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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하기는 싫지만... 나 때는 말이야

싫으면 말하지 마세요

by 바그다드Cafe

아는 직장 상사 중에 이런 말 습관을 가진 분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기는 싫지만, 나 때는 말이야."


이 문장은 마치 마법 주문처럼 항상 같은 패턴으로 시작합니다. "이런 말을 하기는 싫지만"이라는 앞부분은 자신이 얼마나 이야기하기 꺼려하는지를 강조하는 전략적인 사과문입니다. 하지만 그 사과는 곧바로 "나 때는 말이야"라는 구절에 의해 무력화됩니다. 이 문장은 마치 곧이어 쏟아질 강력한 비교와 훈계를 위한 훌륭한 몸풀기(혹은 입풀기)인 셈입니다.

박 부장님(가명을 사용하겠습니다)은 이 문장을 매우 능숙하게 구사합니다. 그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올 때마다, 사무실 전체가 미묘한 긴장감에 휩싸입니다. 신입사원들은 본능적으로 자세를 바로잡고, 경력사원들은 슬며시 자리를 피하려 합니다.

"이런 말을 하기는 싫지만, 나 때는 말이야. 우리는 야근이 일상이었어. 밤 10시에 퇴근하면 반차 쓴 것처럼 좋아했다고."

이 말을 하는 그의 표정에는 묘한 이중성이 있습니다. 입술은 안타까움을 표현하지만, 눈에는 은근한 우월감이 서려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나는 너희보다 더 힘든 시절을 겪었으니, 너희의 어떤 불평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박 부장님이 실제로는 2000년대 중반에 입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말하는 "나 때"와 지금 사이에는 사실 그리 큰 간극이 없습니다. 끽해야 20년입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산업화 시대의 공장에서 일했던 것처럼 자신의 초년 경력을 묘사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나 때" 이야기는 점점 더 가혹해지고, 더 영웅적으로 변해갑니다.

"이런 말을 하기는 싫지만, 나 때는 말이야. 토요일에도 출근해서 짜장면 먹는 낙으로 버텼어. 그래도 불평하는 건 생각도 못했지."

이 말을 할 때 그의 눈에는 묘한 향수가 깃듭니다. 마치 그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무척이나 그리운 듯한 표정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생존자 편향'이라고 부릅니다.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이 그 과정을 미화하고, 다른 이들도 같은 경로를 밟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죠.

"이런 말을 하기는 싫지만, 나 때는 말이야. 연차 쓰는 건 상상도 못 했어. 아플 때도 그냥 나왔다고. 그리고 내 동기는 오전에 출근했다가 그날 오후에 산부인과 가서 출산했어."

인간의 기억은 선택적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고통을 종종 미화하고,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일종의 배지처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박 부장님의 "나 때는 말이야"는 단순한 말버릇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가치 있게 만들고 싶은 심리적 욕구의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박 부장님의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과장됩니다. 처음에는 "야근이 일상이었다"는 정도였지만, 몇 달 후에는 "침낭 가지고 와서 사무실에서 잤다"로, 1년 후에는 "3일 연속 퇴근 안 하고 일했다"는 식으로 점점 더 극적인 서사로 변해갑니다.

가장 황당한 것은 그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신의 행동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말로는 회사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영웅인데, 실은 그다지 성과는 없거든요. 프로젝트 결과물은 늘 평균 이하인데도, 후배들에게는 자신의 "영웅적" 과거를 기준으로 현재를 평가합니다.

"너희는 정말 복 받았어. 이런 말 하기 싫지만, 나 때는 말이야..."

이 말이 나오는 순간, 회의실의 공기는 얼어붙고 모두의 눈빛이 허공의 한 점으로 모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과장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 우리는 점심시간에 10분 안에 밥 먹고 돌아와서 일했어."

아무도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또한 아무도 반박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직장 생활의 불문율이니까요. 대신 모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와, 정말 대단하세요"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리고 박 부장님은 자신의 과거 고통이 인정받았다는 만족감에 다시 자리로 돌아갑니다.

이런 말버릇은 단순한 세대차이를 넘어, 일종의 권력 과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는 더 고통스러운 길을 걸었으니, 너희는 내 말에 복종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후배들의 존경심은 줄어들고 냉소만 커져갑니다.

직장에서 이런 유형의 상사를 만날 때마다, 나는 항상 궁금합니다. 과연 우리 세대가 관리자가 되었을 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까? "이런 말 하기 싫지만, 우리 때는 말이야. 재택근무가 일상이었고, 화상회의에 참석할 때 아래는 잠옷 입고 참석했다니까..."라고 말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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