고 새로운 걸 배우라'고요. 우리도 유튜브 채널 만들어볼까요? '오리고기 먹방 전문 서울대 출신과 서울에 있는 대학교 나온 40대 중년들의 잡담'"
형님이 피식 웃습니다. "차라리 오리 요리를 배워볼까? 실패해도 최소한 맛있게는 실패하겠지?"
나오는 길에 형님이 다시 현판을 보더니 말합니다.
"오늘 오리는 잘 뒤집었는데, 우리 인생은 언제 뒤집어볼까?"
"형님, 일단 오늘은 소주부터 뒤집으신 것 같은데요?"
이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미래를 걱정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애쓰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서울대를 나와도, 대기업 팀장이어도, 결국 우리는 모두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배의 승객입니다.
존 레논John Lennon은 "인생은 우리가 계획을 세우는 동안 일어나는 일"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도 완벽한 계획을 세우려 하기보다는, 매일매일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만의 방향을 찾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만의 방향을 하루하루 찾다 보면 역전의 기회도 노릴 수 있을 것입니다.
p.s 다음 날 아침, 형님이 깨똑을 보냈습니다. "어제 너무 취해서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유튜브 한다거나 식당 한다는 소리는 안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