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딜레마
저는 L기업과 S기업에서 10년 넘게 근무했습니다. 지금은 중소기업에서 근무하지만, 그 시절 사귄 도반들과 종종 연락을 하고 서로의 고민을 나눕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도반들(특히, 후배)의 공통적인 고민은, 바로 이 것입니다.
"저는 점점 더 바빠지는데 왜 점점 더 무능해지는 걸까요?"
매일 아침 대기업 직원들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그들은 수많은 이메일을 확인하고, 끝없는 회의에 참석하며, 자신의 업무 영역에 한정된 반복적인 일을 합니다. 아침에 회사 도착 후, 이메일을 열면 놀랍게도 이미 50개의 메일이 도착해 있고, 그중 절반은 '회의 일정 공유' 메일입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기업에서는 업무를 잘게 쪼개서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직원들이 퇴근길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오늘도 바빴는데...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걸까?"
스미스는 같은 책에서 핀 제조 공장을 예로 들며 분업의 효율성을 설명했습니다. 맞습니다. 오늘날의 대기업들도 효율적입니다. 너무나도 효율적이어서 직원들은 자신의 작은 업무 영역에만 갇혀 점점 더 '전문 무능력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엑셀 매크로는 제가 회사에서 최고로 잘 다룹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순간, 그들은 이미 '전문 무능력자'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왜 대기업 직원들은 점점 더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을까요?
1. '전체 그림'을 볼 기회가 없습니다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을 모른 채, 중간 과정만 담당하다 보니 비즈니스 통찰력을 기를 수가 없습니다. 마치 코끼리의 다리만 만지는 장님처럼, 전체를 보지 못한 채 부분에만 매몰되어 있습니다. "우리 팀이 만드는 이 보고서가 결국 어디에 쓰이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아무도 명쾌한 답을 하지 못합니다.
2. 매뉴얼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매뉴얼대로만 하세요"라는 말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창의적인 시도는 환영받지 못하고, 안정적인 프로세스 준수만이 미덕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회식 자리에서도 "매뉴얼에 따라" 건배 순서가 정해져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3. 책임은 적고, 보고는 많습니다
의사결정 권한은 줄어들고 보고해야 할 상급자만 늘어납니다. 작은 결정 하나를 내리기 위해 수많은 결재와 회의가 필요합니다. 심지어 "이 보고서를 누구에게 보고해야 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회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제가 후배들을 만나면 실제 전해주는 팁을 정리했습니다)
1. '일하는 척'하기를 거부하세요
바쁜 척하며 이메일만 들여다보는 것은 그만두어야 합니다. 업무의 앞뒤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관련 부서와 소통해야 합니다. "아, 저 사람 또 질문하러 왔다"는 소리를 들어도 괜찮습니다. 적어도 '이메일 정리 달인'보다는 낫습니다.
2.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세요(제일 중요합니다!)
회사 일만으로는 성장이 어렵습니다. 퇴근 후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종합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보세요. 실패해도 좋습니다. 적어도 매일 엑셀만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재미있을 것입니다.
3. 네트워크를 확장하세요
같은 직무의 다른 회사 사람들과의 교류도 좋지만, 회사와 전혀 관계없는 새로운 세계의 사람들과 만나보세요. 독서 모임, 온라인 커뮤니티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회사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새로운 시각과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구나"라는 깨달음은 우리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회사 밖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는 '보고서 작성법' 대신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4. '불편한' 일을 자원하세요
새로운 프로젝트나 태스크포스 참여를 자원해 보세요. 익숙하지 않은 영역에서의 경험이 시야를 넓혀줄 것입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번 프로젝트는 제가 망쳤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회사의 프로젝트는 망해도, 나는 망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대기업의 분업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 속에서 직원들이 완전히 무기력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시스템이 사람들을 획일화하려 할 때, 각자가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현대 대기업 직원들의 새로운 생존 전략일지도 모릅니다.
참고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어떤 대기업 직원은 오늘도 세 번의 회의를 놓쳤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회의록은 메일로 공유될 테니까요. 아, 그리고 그 회의록을 읽었다는 '읽음 확인' 회신메일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