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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꿈은 내 것이 아니다

아버지... 이제는 회사보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by 바그다드Cafe

언젠가 아버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제가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직하겠다는 말에 아버지는 숟가락을 놓고 물끄러미 절 바라보시더니, 한마디 하셨습니다. "사람이 너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 정이 안 생긴다." 그 말은 마치 "김치도 오래 익혀야 맛이 난다"는 말처럼 들렸고, 순간 저는 김치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아버지의 기대와 저의 선택이 얼마나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지를 실감했습니다.


부모님의 세대는 '한 우물만 파라'는 말속에 인생의 진리를 담았습니다. 이직은 곧 불성실함의 증거였고, 사업은 무모한 도박이었으며, 프리랜서란 말은 집에 일이 없다는 말과 다름없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 세대는 '자기다움'이 중요하다고 배웠고,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회사에 붙어 있어야 월급이 들어온다"라고 하셨지만, 저는 "가치에 붙어 있어야 삶이 흘러간다"라고 믿습니다.


그렇다 보니 아버지와 대화를 하다 보면 마치 두 개의 서로 다른 시대가 대화를 시도하는 기분이 듭니다. 아버지는 '안정'을 신앙처럼 믿으셨고, 저는 '변화'를 생존의 전략으로 여기고 있으니까요. 그 차이는 수십 년의 세월만큼이나 크고, 그만큼이나 좁히기 어렵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저와 아버지는 연락이 점점 뜸해졌습니다. 굳이 다투려 하지 않아도, 각자의 언어가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걸어도 "밥은 먹었냐" 같은 짧은 안부만 오가다가 금세 어색해지고, 어느새 연락 주기를 조금씩 미루게 되었습니다. 물론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그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거리감을 어떻게 좁혀야 할지, 서로도 아직 잘 모르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부모님의 세대를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분들이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생존의 방식은 시대가 만들어낸 결과였고, 그 안에는 사랑과 책임이라는 이름의 고집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대기업에 다니는 저를 자랑스러워했던 건, 어쩌면 자신의 고단한 삶과 아들의 인생이 연결되었다는 감격 때문이었겠죠. 그 감정을 부정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자랑이 때로는 제게 짐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대기업이라는 옷이 점점 저에게 맞지 않게 느껴질 때도, 그 옷을 벗는 건 곧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제 인생을 살고 싶었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자부심도 지켜드리고 싶었거든요.


결국 저는 중소기업으로 옮겼고, 아버지와의 관계는 냉랭해졌습니다. "도대체 왜 그 회사를 나왔느냐"는 질문에 저는 똑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답할 말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어떤 설명도 아버지의 상실감을 메우기엔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직을 후회한 건 아닙니다. 새로운 회사에서 저는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경험을 쌓고,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세대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은 아닐지 몰라도, 저는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가끔 "어느 회사냐"라고 물으시고, 그 회사 이름이 낯설다고 하시며 고개를 갸웃거리셨습니다. 요즘은 그 질문조차 점점 줄어들었지만요. 그럴 때면 저는 속으로 "이제 회사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요, 아버지…"라고 말하지만, 입 밖으로는 "여기도 괜찮은 회사예요"라고 말할 뿐입니다.


요즘엔 박명수 옹의 어록이 자주 떠오릅니다. "젊은 애들이 자꾸 여행으로 경험을 쌓는다고 하는데, 그냥 노는 거다. 진짜 경험은 일을 통해 얻는 거다." 이 말이 어찌나 묘하게 와닿던지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한때는 여행을 열심히 다녔지만,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법은 회의실에서 배웠고,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법은 데드라인 앞에서 터득했습니다. 일은 사람을 훈련시키고,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길러줍니다. 경험은 가방을 싸는 데서가 아니라, 일상 속에 스며 있습니다. 저는 이 중요한 경험을 대기업을 거스르고,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후에야 제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기대와 제 선택이 완전히 같아질 수 없다는 걸 인정합니다. 그러나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번역해 나갈 수는 있다고 믿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걱정하는 이유도 결국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제가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도 결국 저답게 살고 싶기 때문이니까요. 갈등은 서로 다른 진심이 부딪힐 때 생기는 것이고, 이해는 그 진심을 조금씩 꺼내어 보여줄 때 가능해집니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제게도 "그래도 네가 하는 일, 참 괜찮아 보인다."라고 기대해 봅니다. 그럼에도 그날이 오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저는 제 선택이 부끄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 위에서 저는 여전히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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