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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30분, 자기 계발하는 법

할 수 있습니다

by 바그다드Cafe

퇴근 후 30분.


사실 이 시간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집에 오자마자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시간이 순삭입니다. 현관에서 잠시 정신줄을 놓고 멍하니 스마트폰을 보다 보면, 갑자기 30분이 증발해 버리죠. 피곤하고, 배고프고, 애매한 이 30분 동안 뭔가 의미 있는 걸 하라고 하면, 솔직히 말해 억울합니다.


그럼에도 이 어중간한 시간에 딱 맞는 활동을 추천하자면, 저는 단연 '언어'를 꼽습니다. 이 짧은 30분으로는 책 한 권 읽기엔 너무 무겁고, 운동하기엔 애매한 땀이 날 뿐이지만, 단어나 문장 몇 개를 외우기엔 딱 알맞습니다.



왜 하필 언어일까요?


언어는 그 어떤 배움보다 쪼개기가 편합니다. 저도 언어를 배우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언어 공부는 하루 10분만 해도 괜찮고, 30분이면 정말 충분하다는 것이죠. 출퇴근 길에 외운 단어를 퇴근 후에 딱 한 번만 다시 보면, 그게 머릿속에서 꽤 끈질기게 살아남습니다. 하루 한 단어씩만 꾸준히 외워도 1년이면 무려 365개의 단어가 되니까요. 이 정도면 현지 가서 길 잃어도, 울지 않고 호텔 찾아올 수준은 됩니다.


퇴근 후 30분, 비밀은 '반복과 누적'에 있습니다.


언어 학습의 핵심은 반복입니다. 퇴근 후에 맥주를 마시는 것도 반복하면 살이 찌듯이, 퇴근 후 언어 학습을 반복하면 머릿속에 언어가 찹니다. 뇌과학적으로도 반복된 기억은 장기 기억으로 전환된다고 하니까요. 저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손 씻기 전에 중국어 앱을 바로 엽니다. 이러면 '내가 지금 손을 씻었나?'보다 '오늘 중국어 단어는 뭐였지?'가 더 중요해지는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언어는 회사 밖의 나를 위한 탈출구입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외국어인 국어와 영어는 스트레스의 상징입니다. 퇴근 후엔 다른 언어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저는 아랍어를 배웠고, 3년간 이라크에서 근무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의 저는 언어를 배운 게 아니라 아랍의 문화를 배우고, 사람을 배우고, 인생을 배운 것이었습니다. 비록 낙타를 타진 않았지만, 이라크 사람들이 왜 홍차에 설탕을 산처럼 쌓아 마시는지, 왜 약속을 두 시간쯤 늦게 나타나는지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저도 조금 늦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요. 언어 덕분에 중동 문화에 완전히 적응했습니다!)


미얀마 시멘트 공장에서 일할 때는 미얀마어를 조금 익혔는데, 이 작은 노력이 현지 직원들과의 관계를 '급속도로' 개선했습니다. 현지어로 농담 몇 마디 던졌더니 사람들이 제가 무슨 말만 해도 웃기 시작하더군요. 진짜 말은 못 하지만 미얀마 코미디언이 된 줄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어를 배우며 중국인의 삶과 문화, 그리고 그 특유의 속도감을 조금씩 체감하고 있습니다. "만만디(慢慢的, 천천히)"를 외치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돌아가는 나라의 아이러니한 매력을 배우는 중입니다.


언어를 배우면 뇌가 바뀐다고요?


네, 진짜 그렇습니다. 언어학에서 '언어 상대성 가설(linguistic relativity hypothesis)'이라는 어려운 말을 쓰는데, 쉽게 말해 언어가 사람의 사고방식을 결정하거나 적어도 강하게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즉, 중국어를 배우는 순간, 여러분의 뇌는 자연스럽게 중국인의 사고방식도 약간씩 장착하게 되는 겁니다. 언어를 하나씩 추가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세계관이 넓어지고, 사고는 더 유연해지고, 살짝 더 재미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죠.


언어는 최고의 자기 계발이 아니라, 자기 '확장'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퇴근 후 30분은 자칫하면 그냥 사라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사라질 수도 있는 시간을 잡아서 언어를 익힌다면, 어느새 '회사 인간'에서 '글로벌 인간'으로의 진화를 경험할지도 모릅니다. 누가 압니까, 몇 년 뒤엔 이 시간 덕분에 회사에서 해결 못한 문제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멋지게 해결해 버리는 날이 올지도요.


퇴근 후 30분, 더 넓고 깊은 나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철학자 존 듀이가 말했죠. 배움은 삶의 일부이자 평생의 과정이라고요. 특히 AI 시대에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감성적이고 창의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언어입니다. 작은 단어 하나라도 매일 쌓이면, 그게 언젠가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선물할 겁니다.


퇴근 후 30분, 오늘은 한번 속는 셈 치고 언어 공부 앱을 열어 보세요. 매일의 30분이 쌓이면, 1년 뒤에는 '세계관이 남달라 진 나'를 만날지도 모르니까요.


어차피 별거 안 하는 퇴근 후 30분, 맥주 한 캔보다 언어 하나가 더 맛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실, 맥주 한 캔 마시면서 공부하면 더 좋습니다. 저는 중국어 공부를 하며 칭다오를 마십니다! 어쩌면 칭다오를 마시기 위해 중국어를 공부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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